핵전쟁이 낳은 풍요의 두 도시, 그 끝은 디스토피아

2021.11.26 14:52 입력 2021.11.26 21:16 수정

플루토피아

케이트 브라운 지음·우동현 옮김 | 푸른역사 | 784쪽 | 3만8900원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의 플루토늄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국가 주도로 조성됐다. 리치랜드 마을에는 단독주택(①)이 지어졌다. 정부는 마을이 안전하고 풍요롭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퍼레이드(②)와 미인대회가 포함된 안전박람회(④)를 열었고, 언론에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강조하는 사진(③)이 실렸다. 소련 우랄 지역의 오죠르스크에도 리치랜드와 유사한 마을이 형성돼 노동자들은 영화관(⑥)이 있는 마을에서 중산층의 삶(⑤,⑦)을 누렸다. 그러나 주민과 그 자손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기형아 출산(⑧) 등 오랜 후유증에 시달렸다. 푸른역사 제공.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의 플루토늄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국가 주도로 조성됐다. 리치랜드 마을에는 단독주택(①)이 지어졌다. 정부는 마을이 안전하고 풍요롭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퍼레이드(②)와 미인대회가 포함된 안전박람회(④)를 열었고, 언론에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강조하는 사진(③)이 실렸다. 소련 우랄 지역의 오죠르스크에도 리치랜드와 유사한 마을이 형성돼 노동자들은 영화관(⑥)이 있는 마을에서 중산층의 삶(⑤,⑦)을 누렸다. 그러나 주민과 그 자손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기형아 출산(⑧) 등 오랜 후유증에 시달렸다. 푸른역사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원자력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가 이뤄졌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극한까지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국가 역량의 상당 부분을 쏟았다. 당시의 키워드는 ‘플루토늄’이었다. 원자폭탄의 원료로는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모두 사용된다. 플루토늄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우라늄과 같은 수급 불안정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냉전 시대에 열강들은 안정적으로 플루토늄을 생산해내는 국가가 패권을 잡는다고 여겼다.

플루토늄은 발전소 하나만 짓는다고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다. ‘플루토늄 생산 생태계’가 필요했다. 산업용 원자로를 건설할 넓은 부지가 필요했고, 낯선 원자력 도시에 상주할 숙련된 노동자들을 데려와야 했다. 노동자들은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에도 일터를 떠나지 않아야 하며, 핵 기술과 관련된 기밀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함구해야 했다. 미국과 소련은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시를 건설했다. 미국 워싱턴주의 리치랜드와 소련 우랄지역의 오조르스크 지역에는 플루토늄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국가 주도로 조성됐다. 주민들은 질 높은 주거, 급여 등 ‘소비자적 권리’인 풍요를 제공받았다. 그 대가로 ‘생물학적 권리’인 건강과 ‘정치적 권리’인 자치는 포기했다. 책 <플루토피아>의 저자인 케이트 브라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이 두 지역을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인 ‘플루토피아’라고 명명했다. 책은 1940년대 초반부터 플루토피아가 형성돼온 과정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방사능 피폭 문제를 두루 다룬다. 도시사, 환경사, 냉전사가 어우러진 핵의 역사다.

1940년대 초반부터 국가 주도로 조성된 미국 리치랜드와 소련 오조르스크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위험한 일터’를 떠나지 않고 상주하는 과학자·기술자들은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삶의 모든 것을 내주었다
생물학적·정치적 권리를 포기하고 얻은 건, 방사능 피폭으로 파괴된 삶

미국의 플루토피아 리치랜드는 핸퍼드 원자력 구역 옆에 있는 도시다.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공장 부지가 들어선 핸퍼드는 컬럼비아강이 있어 깨끗한 용수를 공급할 수 있었고, 반사막 지대 농지라 거주 인구가 적었다. 1943년 봄, 핸퍼드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을 찾은 미 육군의 프랭크 마티아스 중령과 거대 화학회사 듀폰의 관리자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노동력 확보 문제에 직면했다. 1944년 6~7월 두 달간 평균 750~850명의 노동자들이 매일 일을 때려치우고 떠났다. 외지고 험한 곳에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머무르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듀폰 관계자는 정부에 높은 임금과 복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원자력 도시에서 안전하게 핵가족을 이룬 노동자들이 정착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듀폰 경영진은 우선 “중산층처럼 보이는 저렴하고 대량생산된 노동계급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같은 가격에 더 경제적이고 오래가는 아파트나 연립주택 대신 독립주택 건설을 고수했다. 허드렛일을 하는 비숙련 공장 노동자들은 리치랜드가 아닌 이웃의 농장 마을에서 출퇴근하도록 분리한다. 저자는 “듀폰 경영진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단순히 ‘중산층’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끌어들였다”고 설명한다. 리치랜드는 노동계급이 다수인 도시였으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로 이뤄진 중산층의 소도시이자 ‘계급이 없는’ 도시로 여겨졌다. 1980년대까지 정부는 리치랜드에 전폭적 지원을 지속했다. 리치랜드에서 살았던 한 1964년도 졸업생이 고향을 회상한 기록은 이렇다. “리치랜드에서 태양은 1년에 300일 동안 빛난다. 모퉁이의 약국과 식료품점, 작은 야구장과 주유소는 모든 거주지에서 몇 블록만 가면 있었다. (…) 부모들은 유해물, 도시 황폐화, 사회의 타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원자력 도시에서 아이들을 길렀다. 그것은 갈등 없는 평온함이었고 훌륭함이었다.”

이 같은 플루토피아를 얻기 위해 주민들은 경제적 풍요 외에 삶의 모든 것을 내주었다. 지금 기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하게 방사성 폐기물이 처리됐다. 듀폰의 기술자들은 지층에 깊은 구멍(역우물)을 파서 중준위 폐기물을 버리고, 방사능 활동으로 뜨겁게 데워진 오수를 몇 시간 냉각한 후에 컬럼비아강으로 흘려보낸다. 보건학자들은 근처 자연 환경이나 동물들을 대상으로 원자력 피폭량을 주기적으로 조사했는데, 늘 기준치를 훨씬 상회하는 결과가 나왔다. 1945년 보건물리학 부서 허버트 파커 박사는 인근 동물들의 갑상선(갑상샘)이 허용치의 1000배 이상 피폭돼 있다는 사실을 관측했다. 리치랜드에서 일하던 수많은 기술자들은 고도의 방사성 용액들을 맨손으로 측정하고 주입했다는 기억을 풀어놨다. 의료 부서에서는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 정도를 관리하기 위해 소변 채취를 강제했으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지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충격에 관한 어마어마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방사선 용액을 증류하고 채집하는 일의 최전선에는 여성들이 투입되는 성차별적 노동 관행도 존재했다.

핵전쟁이 낳은 풍요의 두 도시, 그 끝은 디스토피아

미국과 차별성을 강조하며 체제 경쟁을 벌이던 소련에서도 ‘플루토피아’는 같은 모습으로 구현됐다. 소련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응하기 위해 굴라그(노동 수용소)를 활용해 플루토늄 공장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부족한 재정 지원, 무리한 공사 일정의 압박, 죄수 노역 관리 실패로 약 10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1947년, 원자력과 관련된 제1총국의 책임자 라브렌티 베리야는 혼란에 휩싸인 우랄의 플루토늄 공장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와서는 정부에 미국식 보안 체계를 요구했다. 오조르스크 지역은 이제 소련의 리치랜드가 된다. 잘 교육을 받고 전과가 없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각지에서 모였으며, 이들은 군의 허가 없이 ‘체제 지대’라 불리는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대신 체제 지대에는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저자는 “지배인들이 직원들을 오조르스크에 남도록 독려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직원들의 소비 욕구를 과도하게 충족시켜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1950년대 말 소련 시민 대부분은 공동주택에 살았으나, 원자력 도시 거주자의 70%는 개인 아파트에 살았다.

저자는 플루토피아를 직접 찾아다니며 현재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끔찍할 정도로 피폭으로 파괴된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련의 공장에서는 하루 평균 4300퀴리에 해당하는 공장의 폐수를 인근 호수 얼음 밑에 폐기했고, 이는 테차강으로 흘러들어가 41개 정착지에 살던 12만4000여명의 주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테차강 주변 마을 중 하나인 무슬류모보에서 저자는 입이 아래로 축 처지고 손가락이 비틀어진 한 소년을 만난다. 그의 엄마는 “우리의 방사둥이”라고 소년을 소개한다. 플루토피아 주민과 그들의 자식들은 갑상샘 질환, 혈액암, 기형, 정신질환 등 질병에 광범위하게 시달린다. 1950년부터 1959년까지 오조르스크에서는 유아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고, 방사능에 피폭된 여성 노동자들이 낳은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할 확률이 두 배나 높았다. 핸퍼드 공장을 운영했던 연방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건 5000명 주민들 ‘아랫바람사람들’은 자신들이 갑상샘 질환과 다른 질병에 걸릴 확률이 6~10배 더 높다는 자체 역학 조사 결과를 밝혀낸다. 1987년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 가동은 중단됐지만, 핸퍼드 지역에는 엄청난 양의 고준위 핵폐기물이 지반에 쌓여 있다.

저자는 플루토늄 생산을 두고 당시 미·소 양국에서 ‘정치적으로는 만족할 만했지만 비민주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결정과 정책을 필요로 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말할 때 ‘피폭·환경오염의 위험 대 에너지 효율’의 구도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플루토피아>가 보여주듯이 원자력 시설은 공동체를 대하는 한 사회의 가치판단과 정책적 결정이 작동하는 지점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왜 서울에 지을 수 없는가? 지방의 주민이 약간의 재정적 지원을 이유로, 훨씬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옳은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으며, 간단하게 답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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