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시작은 질투하지 않고 화를 참는 것부터”···철학자 김영민의 ‘공부론’

2022.09.22 18:32 입력 2022.09.22 19:34 수정

신간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타인 얼굴 구경하지 않거나 차분함 실천

이론·문장 암송의 생활화도 언급

“우리 사회는 졸부·속물의 공간

…공부는 다른 가능성 찾는 길”

철학자 김영민은 제도권 대학을 나온 뒤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었다. 지금은 천안의 대안대학 ‘장숙’(jehhs.co.kr)과 서울의 ‘서숙’(blog.naver.com/kdkgkei)에서 가르친다. 최근 출간한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늘봄)는 수십년 혼자 또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한 공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그가 신간에서 내린 공부의 정의를 보면, 통념의 개인 교양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자 김영민. 늘봄 제공

철학자 김영민. 늘봄 제공

“공부란 우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즉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끄-을-고 나아가는 일에서 시작하지요. 이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즉 타인을 돕는 일에 이르는 일련의 총체적 과정입니다.”

그는 “‘생각은 공부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 생각은 도무지 타인에게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타인에게, 타자에게, 사린(四隣)에게 닿을 수 있었습니까?…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누르고 남의 손을 잡아준 적이 있습니까?”라며 이같이 정의했다. “소수자 운동만이 공부의 실천이다. 다른 길은 없다”는 그의 지론에 비쳐 보면 새삼스러운 정의는 아니다.

‘동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 철학자는 “동무를 ‘신뢰’의 관계라고 했을 때, 그 신뢰의 기반은 몸에 기억된 돕기의 이력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람 사이의 신뢰는 결국 ‘나는 너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통해서만 성립합니다.”

그는 “짐승을 대하는 옳은 태도 역시 ‘돕는’ 것일 뿐이며, 돕는 것은 좋아하는 게 아니다”며 “짐승을 예뻐해선 안 된다”고 했다.

김영민에게 ‘공부하라’는 “걸어 다니면서 일체 타인의 얼굴을 구경하지 않는다거나” “사린과 새 관계를 꾸며보라” “타인과 더불어 있는 곳에서는 휴대폰을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질투와 시기를 자근자근 밟아 죽인다거나” “차분함과 비움을 얻어 화를 내지 않도록 애쓴다”는 것 등을 하라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선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머리통 속에 랑시에르나 장자 등을 쑤셔 넣어 지랄(知剌)을 떠는 게 아니고.”

이 정의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론은 쉽지가 않다. 그는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질문을 잘해야 한다. “좋은 물음은 없던 길”을 드러내고, “좋은 질문은 논의와 탐색이 막혔을 때 시야를 밝히고, 새로운 말의 냄새”를 불러온다. 그는 “좋은 물음으로써 정신의 길, 혹은 말의 길을 틔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론 공부나 책 읽기를 배제하는 건 아니다. 기본을 다시 챙겨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주어진 텍스트를 야무지게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를 담은 정신은 대화자의 ‘영혼’과 같은 것이므로, 이 기본을 놓치면 대화와 토의의 현장에서는 좀비의 신세를 면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늘 사전을 가까이해서 용어나 개념을 정확히 구사하도록 애쓰기 바랍니다. 말과 글을 나날이 벼릴 수 있는 것은 공부길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점치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암송도 생활화해야 한다. “이론들과 그 문장들을 차곡차곡 쟁여놓고 있지 않으면 제 경험의 관견(管見)과 이데올로기화한 상식의 틀 속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이음과 맞춤과 붙임을 야무지게 하려면” 암송해야 하고, “이 암송의 깊이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실천성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는 “적바림하는 버릇”으로 빼곡히 적은 암기 노트가 100권을 넘는다고 했다.

김영민이 2010년 출간한 <공부론>(샘터), 2017년 낸 <집중과 영혼>(글항아리) 후속 편 격인데, ‘생활’에 관한 생각도 정리했다. ‘생활-철학-공부’는 이어지게 마련이다.

“공부자리에 자주 드나들면서도 생활양식의 틀이 될 만한 집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이를테면 정신의 흘게가 느슨해서 배우는 족족 마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망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김영민은 “생활을 줄여서 허영과 쏠림에서 벗어나고, 그제서야 드러나는 미립과 기미와 이치들에 주목”하라고 했다.

김영민은 다섯 반려 중 하나로 산책을 꼽았다. 산책이 모든 글의 소산이라고 했다. “글을 쓰든 상대와 대화로 만나든, 혹은 산책을 하든 심지어 숨을 쉬든, 반복되는 행위 속에 이치(一理)가 쟁여지는 데에는 반드시 ‘길(들)’이 생긴다”고 했다.

책은 시론(時論)을 겸한다. 신랄하게 세상일과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그는 ‘행지(行知)’에 관한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TV 따위에 나와서 제 재능을 뽐내며 그 주둥아리들을 안이하게 벌리고 있는 이들을 보아라. 그들은 죄다 온몸을 흔들면서 무슨 소리들을 내고 있는데, 필경 오직 무슨 ‘행동/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니, 그러면 지(知)는 언제,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는 “공맹을 떠들면서, 칸트를 해설하면서, 혹은 불경을 강설하는 중에도 마치 경매꾼들처럼 눈을 번득이고, 여리꾼처럼 홍보를 하고, 후진 동네의 양아치처럼 발악적”이라고 했다.

“반드시 자신을 과시하려는 심보나 태도에서 생기는” 천박함과 연결되는 문제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과시욕이나 허영이 어떤 매체와 접속하는가에 달려 있다”며 “인간의 욕망이나 휴대폰, 그리고 유튜브 같은 매체와 접속하는 방식과 그 효과를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체의 공공성은 차츰 떨어지고 개인의 욕망이 기계 매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 사람이, 상인들과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식인들조차 대중 매체를 통해 개인 각자의 스타일을, 고집과 편견을, 이기심과 욕망을, 환상과 비전을 드러낸다. 그중에 일부는 스타가 되고, 코미디언이 되고, 장돌뱅이가 되고, 괴물이 되기도 한다.”

김영민은 이 책에서 여러 명을 실명 비판했는데, 그중 하나가 철학자 김용옥이다. 김영민은 김용옥 등의 지식실천 행태에서 ‘천박한 입들의 문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는 이문열의 “너, 전라도지?”라는 “유아적 형식의 손가락질”과 “턱없이 치졸한 발화법”에 더해 ‘너, 빨갱이지’ ‘너, 예수쟁이지’라는 발화에서 드러난 증상을 TK(대구·경북) 문제와 연계해 분석한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 낙동강 오염, 관료제 문제를 열거하며 “우리들 사이에는 수많은 이명박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각양의 오염원마다 이명박들이 뻔뻔스레 살아가고 있다. 이명박들이 이명박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세태, 수많은 이명박들이 하나의 이명박 뒤에 숨어 있는 나라에서 오늘도 낙동강은 썩어간다”고 했다.

김영민은 ‘지구를 살리는 한 가지 요령으로 “‘더’ 잘 살려고 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기를 제안했다.

왜 공부하는가. 김영민은 “내가 보는 우리 사회의 요체는 졸부와 속물의 공간”이라며 공부에 애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 평가 자체가 무화(無化) 되는 작은 장소를 만들고 다른 희망의 가능성을 등재해 보려는 데 있다.”

2013년 경향신문 인터뷰 당시 김영민.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3년 경향신문 인터뷰 당시 김영민.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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