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쓰는 여자, 작희

고은규 지음

교유서가 | 312쪽 | 1만6800원

“키보드에 잡귀가 붙어 있네요.”

은섬과 작업실 동료 경은, 윤희는 ‘작가 전문 퇴마사’를 초빙한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퇴마의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퇴마사는 윤희의 키보드에 잡귀가 둘이나 붙어 있다고 말한다. 윤희가 놀라 답한다. “5000자를 쓰고 분명 저장을 했는데, 다음날 999자만 남아 있었어요.” 퇴마사는 은섬에게도 말한다. 은섬 곁에는 검정 치마에 검정 저고리를 입은 영혼 ‘작희’가 서 있다고.

<쓰는 여자, 작희>는 봉건적 가부장제가 공고한 일제강점기, 남성 권력에 의해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가상의 작가 ‘이작희’의 삶을 통해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창작의 고통을 겪는 작가들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영혼들을 퇴치하는 퇴마의식을 한다는 설정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80여년 전과 오늘날을 오가며 여성의 글쓰기에 관한 진지하고도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이미지컷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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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섬은 학자인 큰아버지로부터 1930년대 활동했던 소설가 오영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두 편의 자필 원고와 이작희라는 여성이 쓴 64쪽 분량의 일기장을 건네받는다. ‘미쿠니 주택’이라는 제목의 원고는 오영락의 대표작 ‘미쿠니 아파트’ 초고로 보였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미쿠니 주택’과 같은 필체로 쓰인 ‘량량과 호미’는 오영락의 미발표 소설로 추정됐다. 그러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해독하듯 읽어내려간 작희의 일기에는 뜻밖의 진실이 쓰여 있었다. ‘미쿠니 주택’은 작희의 작품으로 오영락이 이를 훔쳐 ‘미쿠니 아파트’로 발표한 것이고, ‘량량과 호미’는 작희 어머니 김중숙의 작품이었던 것. 소설은 김중숙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성 권력에 도용당하고 묻혔던 작가 이작희의 삶을 펼쳐낸다.

작희의 어머니 중숙은 부유한 상인 남형의 막내딸로 귀하게 자랐다. 남형은 총명한 중숙에게 원하는 공부는 뭐든 시켜주고자 한다. 그러나 중숙의 오빠들이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고, 남형은 이 때문에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당해 병을 얻게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남형은 중숙을 충길의 아들 흥규와 혼인시키기로 한다. 훌륭한 인품의 충길과 달리 흥규는 성정이 포악했다. 중숙을 아끼던 남형과 충길마저 세상을 떠난 후 중숙은 외롭고 힘든 시집살이를 꿋꿋이 이어간다. 그러던 중 임신한 중숙은 푸른 파밭에 붓을 심는 여자아이가 나오는 태몽을 꾼다. 그는 아이가 ‘이야기를 지으며 기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작희(作囍)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중숙은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대신해 서포(서점)를 운영하며 가계를 꾸려나가고, 작희는 중숙의 바람대로 이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소녀로 성장한다. 어머니 중숙이 병으로 사망하고 서포를 물려받아 운영하던 작희는 작가 오영락을 만나 연인 사이가 된다. 오영락은 자신이 결혼해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작희를 만났고, 이를 알게 된 작희는 분노한다. 심지어 오영락은 작희가 신년문예 공모전에 낸 소설 ‘미쿠니 주택’을 훔쳐 자신의 소설 ‘미쿠니 아파트’로 발표하며 문단 안팎의 찬사를 받고 승승장구한다.

글을 쓰다가도 이내 붓을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야 했던 중숙, 낮에는 책을 팔고 밤에는 고단함을 견디며 글을 쓰는 작희. 이들은 가부장제의 강고한 억압하에서도 자신과 주변의 생계를 책임지며 기어이 글을 쓴다. 그렇게 써내려간 글마저도 남성 권력에 도난당할 만큼 시대는 ‘쓰는 여자’들에게 혹독했다. 그래도 이들은 ‘쓰기’의 욕망을 놓지 않는다.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글쓰기 때문에 삶이 순탄치 않게 흘러갔을지라도 글쓰기는 억압적 질서를 거스르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다친 작희는 일기에 “왼손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고 쓰면서도 글쓰기를 계속했다.

중숙과 작희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쓰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중숙은 시어머니가 딸에게 ‘말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누구 마음대로 내가 낳은 내 딸 이름을 당신들이 짓는가’라고 생각하며 제 뜻대로 이름을 짓는다. 작희는 어머니가 죽고 자신을 고리대금업자에게 시집보내려는 아버지 흥규에게 전혀 휘둘리지 않고 홀로 수레에 짐을 꾸려 서포의 다락방으로 독립을 한다. 남자들만 그득한 탕국집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혼밥’을 하며, ‘되바라진 년’이라는 소리는 경멸의 눈빛으로 되받아친다. 오영락의 문학회인 ‘사소회’에 참석해 문단에서 주목받는 유명한 작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당대의 삶과 괴리된 그들만의 글쓰기 논쟁에 끌려가지 않고 글쓰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자문한다. “서양 문물이 흘러들어온 경성에는 사소인과 같이 그 문물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식자들도 있지만, 하루 한 끼의 밥을 해결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허다하니 읽고 쓰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억눌리고 빼앗겨도, 그녀들은 글을 썼다 기어이…‘쓰는 여자, 작희’ [플랫]

작희를 비롯해 작품 속 주요 여성 등장인물인 중숙, 점예, 경혜, 미설의 삶은 폭력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안타깝고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먹먹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의 분위기가 어둡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서로를 챙기고 보듬는 이들의 관계 때문이다. 이 같은 여성들의 연대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도 이어진다. 작희와 은섬은 각자의 시대에서 ‘And’로 표상되는 환영과 ‘귀신’으로 서로를 만나며 글쓰기의 욕망과 그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은섬은 작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작희의 삶과 작품을 복원하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에서 일레인 쇼월트의 페미니즘 비평서 <그들만의 문학>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평한다. “(쇼월터는) 이 책을 통하여 남성 학문 권력에 의해 문학사에서 사라진 여성들의 문학사를 복원해낸다. 쇼월터의 작업이 이론적 작업이라면 이 소설은 창작의 지평에서 남성 권력에 의해 억압되거나 사라진 ‘그들만의 문학’ 혹은 여성성의 역사와 목소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 박송이 기자 ps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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