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유령
조너선 해슬럼 지음 | 우동현 옮김
arte | 636쪽 | 4만4000원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는 때때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가장 늦게 인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나간 역사를 복기하는 이들에게 두 가지 중대하지만 곧잘 잊히는 사실을 환기한다. 첫째, 역사 속의 주인공들은 생각보다 자기 나름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이 처한 상황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둘째, 이에 혀를 차는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케임브리지대학 국제관계사 명예교수 조너선 해슬럼은 <전쟁의 유령>에서 그간 전간기(1919~1939) 전후 역사 서술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한 ‘맹점’을 짚는다. 그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의 기원들 가운데 공산주의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간 세계사 서술에서 배제되어왔던 ‘사상’이 주체들에게 미친 영향을 세밀하게 파고들어간다.
전간기 영국 등 서유럽의 보수적 지도자들은 볼셰비즘의 유럽 심장부 ‘진격’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증오한 나머지 유럽에서 무서운 기세로 맹위를 떨친 파시즘의 명백한 위험성을 간과해왔다. 이뿐 아니라, 지도자 혹은 외교관 개인의 편견이나 순진함, 무지로 인해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고, 결정적인 징후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한다.
어떤 오판은 아이러니하게도 적확하게 미래를 예언하기도 했다. 1930년대 급격한 히틀러의 부상을 두고 독일 공산당의 공동창립자 프리츠 해커트는 말했다. “이(히틀러) 정부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붕괴에 대한 우리의 전체적인 전망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 ‘합리적인 개인’이 모든 상황을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해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 책의 독서는 한 가지 중대한 질문을 남기게 된다. ‘후세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어떤 맹점을 복기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