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등 “배다리의 가치 왜 스스로 파묻나”

2009.09.21 04:00

‘인천이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외국인들의 쓴소리

‘레지던스’ 보고회서 함께 고민… 내달 10일까지 ‘보존’ 서명운동

“배다리에선 개발 논리만 있을 뿐 역사·문화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세실 벨몽·프랑스)

“앞으로 배다리는 개발에 밀려 수십 년 수백 년의 역사를 잃고 말 겁니다.”(닉 스프랫·뉴질랜드)

19일 오후 인천시 동구 배다리에서는 해외 시각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시름하고 있는 ‘인천 배다리’를 걱정했다. 대안문화 예술공간 ‘스페이스 빔’이 이날 ‘사랑방 손님과 배다리’란 제목으로 레지던스(예술창작 지원) 프로그램 결과보고회를 열고 작가들만의 토론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엔 국내작가 2명, 해외작가 3명 등 모두 5명이 참여했다.

해외작가등 “배다리의 가치 왜 스스로 파묻나”

이날 보고회에서 작가 닉이 가운데가 잘린 배다리 위성사진과 가운데가 빈 의자를 보여주자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도 가운데를 자른 건 산업도로로 둘로 나뉜 배다리를 표현한 거예요. 창영초등학교에서 가운데 자리가 빠진 의자를 발견했는데 제목은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는 의자’에요. 마치 배다리와 같은 느낌이었죠.”

작가 세실도 배다리에 대한 자신의 문자퍼포먼스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에게 알파벳이 적힌 티셔츠를 나눠주고 함께 모이면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란 문장을 만들었어요. 배다리의 어려움이 있더라고 희망을 잃지 말자는 생각을 표현한 거죠.”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안드레아 포사다와 국내 작가 이우성, 려원도 이날 보고회에서 배다리에 대한 남다른 고민을 풀어냈다. 한 달 동안 지낸 여인숙의 표정, 골목 사이에 놓인 아기자기한 화단, 상인들의 표정 등 배다리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이들에게 가치 있는 재발견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문화였다. 때론 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험한 소리도 들었지만 “배다리를 지켜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안드레아 포사다는 “반세기 역사를 간직한 곳을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 개발로 사라진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배다리 위기는 심각하다. 2006년 중구 신흥동과 동국 동국제강을 잇는 고가산업도로에 이어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계획’으로 새로 들어서는 임대아파트(176가구)·주상복합건물(279가구)까지 배다리는 하루 아침에 반세기 역사를 잃는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18일 배다리 책방거리 보존 및 에코뮤지엄 조성을 위한 ‘역사문화지구 지정 촉구’ 서명 운동에 돌입한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www.vaedari.net)’은 다음 달 10일까지 서명을 받는다.

배다리:인천시 중구와 동구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 동구 송림동, 금천동,송현동이 포함된다. 1900년 경인철도가 부설된 뒤 철로변을 개발할 때까지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란 이름이 붙었다. 19세기 말까지 큰 갯골이 있어 만조 때만 되면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30여년 역사를 지닌 아벨서점을 비롯해 헌책방 10곳이 밀집해 있어 인천의 대표적인 헌책방골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창영초등학교 등 시지정 유형문화재인 근대건축물 3동도 자리하고 있어 인천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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