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은 4일 아냐?’ 한국인 문해력 논란의 진실

2020.08.02 07:47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사흘 쉰다고 했으면 4일 동안 쉬는 것 아니냐.”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때문에 뜬금없는 ‘사흘’ 논란이 벌어졌다. ‘사흘’을 3일이 아니라 4일로 알고 있었던 네티즌들이 예상보다 많았던 탓인지 ‘사흘’은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각종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사흘 논란’을 계기로 젊은 세대의 기초 어휘 이해가 부족하며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반해 비교적 연령이 높은 세대에서 문해력이 낮게 나왔다는 세대 비교 자료까지 나오면서 문해력 논란은 더욱 심화됐다.

16~24세 한국인 문해력 OECD 4위
한글을 문자로 사용하는 한국인 가운데 글을 아예 읽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인 문맹률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의 가장 최근 공식 조사결과를 보면 1.7%에 그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읽고 활용하는 능력을 비롯해 문학작품이나 신문기사 등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등도 포함한 언어능력으로 따지면 다소 차이가 있다. 사흘처럼 기초적인 낱말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의 실질적인 문해율은 낮다는 세간의 인식과 연결된다. 그 결과 한국인의 실질적 문해율이 낮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서로 맞서는 형편이다.

실제 자료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사실을 따지면 왜 이런 상반된 인식이 나오게 됐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실질적 문해율이 비교대상 국가들보다 낮다는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자료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04 한국 교육인적자원 지표’다. 이 자료를 보면 한국인 성인들의 실질적 문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조사대상국 22개국 중에서 최저 수준이었다. 조사결과 한국인 중 ‘생활정보가 담긴 각종 문서에 매우 취약한’(1단계 문서해독 수준) 비율은 전체의 38%로 OECD 조사대상국 평균인 22%보다 크게 높았다. 다소 언어능력이 앞서지만 ‘일상적인 문서를 겨우 해석할 수 있으나 새로운 직업·기술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운’(2단계) 비율 역시 37.8%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선진사회의 복잡한 일상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서 독해 수준’(3단계) 이상을 갖춘 비율은 24.2%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자료에 바탕을 두고 한국인의 문해율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맞서는 목소리도 있다. 해당 조사의 바탕이 된 ‘국제성인문해조사(IALS)’는 이후 조사항목과 세부사항을 보완해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로 바뀌었다. 보다 최신이고 조사방법이 정교해진 국제비교 자료는 OECD가 발표한 2013년의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다. 이 자료를 보면 16~65세 한국인의 평균 문해력은 점수로 273점을 획득하며 OECD 평균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됐다. 영국이나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프랑스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나왔다.

두 조사에서 상반돼 보이는 결과가 나왔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큰 변화는 없다.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는 조사대상국이 33개국으로 늘어나 중위권에 들었고, 이전 조사에서는 22개국을 비교해 하위권에 속했다는 점을 보면 순위에서 큰 변동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연령대별로 보면 언어능력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16~24세 한국인 문해력은 OECD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았지만 가장 고령 집단인 55~65세의 문해력 점수는 꼴찌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낮아서 연령별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문해력 측정 점수가 떨어지는 현상 자체는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결과를 보면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 다른 나라들과 비견된다. 48점에 달하는 격차는 조사대상국 가운데 가장 큰 차이다. 여기에 문해력 수준이 낮아 실질적 문맹으로 인식되는 ‘매우 낮음’에 해당하는 비율이 55~65세에선 31.27%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비율이 16~24세에선 2.84%에 불과했고, OECD의 55~65세 평균도 24.12%여서 국내에서 더 높게 나타났음이 확인됐다.

“사흘을 어감상 비슷한 4일과 혼동한 것”
국내의 고등교육 환경변화를 알고 있다면 이와 같은 연령별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현재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를 정도로 교육환경이 개선됐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고등교육 경험 비율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OECD 보고서는 이러한 연령별 격차에 대해 “한국은 교육을 개선한 결과 고령 세대에서 보이는 낮은 문해력에 비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향상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요약하면 전체 한국인의 문해력은 OECD 안에서는 평균적인 수준이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2013년의 조사결과는 전체 조사대상국에서 15만명 이상, 국내에서도 6000명 이상을 동원해 대규모의 조사를 진행한 만큼 보다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은 자료다.

그런데 ‘사흘’이라는 낱말의 뜻조차 모르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중장년층 이상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낱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흘 논란의 대상이 대체로 젊은 세대를 향한 것이라는 데는 연구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김한별 서강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이와 같은 논란이 벌어진 이유가 ‘사흘’이 젊은 세대에 낯선 단어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고령 세대에선 젊은 세대가 쓰는 신조어를 잘 모르듯, 젊은 세대에선 ‘하루’나 ‘이틀’보다 급격히 사용빈도가 떨어지는 ‘사흘’부터는 아예 쓰지도 않아서 모르는 어휘가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흘을 어감상 비슷한 4일과 혼동하게 된 것도 잘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부정확하게 유추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또 다른 교수도 젊은 세대의 언어습관과 기초 어휘가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음을 여러 번 느꼈다고 말했다. 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름이 알려진 대학의 학생들이 과제나 시험답안으로 써내는 글에서 발견하는 어휘나 문장이 기초적인 맞춤법이나 어법도 못 지키는 모습을 갈수록 자주 보게 된다”며 “그나마 글을 자주 쓰는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일부 교정이 가능하다 쳐도 다른 전공 분야의 학생들에게선 학년이 올라가도 개선되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교육자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문해력과는 별개로 일부 어휘를 낯설게 여기게 되는 세대별 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될 필요까진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언어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해간다는 점에서 보면 그저 세대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김한별 교수는 “젊은 세대가 사흘 같은 낱말을 낯설게 여기는 것은 주로 의사소통을 하는 공간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어서 다른 세대와는 구분되는 언어환경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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