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애는 왜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일까…그 시선부터 철폐되어야 한다

2022.04.19 22:07 입력 2022.04.20 00:01 수정
이길보라

‘장애인의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동권 시위. 영화 <버스를 타자>의 한 장면.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동권 시위. 영화 <버스를 타자>의 한 장면.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이준석 대표·박경석 대표의 ‘썰전’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혐오 여전
20년 전 영화 ‘버스를 타자’ 데자뷔

수어통역·자막도 제공하지 않아
과연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시설·장애인 가족·국민들
침묵의 카르텔 탓에 방치된 인권
하지만, 투쟁 이어온 이들을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장애인의날이 싫었다. 장애 부모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날에만 특별하고 거창하게 호명되는 게 싫었다. 농인 부모는 종종 표창장을 받으러 단상에 올랐다. “귀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역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상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농(deafness)과 함께 살아갈 뿐인데 왜 극복했다고 말하는지, 어째서 장애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장애인의날이라고 ‘장애 체험’을 했다. 눈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거나 한쪽 팔이나 다리를 쓸 수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했다. 수업을 마치고 감상을 나눴다. 친구들은 장애인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지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장애인의날이 끝나면 장애는 사라졌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가 있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앞을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리를 쓸 수 없는 것은 왜 가여운 것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결여와 손상에만 초점이 맞춰지는지 궁금했다. 장애인과 장애인가정은 어째서 이런 날에만 호명되는지 알고 싶었다.

일련의 경험을 한 후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장애인가정이라는 이유로 단상에 불려 올라가는 것도 싫었고 그런 부모를 보는 것도 싫었다. 이럴 거라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정부, 정치가, 기업가 등이 장애인의날을 대중적 이미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쓰거나 허울뿐인 장애인 복지 정책을 내놓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비판하며 시혜와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알려내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서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부른다는 것을, 그 투쟁의 역사를 이어온 이들이 있다는 걸 말이다.

영화 <버스를 타자>에서 2001년 ‘장애인과 지하철을 탑시다’ 행사의 일환으로 장애인들이 집단 승하차를 하자 열차가 지연되어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방송하는 기관사와 이를 쳐다보는 사람들.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영화 <버스를 타자>에서 2001년 ‘장애인과 지하철을 탑시다’ 행사의 일환으로 장애인들이 집단 승하차를 하자 열차가 지연되어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방송하는 기관사와 이를 쳐다보는 사람들.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장애인 이동권 보장으로부터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에 이르기까지

박종필 감독의 작품 <버스를 타자: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2002)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문구를 목에 건 장애인 당사자들이 집단 승하차를 한다. 열차 출발이 지연되자 어떤 승객은 눈살을 찌푸린다. 어떤 이는 내가 미국에서 왔는데 거기는 이렇게 시위하지 않는다며 짜증을 낸다. 누군가는 왜 시민을 볼모로 잡아서 이런 시위를 하느냐며 화를 낸다. 영화는 휠체어를 타고 열차에 오르내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담는다. 다른 승강장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휠체어 리프트의 버튼을 누른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호출 버튼을 눌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설사 작동이 되더라도 안전장치에 문제가 있어 위험하다. 카메라는 계단 아래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담는다. 속도가 느려 지루하다. 그러나 감독은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기를 택한다. 관객은 영화라는 시청각매체를 통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불안하고 위험하며 때로는 한없이 불편하고 지루한 시간임을 감각한다.

영화는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을 좇는다. 21년 전 제작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들은 낯설지 않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왜 시민을 볼모로 잡아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느냐”는 말은 지난 3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를 “서울시민을 볼모로 삼아 불법 시위를 한다”고 말한 것과 정확하게 닮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2001년 서울시 보건복지국장과 면담하면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요구안을 전달하고 시장 면담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국장은 이번 시장이 취임하면서 과거에 없던 장애인 복지과를 새로 만드는 등 장애인 복지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고 강조한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장은 우리는 진짜 장애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시위를 하고 언론에 폭로를 하니까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 열의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는 이준석 대표가 4월13일 JTBC <썰전>에 출연해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토론할 때 “(장애인 이동권) 약속이 지연될 수 있지만 앞으로 가고 있지 뒤로 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과 겹친다.

2001년 보건복지부 통계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7명이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2020년에는 8.8%의 장애인이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하지 않고 12.9%의 장애인이 많아야 세 번 외출한다고 답했다. 외출하지 못하는 이유로 64.8%의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몸이 불편하거나 외출 도우미가 없어서를 꼽았다. 박경석 대표는 20년 동안 장애인의 삶은 수치로 따지자면 -100에서 -80 정도로 왔을 뿐이라고, 20 정도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말한다.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과 2022년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혐오의 말들은 끔찍하게도 닮았다. 그러나 2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당사자들은 비장애 중심 사회구조에 굴복하지 않고 이 투쟁을 장애인의 전반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민운동으로 확장해낸다. 장애인에게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외침과 함께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와 이를 위한 권리 예산 확보를 주장한다. 이는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의제가 된다.

영화 <버스를 타자> 중 2001년 장애인이동권 시위에서 불법 시위를 하지 말라고 하자 “명백한 불법은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고 대답하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영화 <버스를 타자> 중 2001년 장애인이동권 시위에서 불법 시위를 하지 말라고 하자 “명백한 불법은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고 대답하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탈시설을 해낸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의 기본이 되는 것은 탈시설 권리라고 말한다. 시설에서 나와야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 맞춰 출간된 책 <집으로 가는, 길>은 국내 최초로 폐지된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통과한 연대의 기록이다. 장애인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재라는 것을 정확하게 증명한다.

경기 김포시에 위치한 ‘향유의집’에서 살던 한 장애 당사자가 시설 내부의 비리를 최초로 고발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거주인들은 직원들에게 비리 폭로에 함께해달라고 부탁하며 이를 증명할 자료를 모은다. 휠체어를 타고 시설 바깥의 장애운동단체를 비롯한 탈시설운동가들을 찾아가 연대를 요청한다. 투쟁은 시설 바깥의 이동권 투쟁을 비롯한 장애운동과 만나며 힘을 얻는다. 평생을 시설에서만 살아왔던 거주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시설에서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운다. 휠체어를 타고 멀리 떨어진 영화관에 가 영화를 보는 일이 정말 재밌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의 막차가 끊겼을 때 혜화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외박을 할 수도 있고, 탈시설을 한 동료의 집에 찾아가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연결과 연대의 감각을 체험해나가며 시설 내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1인시위를 비롯한 노숙 농성을 하면서 투쟁을 전개한다.

놀랍게도 이 투쟁은 성공한다. 시설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최초로 자발적으로 시설을 폐지해낸다. 모든 거주인들을 시설 바깥으로 탈출시켜 사회에 정착하도록 지원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만들어낸 장애 당사자를 비롯하여 거주인, 직원, 탈시설장애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구술과 사진 기록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탈시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설 안의 사람들과 시설 바깥의 사람들이 장애운동으로 연대하며 이뤄낸 성과임을 보여준다.

권리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탈시설운동가로서 ‘향유의집’을 포함한 여러 시설을 관리하는 재단의 이사장이 되어 거주인의 탈시설과 시설 폐지를 추진한 김정하는 발달장애인이 탈시설을 하게 되면 언어가 발달한다고 말한다. 시설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을 호명해서 대화하는 일이 없는데 자립해서는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어떤 게 좋은지 등의 일상적 대화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언어가 발달한다고 말이다. 이는 연구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향유의집’ 사무국장 강민정은 “환경이 바뀌면 관계망이 변하고 활동범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한다”고 말한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혁명의 언어로

앞서 언급한 JTBC <썰전> 장애인 이동권 시위 토론에서 두 사람의 언어는 판이하게 달랐다. 현장에서 당사자로서 장애운동을 해왔던 박경석 대표와 정치를 하며 TV토론 같은 미디어 훈련이 되어 있는 이준석 대표의 언어는 프로그램의 포맷과 방송국이라는 공간,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어떤 언어와 발화의 방식이 유효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박경석 대표는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뜬금없이 랩을 했다.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는 2001년 이동권 투쟁 당시 민중가수가 만들어준 음악이다. 차분하고 적확하며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하지 못하면 그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조롱의 대상이 되는 공간 안에서 박경석 대표는 20년 전부터 이어온 투쟁의 역사를 자신만의 언어로 발화하기를 택한다.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장애당사자가 토론자로 섰을 때 어떤 언어로 말하고 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송에는 수어·자막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농인 및 청각장애인은 두 사람이 두 시간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휠체어를 탄 박경석 대표의 시선과 의자에 앉은 비장애인 이준석 대표의 눈높이 위치가 달라 한쪽이 한쪽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형성되었던 것과 같다. 생각해본다. 만약 농인이 정보접근권과 농접근권을 보장해달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토론에 나선다면 그의 언어는 어떻게 통역할 것인가. 다수가 음성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음성언어가 토론의 공용어가 되는 것이 공정한가. 발달장애인이 토론 현장에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의 언어를 해석하고 통역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다릴 것인가. 사회는 그런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어떤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이들의 투쟁을 두고 누군가는 다 좋은데 여기서 하지 말라고 지하철이 아니라 정부나 국회에서 하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와 국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설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는 “시설이 인권침해의 온상이었음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시설 운영자, 장애인의 가족, 국민 등 4자 간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하고 침묵하고 방조했던 국민 모두의 문제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혐오의 말들을 마주할 때면 절망하다가도,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온 이들을 보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새로운 세상으로의 지도를 제시하는 이들의 언어를 한 번 더 믿고 싶다. 그들이 내게 끔찍하게도 싫은 장애인의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라는 혁명의 언어를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7) 장애는 왜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일까…그 시선부터 철폐되어야 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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