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영우’ 박은빈, “이상하지만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자폐인 따라하기 금기로 삼고 연기”

2022.08.24 08:00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캐릭터

기존 작품이나 참고 인물 아예 배제

흰고래와 섞여 사는 외뿔고래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성장하는 과정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지난 18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은 배우 박은빈(30)이 아니었으면 누가 맡았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박은빈은 회차마다 쉼표 하나 없는 긴 대사를 정확한 발음으로 줄줄 읊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서 선천적으로 감정교류를 잘 못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공감능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상’하고 사랑스러웠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 것은 배우 박은빈의 힘이 컸다.

감독과 작가 모두 박은빈이 우영우 역에 적임이라고 봤지만, 사실 박은빈은 우영우 역을 한 차례 고사했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은빈은 “모두가 저를 믿어주시는데 제가 그만큼 잘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것이 이유였다”고 털어놨다. “역할을 접할 때면 선입견 없이 그 캐릭터가 뛰어노는 모습이 그려져야 하는데 첫 제안을 받았을 때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재차 제안이 온 뒤에야 용기를 내 역을 수락했고 결국 박은빈은 우영우라는 세계를 멋지게 그려냈다.

박은빈은 “좋은 드라마라고는 생각했지만 2회부터 저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우영우>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에 올랐다. 첫 회 0.9%였던 시청률은 마지막회에 17.5%(닐슨코리아 비지상파 유료가구 기준)까지 치솟았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TV드라마 부문 1위에 3주 연속으로 오르는 등 해외 시청자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이 같은 인기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평소 재미나 웃음은 문화적 코드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시청자 감수성이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폐가 있는 여성을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소통하는 여성으로 내세운 것은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인물이 대형 로펌이라는 곳에 던져져서 어떻게 그 세계에 스며들고 어떤 어려움을 맺으면서 관계를 맺고 성장을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목격하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어요.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호기심 있게 봐주시고, 생경한 영우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주셔서 감사해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자폐인이라고 해서 반향어, 강박행동 등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 능력이 미숙한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박은빈은 기존 작품에서 다뤄진 자폐인 캐릭터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그는 “자문 교수님이 우영우라는 인물은 실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문을 해주셨는데, 그러면 이 드라마에서 창작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어떤 인물을 표현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억양이나 행동에 있어서 실제 자폐인 분들을 따라하는 것만은 절대 금기로 여기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배우마다 다 방법론이 다르겠지만, 실제 자폐인을 그저 관찰하고 그분들의 모습을 도구적 장치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방법론이었어요. <우영우>를 통해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우영우의 독자적 캐릭터를 구축해서 고유성을 찾자 … 그래서 레퍼런스(참고가 될 만한 인물)들을 배제했죠. 자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자폐 스펙트럼 진단기준을 찾아본 것이 캐릭터 해석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예전에 나왔던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기준 4가지를 찾아보고, 참고서적을 공부하며 우영우의 특징을 세분화하려 했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ENA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ENA 제공

드라마가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우영우>의 인기로 인해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뜨거워졌다.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에 박은빈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서 고마움을 전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박은빈은 “매체에서 자폐와 관련해서 어두운 부분만 강조를 하곤 했는데, 자신들만이 아는 자폐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표현을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제가 그리고자 했던 방향이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기를 바랐는데, 옳은 길이었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영우>는 모든 회차마다 다른 법정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은빈에게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꼽아달라고 하니 3, 4화를 꼽았다. 3화는 친형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오해를 받은 자폐인을 통해 중증 자폐인 가족의 어려움을 보여준 회차다. 4화는 우영우의 절친인 동그라미(주현영)의 가족 송사를 해결해주는 내용이다. 가장 울림을 줬던 대사로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를 꼽았다.

“그 대사에 이 드라마가 영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다 들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대사처럼 이 세상에는 흰고래무리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수많은 외뿔고래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외뿔고래라고 느끼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는 면에서, 큰 울림을 주는 대사였어요.”

아역 배우로 데뷔한 박은빈은 올해로 27년차 중견배우다. <청춘시대> <스토브리그> 등으로 이미 큰 사랑을 받았지만 <우영우>로 박은빈에게 쏟아진 관심은 그 이전과 견줄 수 없이 크다. <우영우>가 배우 인생에 있어 더 특별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는지 묻자 그는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고 기억되겠지만, 저는 제가 연기한 모든 작품과 캐릭터들이 특별하고 사랑스럽다”며 “이전과 크게 변할 것 없이 살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우영우>는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다시 한번 새기게 한 계기가 됐다. 그는 “제가 누군가의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배우로서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늘 인지하는 사람”이라며 “기대 이상의 관심을 모두로부터 받은 것은 정말 도의적 책임이 느껴지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우영우>가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키고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작품이 종영된 이 시점부터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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