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0년>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글쓰며… 인생 후반 가꾸는 ‘지혜의 정원’

2022.12.16 17:18 입력 2022.12.18 07:48 수정

< 5 > 부산 영도도서관 ‘독서치료’ 지혜학교, 그 후

지난주 7일 수요일 오전, 멀리 바다가 보이는 부산 영도구 함지로의 영도도서관 내 지혜 플러스관 문을 열자 토론의 열기가 후끈했다. 주제는 ‘환경’. <침묵의 봄>과 <그레타 툰베리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 두 권이 주 텍스트였지만, 원자력에너지를 환경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부터 개인의 실천과 정부·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정치·소비자 운동까지, 또 각자 경험담과 실천적 제안, 환경 문제로 돌아본 인간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이야기가 흘러넘쳤다.

부산 영도도서관이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지혜학교 참가자들과 고혜림 강사(뒷줄 맨 왼쪽)가 지난 7일 후속 모임 ‘지혜정원’의 두 번째 토론 모임을 가진 후 도서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혜학교를 수료한 11명 중 9명이 ‘지혜정원’에 합류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부산 영도도서관이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지혜학교 참가자들과 고혜림 강사(뒷줄 맨 왼쪽)가 지난 7일 후속 모임 ‘지혜정원’의 두 번째 토론 모임을 가진 후 도서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혜학교를 수료한 11명 중 9명이 ‘지혜정원’에 합류했다.

이날 모임은 영도도서관이 지난 8월10일부터 10월26일까지 12주간 매주 수요일 오전 3시간씩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지혜학교의 두 번째 후속모임이었다. 도서관 지혜학교는 지역 대학이 기획하고 도서관과 연계해 신중년의 인문활동을 지원하는 인문심화 프로그램이다. 2019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으며 올해는 137개 도서관 140개 프로그램으로 확장됐다.

고혜림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제안한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는 강연·글쓰기·발표를 병행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이다. ‘독서치료를 통해 나를 찾는 여정’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의미있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신중년 대상의 지혜학교와 나를 들여다보는 독서치료는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내 마음과 감정을 살피고, 여러 관계 속의 나를 다양하게 조명해 보며,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는 가운데 반신반의하던 참가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가족사로, 분노 치유 책을 찾다가 광고를 보고 가장 먼저 지혜학교에 신청한 강맹수씨는 “독서와 글쓰기의 치유 효과를 톡톡히 경험했다”며 “몇 년간 잃었던 웃음도 이곳에서 찾았다”고 했다. 삶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위기상담을 하던 한사랑씨는 심신이 지쳐 몇 년간 은둔생활을 하다가 지혜학교를 통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한씨는 “항상 남을 도왔고, 그 사람의 행복에 초점을 맞췄는데, 나를 탐색하며 나 자신의 행복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의 3학점짜리 수업이나 마찬가지인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한번 들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져야지’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한정진씨는 “나답게 사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며 나 자신을 종합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아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교사와 심리상담 전문가, 회사와 공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하거나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 이들, 저녁시간엔 학원 원장으로 일하는 현역, 전업주부 등이 어울려 다양한 음색의 화음을 만들었다. 40대부터 70대까지, 참가자들은 살아온 배경도, 생각도 조금씩 달랐지만, 2~3주 쭈뼛쭈뼛하다가 팀을 짜서 주제별로 얘기도 하고, 자기 얘기를 글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가운데 어느새 속깊은 얘기를 털어놓으며 프로그램 제목대로 저마다 ‘독서치료를 통해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업 중 썼던 글을 모아 <내 삶에 말을 걸다>는 책까지 냈고, 헤어지기 아쉽다는 이심전심으로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을 하고 글로 정리하자며 ‘지혜정원’이란 이름의 후속모임까지 만들었다. 지혜학교에서 후속모임이 꾸려진 건 이례적이다. 참여자들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 강사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수님께서 심리적인 면을 살펴 다양하게 학습자와 강습자, 학습자끼리의 교감을 리딩해 주셨어요. 교우들과 관계가 좋아지고 편하니 후속모임도 하게 된 것이죠”(이명숙). “제가 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여기선 쓸데없는 소리도 해요. 누구든 입을 열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셨어요”(서혜임).

총무를 맡고 있는 학원 원장 조재범씨는 곳곳의 지혜학교를 5번이나 수료했지만 후속모임은 처음이라고 했다. 조씨는 “일방적 강의가 아닌 참여형 프로그램이어서”라고 분석하며 “수업을 계속 들으면서 딱딱했던 ‘엄근진(엄숙·근엄·진지)’ 얼굴 근육도 풀어지고 표정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는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좀더 따뜻하게 다가가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놀라운 성장을 지켜본 고 교수도 뿌듯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강의하던 고 교수는 학생 상담이 계기가 돼 뒤늦게 독서치료를 다시 전공했다. 독서치료의 효과를 자신이 먼저 경험하고 사명감을 느껴 열심히 3년 내내 지혜학교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고 교수는 “격동의 시대를 겪어 오며 그 과정에서 ‘나’를 억누르고 계셨던 수강생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말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자기 얘기를 술술 꺼내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모두들 책을 너무 잘 읽으실 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피드백이 간단하게만 들어가도 ‘내것’으로 소화해 놀라울 만큼 빨리빨리 성장하셨다. 대학생들보다 훨씬 열성적인 모습에 느낀 바가 크다”고 말했다.

영도도서관은 지혜학교가 끝난 뒤에도 강의실 사용 등 가능한 부분은 뭐든 지원하려 애쓰는 ‘지혜정원’의 든든한 후원자다. 박지수 담당 사서는 “영도구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섬 자치구라는 특징적인 곳이다.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는 높지만 원도심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65세 이상 노년층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 지혜학교가 잘 운영되길 기대했는데,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후속모임까지 만들어져 보람이 크다”고 했다.

모임의 최연장자이자 회장인 김영선씨(73)는 공대 출신으로 책을 별로 안 읽다가 뒤늦게 독서에 취미를 붙였다고 했다. 지혜학교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까지 만나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는 김 회장은 “내년엔 여행도 추진하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책을 좋아하는 서혜임씨는 친구들과 책 얘기를 하면 늘 겉도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는데, 지혜학교와 후속모임을 통해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를 배우고 이를 나눌 친구들을 만난 2022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고 말하는 이들은 내년엔 독서토론 내용을 묶은 또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지혜의 정원에서 인생 후반이 반짝인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0년>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글쓰며… 인생 후반 가꾸는 ‘지혜의 정원’ 이미지 크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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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도서관이 12주 동안 진행한 ‘독서치료’ 지혜학교는 참가자들의 높은 호응을 끌어냈다. 위에서부터 고혜림 교수의 강의, 팀별 토론, 수료식 장면. 맨 아래는 지난 7일 지혜학교의 후속모임인 ‘지혜정원’ 참가자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 이미지 크게 보기

부산 영도 도서관이 12주 동안 진행한 ‘독서치료’ 지혜학교는 참가자들의 높은 호응을 끌어냈다. 위에서부터 고혜림 교수의 강의, 팀별 토론, 수료식 장면. 맨 아래는 지난 7일 지혜학교의 후속모임인 ‘지혜정원’ 참가자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

<시리즈 끝>

부산 |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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