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즈데이’로 레이디 가가 ‘블러디 메리’ 인기
‘큐피드’ ‘킬 빌’부터 ‘나문희의 첫사랑’까지
대중의 2차 창작 vs 원곡 예술적 의도 왜곡
빠르게 돌리면 뜬다?
‘스페드 업’(Sped up)이 전 세계 대중음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짧은 길이의 동영상이 주된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떠오른 데 따른 변화다.
스페드 업이란 특정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2차 창작이자 그 결과물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원곡 속도에 130~150% 가량을 배속해 만든다. 속도를 끌어올린 곡은 가수의 목소리가 달라지거나, 가사가 뭉개지면서 원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블러디 메리’(2012)는 스페드 업을 통해 11년 만에 음원 차트를 역주행했다. 시작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였다. 주인공 웬즈데이가 학교 무도회에서 ‘블러디 메리’의 빠른 버전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춤을 따라하는 ‘웬즈데이 챌린지’가 시작됐고 원곡 또한 덩달아 다시 인기를 얻었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명 ‘띵띵땅땅송’이라 불리며 유행한 베트남 가수 호앙 투 링의 ‘시 팅’도 원곡보다 속도를 높인 스페드 업 버전이다.
SZA - Kill Bill (Sped Up Version (Audio))
스페드 업이 떠오른 배경에는 쇼트폼 플랫폼이 있다. 틱톡, 유튜브 숏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쇼트폼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영상은 길어도 1분 내외다. 영상 배경에 깔리는 노래도 덩달아 짧아진다. 평균 3분 정도인 음악에서 하이라이트를 짧은 영상에 담으려다 보니 빠르게 돌린 음악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
데뷔 4개월 만에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에 성공한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도 틱톡에서 먼저 인기를 얻었는데, 원곡보다 스페드 업 버전이 더 알려져있다.
스페드 업 버전이 대중의 호응을 얻자 아예 빠른 템포로 배속한 음원을 정식으로 내놓는 가수들도 등장했다. 미국의 인기 싱어송라이터 시저(SZA)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킬 빌’의 빠른 버전이 숏폼 콘텐츠에서 인기를 얻자 다음 달인 지난 1월 스페드 업 버전을 선보였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는 히트곡 ‘아임 낫 디 온리 원’(2014)을, 미국 가수 데미 로바토는 ‘쿨 포 더 서머’(2015)을 각각 지난해 스페드 업 버전으로 다시 내놨다.
스페드 업은 새로운 밈까지 탄생시켰다. 올해 초부터 온라인에서 유행 중인 일명 ‘나문희의 첫사랑’이 그 예다. ‘나문희의 첫사랑’은 가수 허밍어반스테레오가 2004년 발표한 ‘바나나 쉐이크’의 스페드 업 버전이다.
2020년 한 해외 틱톡커가 영상을 만들면서 ‘바나나 쉐이크’를 빠르게 돌려 배경음악으로 썼다. 그러자 이 곡의 가사인 ‘너무 휘어졌어’가 ‘나문희의 첫사랑’으로 들리는 효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 연말 한 시상식에서 선보인 원더걸스의 히트곡 ‘텔미’ 무대 영상이 더해졌다. ‘바나나 쉐이크’의 스페드 업 버전에 맞춰 ‘텔미’ 안무를 추는 ‘나문희의 첫사랑 챌린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업계는 이번에도 반응했다. 해당 음원의 유통사인 워너뮤직 코리아는 지난달 아티스트와 상의 끝에 ‘바나나 쉐이크’의 스페드 업 버전을 공식 발매했다.
대중에 의한 2차 창작이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든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이 트렌드가 음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원곡과 아티스트가 의도한 예술적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영상을 배속해서 보는 것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