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심사위원장 김형석, 위원 이상호·정민아) 수상작에는 이병현 평론가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박찬욱 선언문’이 선정됐다.
이 상은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20년 제정됐다. 강원 인제군과 인제군문화재단, 경향신문,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시 부문 상금은 3000만원, 영화평론은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16일 인제군 박인환문학관에서 열린다.
정끝별 시인은 어머니 별세(8월 19일) 사흘 뒤 2023 박인환상(경향신문·인제군 공동 주최) 시 부문 수상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 유택(幽宅)을 다지던 중이었다고 한다. “경황없던 상황이라 더욱 당황했지만, 확실한 느낌은 엄마가 들썩이는 제 어깨를 토닥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남성중심적인 대가족의 막내딸, 남성중심적인 문단 말석의 시인인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충분한 곁 혹은 품”을 주지 못한 결여와 미달을 떠올리며 어머니와 두 딸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피와 살과 영혼을 공유하는 존재들이기에 제가 숨 쉬는 이유이자 매일매일을 나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고. 제 삶을 메꾸고 완성하는 제 눈부처였던 든든한 밑돌이었다고. 그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여성, 조금 더 나은 시인을 향한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수상작인 시집 <모래가 뭐래>(창비)에 수록된 ‘응암동에 엄마가 산다’는 어머니 이야기다. 정 시인은 e메일 인터뷰에서 “신음 같은 응의 부추김과/ 바위 같은 암의 다짐”이란 이 시 구절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4남 2녀를 낳고 길러내신 분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경우가 바르고, 흥이 많아 유쾌하고, 지혜롭고 강인한 분이었어요. 저와는 특히 ‘케미’가 좋았는데, 다른 자식들에 비해 제가 엄마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던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정 시인은 별세 직후라 “여성으로서의 엄마”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수상소감을 썼다고 한다. 별세 전 6개월을 모시며 가까이한 언니, 두 딸을 떠올리며 “다른 여성의 삶과 여성의 돌봄노동이나 여성공동체 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듯하다”고 했다. 시집 중 ‘언니야 우리는’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시라고 한다.
“그래 언니야 우리는 같은 엄마의 여자였고 서로의 엄마였어 그러니까 서로의 애기였고 서로의 얘기였어// 너는 언니라서 더 지치고 나는 동생이라서 덜 지치고/ 너는 맏딸이라서 더 외롭고 나는 막내딸이라서 덜 외로웠을 뿐/ 더 더 외롭고 더 더 지친 엄마 다리에 네 다리와 내 다리를 엇갈려 묻고 마주 앉아/ 퉁퉁 부은 서로의 다리에서 한 다리씩의 어둠을 뽑아/ 무청 같은 날개를 달아주며”.
정 시인은 교수(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로서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게이즘, 트랜스젠더리즘과의 착종, 대립, 연대 속에서 발전해온 퀴어의 정체성”과 “페미니즘과 연동된 레즈비어니즘의 비유화된 발화 양상” 등을 살피는 ‘한국 현대시, 퀴어링으로 횡단하기’ 같은 논문을 썼다.
언뜻 보면 시에서 정 시인의 페미니즘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 시의 7할은 페미니즘 시예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가 많지 않고 숨겨져 있거나 우회적으로 드러내서 그렇죠.” 이화여대에 입학한 스무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페미니즘에 눈을 떴다고 한다. “딸, 애인, 아내, 엄마, 여성시인, 여성평론가, 여성연구자, 여성교수로 살면서 늘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조건들과 싸워야 하는 타자화된 주체”라는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정 시인은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의 지향점이 여성해방, 양성평등이었다면, 21세기 지향점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성 소수자 해방, 성평등이라고 본다. “페미니즘을 넘어 퀴어에 대한 관심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향과 관심은 <모래가 뭐래>에서 동물과 동물권, 생태 문제로 확장했다. “오징어인 줄 알고 어미 새가 삼킨/ 하얀 비닐봉지를 아기 새가 받아먹고// 일용할 양식으로 일용한 죽음의 배식// 빙하 조각처럼 떠돌다 해안에 도착한/ 거대한 스티로폼 더미에 갇혀”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의 일부다.
정 시인은 “동식물, 생태, 환경, 기계 등에 관한 관심은 포스트휴먼의 조건이기도 한데, 20세기적 인간(남성, 백인)중심의 패러다임은 시효를 다 한 듯하다”고 했다. ‘식물 집사’였던 어머니을 기억하고, 두 딸의 미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생태와 환경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고요. 생명, 돌봄, 살림, 공생 등의 가치가 이론이 아닌 일상이자 생존의 문제라서 자연스럽게 삶 속에 스며들었어요. 그것이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삶의 뿌리이기도 하겠구요. 그것이 21세기 패러다임이기도 하겠구요.”
정 시인은 두 딸이 성년이 되면서 한 마리씩 데려온 아깽이(아기 고양이)를 키운다. 한 마리는 바위틈에서 구조됐다. 다른 한 마리는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중이었다.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처음엔 반대했었죠. 게다가 20대에 80년대를 거쳐온 저로서는 늘 인간과 인권이 더 먼저였는데, 지금은 두 고양이 덕분에 동물과 동물권에 진심이게 되었습니다. 동물해방과 종 평등에 눈을 뜨게 되었구요. 말 못하는 이 두 생명들이 저에게 건네는 위로와 행복이 사랑의 다른 층위를 열어주곤 합니다. 두 고양이 덕분에 딸들과도 더욱 ‘단결’하게 되었구요.”
정 시인은 “국도에 버려지는 순간에도 개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로 시작하는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도 실었다. 몇 달이 지나 옛집 앞에 돌아와 죽은 개에 관한 이야기다. “수백리 먼 길을 달려왔던 발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붉은 꽃이 가려주었다 여름이 오자 개의 다리가 나무처럼 솟았다”로 이어진다.
“이 시는 일차적으로 자기를 버린 집사를 향한 하염없는 사랑 이야기이고, 이차적으로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그런 하염없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시를 통해 그런 맹목적인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라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물론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시인의 시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존재 하나가 ‘아버지’다. 등단한 뒤 7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아버지에 관한 시들을 썼다.
정 시인에게 아버지는 “복잡한 분”이었다. 정 시인은 어떤 시 해설을 쓰면서 썼던 문장을 알려줬다. “세상을 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불화했다.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했고, 밥벌이에 좌절하면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야 아버지와 화해했다.”
정 시인은 ‘정끝별’이라는 이름 석 자와 ‘근기(根氣)’를 물려주신 분이라고 했다. “있고도 없는 ‘끝’이라는 의미와 이미 사라졌는데 빛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별’이라는 의미가, 곧 시의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신 분. 그리고, 시작한 건 어떤 형식으로는 끝을 보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책임과 근성과 다함을 가르쳐주신 분!”
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도 썼다. ‘시인은 누구?’는 35년 시력을 되돌아 보는 시이기도 하다. “노래 안에 사람이 있고 노래 밖에 사람이 있다/ 노래가 된 사람이 있고 노래를 사는 사람이 있다/ 노래를 빚는 사람이 있고 노래를 훔치는 사람이 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고 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어 “앞뒤 분간이 어렵고 뒤쪽 또한 쉽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라고 썼다.
‘앞’이란 ‘노래 안에 있는 사람’ 등 각 문장의 앞부분이다. ‘뒤’는 ‘노래 밖에 있는 사람’ 등 각 문장의 뒷부분이다. “제가 지금보다는 젊어서는 시인이란 ‘앞’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35년을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쓰다 보니, ‘앞’과 ‘뒤’의 분간이 어려울 뿐 아니라, ‘뒤’ 또한 쉽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시입니다.”
정 시인은 박근혜 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최근 서울도서전 사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계 압력을 두고 할 말이 있을 듯했다. “우리 사회가 모세가 갈라놓은 홍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막무가내식 편 가르기, 이념 논쟁, 진영 논리, 정치/정권 공세 속에서 일괄적으로 재단되고 평가되고, 번복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다”며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좀 더 신중하게 언어화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지치지 않고 지지 않는 여성 시인으로 나아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직하게 분노할 줄 알아야 나는 비로소 시인일 것”이라는 정 시인 칼럼 대목도 떠올랐다.
정 시인은 “타자로서의 제 조건들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제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했고, 싸우는 걸 무서워했다”고 말한다. “그 겁도 학습 받은 것이거나 가스라이팅된 것이었겠지만요.” “지치지 않고~”는 “자기반성을 담은 문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겁내지 않아도 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이젠 절망해도 되고, 분노해도 되고, 지쳐도 되고, 져도 돼! 비로소 여성이어도 돼! 그게 진짜 지치지 않고 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제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자신을 울력하는 문장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