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사 결과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1874점 ‘햇빛’
1910∼20년대 전국 곳곳 모습 촬영
안중근 의사 동생들과 찍은 사진도
110년 전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사제들이 촬영한 다양한 분야의 사진들이 공개됐다.
1911~1920년대 서울과 평양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촬영된 흑백·컬러 사진들은 당시 생활상, 문화유산, 성당 건축물과 선교활동 등을 생생하게 기록해 20세기 초 역사, 생활문화상 연구에 귀중한 시각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기록 보관소(아카이브)가 소장한 한국 사진 1874점을 조사한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12일 공개했다.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소장 한국 사진은 1909년 이래 한국에 파견된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촬영한 것들이다.
특히 이 중에는 수 백여 장의 사진을 수록한 여행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로 유명한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아빠스(베네딕도회 대수도원의 대표)가 촬영한 컬러 사진들도 확인됐다. 1911년,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베버 아빠스는 흑백사진은 물론 영상, 당시 최신 기술인 오토크롬(Autochrom)을 활용한 컬러 사진을 남겼다. 오토크롬은 1932년 컬러필름이 나오기전까지 활용된 컬러사진 초기 기술이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오틸리엔 수도원은 2005년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에 ‘겸재 정선 화첩’을 비롯해 조선시대 갑옷, 식물 표본 등을 돌려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진들은 전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한복을 입고 갖가지 일을 하는 남녀노소 각계각층 사람들의 사진은 당시 사회상, 일상생활과 복식사, 민속 연구 등의 자료다.
니콜라스 조세프 빌렘 신부가 안중근 의사 동생인 정근·공근 형제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도 있다. 황해도 신천의 청계리에서 열린 환등기 시연 행사에서는 신문물을 접한 주민들의 놀라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서울의 혜화문과 북한산성의 산영루 등 일제강점기 당시 사라진 문화유산들의 원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또 명동성당을 비롯한 성당건축물과 선교 활동 장면, 안성 석남사 대웅전 내부와 해주 신광사 오층석탑, 성곽 등을 담은 사진도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보고서에 수록된 이들 사진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비롯해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것들도 포함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관계자는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된 사진은 기존 사진을 스캔한 것이지만 이번 보고서 사진들은 유리건판, 오토크롬, 채색 사진인 랜턴 슬라이드, 셀룰로이드 필름 등의 원본을 디지털 촬영하고 이미지 고도화 작업을 거쳤다”며 “원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고 선명도가 높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의 글씨, 문양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사연구소 관계자는 “아직 어떤 사진이 처음 공개되는 사진인지 등은 파악되지 않아 향후 조사·분석을 통해 밝혀낼 것”이라며 “앞으로 20세기 초반 생활상이나 한국 사진사 연구에 소중한 성과들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수도원이 한국 관련 자료로 분류한 총 2077점을 전수조사한 후 1874점을 선별해 보고서에 싣고, 그 중 118점은 주제별로 분류해 도판과 해설을 수록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한국교회사연구소와의 조사성과를 담은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 사회와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역사 기록물이자 종교사, 복식사 등 연구자료로 가치가 크다”며 “앞으로 다양하게 연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왜관수도원과의 협력을 통해 이번 사진들을 재단의 대국민서비스페이지(www.overseaschf.or.kr/archive)를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