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팍품 웡품
출연 아난다 에버링엄, 나타위라눗 통미, 아치타 시카마나
상영시간 96분
제작연도 2004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아시아의 호러 영화 강국을 꼽으라면 먼저 일본이 떠오른다. 일본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링>(1998),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주온>(2002),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착신아리>(2003)가 이른바 ‘J호러’라고 불리는 200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일본 이상으로 꾸준히 수작을 만들어내고 대중의 인기도 높은 국가가 있다. 바로 태국이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팍품 웡품 감독의 <셔터>(2004)는 ‘태국을 대표하는 호러 영화’라고 지칭해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사진작가 턴(아난다 에버링엄)과 제인(나타위라눗 통미)은 연인 사이다. 턴의 친구 결혼식에 들렀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다. 당황한 이들은 사고 현장에서 도망간다. 이후 이들은 악몽이 시달리고 주변에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턴은 목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 검진을 받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다. 대학 졸업생들을 촬영한 사진에선 빛이 일렁이는 기묘한 자국이 찍힌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제인은 대학 해부실에서 턴의 과거 연인 나트레(아치타 시카마나)의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을 호러 영화에 영리하게 활용했다.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지만 눈을 초월한 감도와 해상도로 눈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똑같은 풍경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턴이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면 관객은 턴의 시선으로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다. 뷰파인더 너머의 피사체가 어떻게 돌변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넘실댄다.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붉은 암등빛도 비일상적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성한다.
<셔터>의 공포 연출 기법들은 익숙하면서도 기발해 감탄이 나온다. 점프 스케어(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는 호러 영화의 기본이다. 하지만 <셔터>는 기본기의 수준이 높아 가히 ‘필살기’ 같다. 화면 전체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하는 정전 상황에 점프 스케어가 합쳐지면 불안의 차원이 다르다. 수조에서 물과 함께 머리카락이 흘러나오는 장면도 수려한 편집과 음향의 힘이 느껴진다.
<셔터>는 주인공인 턴과 제인이 귀신의 원한을 밝혀가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흘러간다. 진상을 펼쳐놓으면 단순한 서사지만 세 차례 반전을 거듭한다. 특히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작동하는 결말부의 반전은 굉장한 충격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반전들은 단순한 오락적 공포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의 즉자적인 시각을 뒤바꾼다. 반전 자체에 억지스럽게 집착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힘과 깊이가 있다. 퇴마 설정과 깜짝 연출에만 매몰된 호러 영화들이 보고 반성해야 마땅한 미덕이다.
반종 피산다나쿤은 25살에 <셔터>를 연출해 일약 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호러에 코미디를 더한 <피막>(2013)은 태국 영화사상 최초로 관객이 1000만명을 돌파하며 명성이 더 높아졌다. 피산다나쿤은 <곡성>(2016)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랑종>(2021)의 연출도 맡았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못지 않게 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