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기원은 ‘기후 난민’?

2024.09.06 08:00 입력 2024.09.06 10:17 수정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504쪽 | 2만4800원

[책과 삶]한국인 기원은 ‘기후 난민’?

자신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의 근본적 욕망에 가깝다.

<한국인의 기원>은 ‘한국인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기후’라는 프리즘을 통해 탐구한다. 전작인 <기후의 힘>에서 기후가 문명의 성쇠에 미친 영향을 살폈던 저자는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태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한반도에 사는 이들의 조상은 기후 난민이었다’고 주장한다. 책은 저자가 이 같은 주장에 도달하게 된 과정을 4부로 나눠 설명한 뒤, 마지막 5부에선 현재의 지구 온난화가 한국인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사피엔스는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동쪽, 서쪽, 북쪽으로 이동했다. 이들 중 일부는 5만~4만 년 전쯤 남쪽 순다랜드(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및 그 주변 땅들)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했다. 다만 이때 한반도로 유입된 숫자는 적었다.

이들이 한반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2만5000년 전부터다. 이때는 마지막 빙기(빙하기 중 한랭했던 시기)가 최성기(최고조기)에 달하던 시점이다. 애초 한반도는 초지가 적고 산이 많아 수렵채집에 의존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선호하지 않던 지역이다. 그러나 한랭화가 극심해지면서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남쪽인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때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대부분 만주와 연해주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살던 수렵 채집민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세석기, 슴베찌르개, 돌날 등 한반도에서 수렵채집민의 존재를 나타내는 유물들은 이 무렵 크게 증가했다. “기후 변화로 이동한 수렵채집민이 당시의 선진 문물인 세석기문화를 전파”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마지막 빙기의 추위가 약 1만9000년 전부터 약해지면서 이후 수천년 간 동아시아 북부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한반도 인구는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후가 온화해졌는데 왜 한반도의 인구가 감소한 것일까. “기후가 점차 온난 습윤해지자 동아시아의 초지 생태계는 서서히 삼림으로 변했다. 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살아가던 초식 포유류는 초원 지대를 찾아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수렵채집민들 또한 사냥감을 쫓아 함께 움직이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이때부터 약 8200년 전까지 1만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반도의 인구는 적은 상태를 유지했다.

8200년 전 북반부 전역에서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무르강 유역으로 올라갔던 수렵채집민들이 다시 한반도로 남하했다. 이 시기는 그 이전 약 3000년 동안 온화한 기후가 지속돼 인구가 늘어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식량이 부족해지자 북방 수렵채집민들은 한반도 남동해안까지 내려왔다.

이후 3200년 전 무렵 동아시아 전역에 추위와 가뭄이 찾아오면서 랴오시 지역 샤자뎬 하층문화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랴오허강을 건너 남동쪽의 랴오둥을 거쳐 한반도 남부까지 이동하면서 한반도 최초의 수도작(논에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짓는 것) 문화인 송국리형 문화가 발전한다. 송국리형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들은 2800~2700년 전 무렵 시작된 한랭기에 일본 규슈로 진출해 일본 야요이 문화를 낳았다.

이처럼 한반도의 사회 변동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기온이 낮아지면 북방 지역 이주민들이 남하하면서 한반도 남부는 대내외적 갈등에 휩싸였으나 북방 이주민들이 전해준 벼 농경 문화, 동검 문화, 원시 한국어, 철기 기마 문화를 통해 고대 국가 체제가 형성됐다.

“결론적으로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4세기 후반부터는 동아시아 농경민이 기후 변화 때문에 이주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전쟁과 같은 대규모의 사회적 갈등이 대규모 이주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미래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조상들처럼 재차 ‘기후난민’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본다. 다만 이번에는 ‘한랭화’가 아니라 ‘온난화’가 원인이다.

우리는 이미 정치 난민보다 기후 난민이 더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현재 세계 기후 난민은 20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50년이 되면 12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저자는 “미래에는 서늘한 고지대나 북유라시아의 광활한 영토,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내륙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흐름이 점차 뚜렷해질 것”이라면서 “미래 세대는 환경이 좋을 때는 정주하다가 환경이 나빠지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동력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럴 경우 중국, 인도, 미국은 폭염과 가뭄 등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러시아, 캐나다, 북극 주변 지역 등이 혜택을 볼 수 있다. 범위를 동아시아로 좁힐 경우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고위도 국가와 저위도 국가 간의 갈등, 이주가 가능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의 격차 등 복잡한 지정학적·사회적 갈등은 인류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책과 삶]한국인 기원은 ‘기후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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