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 잔혹제의?...편견을 넘어 아스테카를 보라

2022.05.15 17:28

정복자가 ‘야만’으로 본 잔혹 제의·인신 공양

통치 방편이자 헌신 의미로 이해해야

섬뜩해보이는 예술 작품은 비유·상징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 28일까지

템플로 마요르 봉헌물에서 발견된 가면(왼쪽, 15세기)은 아스테카 정예 전사들의 머리뼈로 만들었다. 부싯돌과 조개껍데기를 더했다. 촘판틀리에 진열한 머리뼈는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들의 것으로 추정한다. 김종목 기자

템플로 마요르 봉헌물에서 발견된 가면(왼쪽, 15세기)은 아스테카 정예 전사들의 머리뼈로 만들었다. 부싯돌과 조개껍데기를 더했다. 촘판틀리에 진열한 머리뼈는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들의 것으로 추정한다. 김종목 기자

아스테카 수도 테노치티틀란 유적에서 절단한 자국이나 액체에 끓인 듯한 흔적이 있는 사람 뼈가 발견됐다. 사후 골절 흔적이 있는 뼛조각 수천 점도 나왔다. 참수하고 심장을 도려낸 흔적도 발굴됐다. 뼈나 뼛조각이 출토된 곳은 테노치티틀란 서쪽 광장이다.

멕시코 과학수사 전문가이자 템플로 마요르 프로젝트 생물 고고학자인 히메나 차베스 발데라스는 ‘테노치티틀란 신성 구역에서의 생물 고고학 연구’에서 흔적들에 대해 ‘제의적 죽음의 증거’라고 말한다. 대관식이나 장례식, 제의용 달력에 따라 거행한 의식 중 ‘제의적 죽음’이 벌어졌다. 이 달력에서 신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비의 신 틀락록은 비를 내려 식물의 싹을 틔우면서도, 우박을 뿌려 식물을 죽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의식을 치르고 제물을 바치며 신을 달래려 했다.

희생자들은? 여성, 청소년, 어린이도 일부 포함됐지만 대부분 남성이다. 발데라스는 “노예, 포로로 붙잡힌 전사, 공물로 바쳐진 사람들, 전쟁 전리품으로 데려온 사람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발데라스 글을 보면, 아스테카에서 ‘인신 공양’이 벌어진 건 분명하다. 아스테카에 대한 잔혹한 이미지와 부정적 인식이 없던 사실과 근거에서 나온 건 아니다. 테노치티틀란 촘판틀리 유적에서도 머리뼈 양쪽에 구멍이 난 유골이 발굴됐다. 수많은 머리뼈를 나무 장대에 꿰어 진열했다. 적군의 머리뼈로 추정한다.

이런 이미지와 인식은 “아메리카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종교를 강요했던 유럽 정복자의 과장과 왜곡에서 비롯”(국립중앙박물관)된 것이다. 유럽 정복자들은 이곳에서 수만명이 죽었다고 기록했는데, 템플로 마요르 프로젝트와 도시고고학 프로그램이 확인한 희생자 수는 1000여명이다. 참수 흔적 사례 수는 적다. 심장을 도려낸 흔적이 나온 유골은 두 구다.

박물관은 ‘잔혹한 인신 공양’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변 정치집단을 통치하려는 방편”, ‘잔혹한 제의’는 “신에 대한 헌신과 세상을 지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전(8월28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제목도 연장선이다. 인간 제물을 “태양을 움직이고 세상을 지속시키려는 인간의 희생”이었다고 해석한다.

아스테카 문화에서 독수리는 태양을 상징한다. 왼쪽 위 ‘독수리 머리’(1350~1521쯤). 아래 조각 ‘뱀 머리 모양 건축 장식’(1350~1521년쯤)이다. 뱀은 대지의 신과 관련 있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맞은 편 벽화(복제)는 디에고 리베라(1929~1935)의 ‘멕시코의 역사’ 중 ‘틀라텔로코 시장’이다. 이 시장은 테노치티틀란의 상업 중심지였다. 김종목 기자

아스테카 문화에서 독수리는 태양을 상징한다. 왼쪽 위 ‘독수리 머리’(1350~1521쯤). 아래 조각 ‘뱀 머리 모양 건축 장식’(1350~1521년쯤)이다. 뱀은 대지의 신과 관련 있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맞은 편 벽화(복제)는 디에고 리베라(1929~1935)의 ‘멕시코의 역사’ 중 ‘틀라텔로코 시장’이다. 이 시장은 테노치티틀란의 상업 중심지였다. 김종목 기자

화강암으로 만든 ‘목테수마 2세의 상자’(왼쪽 사진, 1506년쯤)는  모든 면을 달력 기호, 인물, 동물 무늬로 장식했다. 아스테카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른쪽 상자(14세기 중반~1521년)도 달력 기호와 신을 면에 묘사했다. 희생제의 때 사용한용설란 가시나 날카로운 뼈를 보관하거나, 통치자 유골을 담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독수리 너머’ 뒤편 그림은 테노치티틀란 묘사도다. 김종목 기자

화강암으로 만든 ‘목테수마 2세의 상자’(왼쪽 사진, 1506년쯤)는 모든 면을 달력 기호, 인물, 동물 무늬로 장식했다. 아스테카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른쪽 상자(14세기 중반~1521년)도 달력 기호와 신을 면에 묘사했다. 희생제의 때 사용한용설란 가시나 날카로운 뼈를 보관하거나, 통치자 유골을 담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독수리 너머’ 뒤편 그림은 테노치티틀란 묘사도다. 김종목 기자

전시에 맞춰 나온 동명의 도록엔 글 28편이 실렸다. 멕시코와 미국, 유럽 여러 나라 전문가들이 쓴 글이다. 메소아메리카(멕시코 일부 지역,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도르를 아우르는 문화권) 유산·기억·상징주의 연구자인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 명예교수 마르턴 E R G N 얀선과 고대 멕시코 고문서 및 미스테카 사회·전통 연구자 가비나 아우로라 페레스 히메네스가 쓴 ‘고대 멕시코의 희생제의’가 전시 주최 측이 내세운 ‘새로운 이해’의 근거를 제시한다.

전쟁과 재생의 신인 ‘시페 토텍’(1350~1521년쯤)은 인간 살 가죽을 입은 모습이다. ‘시페 토텍’은 ‘살가죽의 주인, 우리의 왕’이란 뜻이다.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를 봄에 옥수수를 심으려 대지 표면 초목을 베고 태우는 것에 비유했다고 한다.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은 산 사람 살 가죽을 잔인하게 벗기는 제의 모습을 묘사했으나, 직접 보고 기록한 목격담은 아니라고 한다. 김종목 기자

전쟁과 재생의 신인 ‘시페 토텍’(1350~1521년쯤)은 인간 살 가죽을 입은 모습이다. ‘시페 토텍’은 ‘살가죽의 주인, 우리의 왕’이란 뜻이다.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를 봄에 옥수수를 심으려 대지 표면 초목을 베고 태우는 것에 비유했다고 한다.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은 산 사람 살 가죽을 잔인하게 벗기는 제의 모습을 묘사했으나, 직접 보고 기록한 목격담은 아니라고 한다. 김종목 기자

두 사람은 아스테카 문화와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상징으로 회자하는 인신 공양 기록의 근원을 찾아간다. 그 기록은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쓴 게 가장 이르다. 코르테스는 1519년 멕시코에 도착했다. 인신 공양의 자세한 설명은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1492?~1584)의 회고록에 나온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찢긴 채로 제단에 누운 원주민 다섯 명에 관한 묘사 등이다. 베르날 디아스와 다른 작가들은 인신 공양이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행해졌고, 식인 풍습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얀선과 히메네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의 진실성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스테카 수도 테노치티틀란 신성 구역 미니어처(가운데). 아스테카인들은 이 신성 구역에서 희생 제의를 진행했다. 왼쪽 유물은 ‘비의 신 틀락록 장식 화로’(16세기 초), 오른쪽은 ‘바람의 신 에이카틀’(1480~1519년경)이다. 김종목 기자

아스테카 수도 테노치티틀란 신성 구역 미니어처(가운데). 아스테카인들은 이 신성 구역에서 희생 제의를 진행했다. 왼쪽 유물은 ‘비의 신 틀락록 장식 화로’(16세기 초), 오른쪽은 ‘바람의 신 에이카틀’(1480~1519년경)이다. 김종목 기자

우선 인신 공양 묘사는 목격담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유럽 중심 편견이 가미된 소문과 상상에 근거해 적혔다고 했다. 당시 정복자와 선교사들은 먼 나라 ‘기이한 종족’에 대한 중세 문학 속 상상에 영향을 받았고, 중세 후기 악마학(마녀사냥 열풍)에 사로잡혔다. 아스테카 정복도 악마에 맞서는 성스러운 전쟁이었다. 폭력성을 부각하며 잔혹한 제의에 집착한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얀선과 히메네스는 “일련의 선입견은 그들의 관찰과 해석을 흐리게 했다.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했다. 비이성적 살인과 식인 풍습에 대한 주장은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낙인찍었고, 그들이 문명화되고 기독교화되며 구원받기 위해선 정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논리는 궁극적으로 정복과 식민화를 정당화했다”고 썼다.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왼쪽 사진, 16세기 초)와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비석’(14세기 중반~1521년). 김종목 기자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왼쪽 사진, 16세기 초)와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비석’(14세기 중반~1521년). 김종목 기자

이런 선입견과 오해는 아스테카 예술에 관한 해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옥수수 속대의 수확’을 머리를 자르는 참수 형태로, ‘나무 장작 만들기’를 나무를 죽이고 심장(생명)을 꺼내는 것으로 묘사한 그림문자의 은유와 비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렸다. 전쟁과 재생의 신인 ‘시페 토텍’은 인간 살가죽을 입은 모습인데, 아스테카인들은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를 봄에 옥수수를 심으려 대지 표면 초목을 베고 태우는 것에 비유했다. 뱀은 대지의 신과 관련 있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얀선과 히메네스는 “그들(스페인 정복자)의 사고방식에서 뱀은 악마의 상징이었다. 눈과 얼굴이 달린 물체를 비롯해 온갖 낯선 조합은 악마의 이미지를 상기시켰으며 해골과 뼈는 지옥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한다. 잘려 나간 머리와 손, 뽑혀 나간 눈, 피 등은 잔인한 학살과 고문을 상기하게 했다.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1430~1502년쯤)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전 대표작이다. 믹틀란테쿠틀리는 죽은 자의 영역을 관할하는 지하세계 신이자, 조상의 신이다. 김종목 기자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1430~1502년쯤)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전 대표작이다. 믹틀란테쿠틀리는 죽은 자의 영역을 관할하는 지하세계 신이자, 조상의 신이다. 김종목 기자

두 사람은 아스테카 예술을 비유적·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이 눈알을 뽑는 장면은 “신비로운 만남 속에서 인간을 압도하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빼앗는 신의 위력과 영향력”을, 피와 심장은 “생명과 생계, 자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은 “메소아메리카의 예술에서 나타나는 두개골과 뼈의 형상이 살인이나 섬뜩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조상들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로 널리 알려진 멕시코 명절 ‘죽은 자의 날’에도 이런 상징이 나온다. 이번 전시엔 죽은 자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이자 조상의 신인 ‘믹틀란테쿠틀리’ 조각상이 출품됐다.

아스테카에서 개는 주인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떠날 때 동반자로 여겨졌다. 식용으로 사육하기도 했다. 이 ‘개’(아스테카 추정, 14세기 중반~1521년)

아스테카에서 개는 주인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떠날 때 동반자로 여겨졌다. 식용으로 사육하기도 했다. 이 ‘개’(아스테카 추정, 14세기 중반~1521년)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특별전이다.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한다. 멕시코와 미국, 네덜란드·독일 등 유럽 여러 국가 박물관(총 11개)이 출품했다. 신화, 문화, 정복 전쟁, 국가체계, 도시발전 관련 유물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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