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산모의 세계’

2020.11.20 16:23 입력 2020.11.20 16:38 수정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출산 당사자의 시각으로 구성한 산모의 세계…tvN ‘산후조리원’

‘정상·당연·완벽’의 압박과 싸우며, 그렇게 엄마가 된다

“순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상에 순산이 어딨어. 내 새끼는 죽다 살아났구먼.”

드라마 <산후조리원> 1화, 출산 후 기진맥진한 오현진(엄지원)을 두고 순산했다고 말하는 시부모에게 오현진의 엄마(손숙)가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모성의 신비화와 절대화에 가려졌던 ‘산모의 세계’를 당사자의 시각에서 구성한 것이다.

tvN에서 11월2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기본 소개부터 심상치 않다.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 현진이 재난 같은 출산과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치며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격정 출산 누아르.” 누아르?! 그러고 보니 출산은 아주 위험한 유혈사태잖아?! 그런데도 지금까지 숭고한 희생으로 두루뭉술하게 포장되거나 ‘누구나 하는 것’으로 폄하됐다. 당장 출산했던 친구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칼 댄 곳이 회음부라니….” 아, 친구여, 읽기만 해도 밑이 아픈 것 같구나.

<산후조리원>은 지금까지 숭고한 희생으로 두루뭉술하게 포장된 출산의 전후 과정과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모성 신화를 둘러싼 억압도 수면 위로 끌어낸다.

<산후조리원>은 지금까지 숭고한 희생으로 두루뭉술하게 포장된 출산의 전후 과정과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모성 신화를 둘러싼 억압도 수면 위로 끌어낸다.

맛깔난 소개에 걸맞게 <산후조리원>은 재난영화와 스릴러의 연출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웃음 코드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출산 중 삼도천을 건너다 저승사자와 몸싸움을 벌여 돌아오는 오프닝이나, 출산 후 소외되는 기분을 “그렇게 나만 즐겁지 않은, 알 수 없는 축제”라고 표현하며 난데없이 추는 삼바, 아기를 데리고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지금까지 무심하게 넘겼던 모든 것이 위험 요소로 작동하여 과장된 방어를 펼치는 장면 등이 아기의 탄생 이후 급격하게 출렁이는 산모의 세계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관장과 제모부터 출산 후 오로까지 여성의 몸에 벌어지는 변화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이 과정을 ‘굴욕기’ ‘짐승기’ ‘무통천국기’ ‘대환장파티기’처럼 경험한 사람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기도 한다. 재난영화가 사회상을 반영하듯, 격정 출산 누아르 혹은 출산 블록버스터 <산후조리원>은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에 질문을 던지고, 충돌하는 가치관과 욕망, 출산 이전과 이후 자아분열이 일어나는 여성의 내면, 모성 신화를 둘러싼 억압을 수면 위로 끌어낸다.

고령 산모의 ‘재난급’ 육아 적응기
모성 신화 억압, 수면 위로 끌어내

사회가 주입한 ‘정상적 엄마상’에
억지로 자신을 맞춰가던 주인공
문제적 ‘비혼 엄마’ 만나며 각성

당연한 모성·완벽한 엄마는 없다
엄마도 다양한 역할 중 하나일 뿐
배우고 헤매면서 익숙해질 수밖에

조리원에 입소한 초반, 오현진은 다른 산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모성에 등급을 매기는 기준(자연주의 출산인가? 모유를 먹였는가?)은 엄마들을 기차의 1등 칸부터 꼬리 칸에 나누어 싣는다. ‘워킹맘’ 오현진은 꼬리 칸 탑승자에다, 엄마 역할도 영 어색해한다. 아기를 처음 보자마자 샘솟는 사랑을 느끼기보다 왜 이렇게 빨가냐고 의아해하고, 아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자신이 사이코패스는 아닌지 의심하며, 남들은 감탄하는 아기 똥에 구역질한다. 수유보다 회사에서의 지위가 우선이다. 오현진은 끊임없이 자신이 나쁜 엄마가 아닌지 의심하고 검열한다. 사회가 오랫동안 공기처럼 주입한,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엄마상’, 모성 1등 칸의 기준이 오현진을 옥죄는 것이다.

정자 기증을 받아 결혼 없이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알린 사유리의 인스타그램.

정자 기증을 받아 결혼 없이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알린 사유리의 인스타그램.

사회의 축소판인 조리원에는 절대적인 규칙과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의 운영 방침은 ‘기승전젖’에 가깝다. 모든 식단과 프로그램이 모유 생산을 위한 것이고, 모유 수유 여부와 모유의 양이 엄마의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방식인 양 통용된다. 조은정(박하선)은 아들 쌍둥이를 키우는 일상을 SNS에 올리는 육아 인플루언서 ‘둥이맘’이자, 풍부한 정보와 경험을 인정받는 ‘완벽한 엄마’이다. 실상은, 독박육아에 시달리며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바쁘다. 국민 ‘여신’이었던 한효린(박시연)은 임신하면서 처음으로 먹는 것에 해방감을 느끼며 17년 만에 처음 배불러 봤다고 말하지만, 여배우가 결혼하거나 출산하면 출연료가 깎이는 현실에서 복귀할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 박윤지(임화영)는 ‘아픈 아기’의 엄마이다. ‘재난 같은 출산’에서 모두가 건강하고 완벽한 산모와 아기일 수 없는데도, 우리 사회가 소위 ‘성공 사례’만 조명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육아 정보를 얻으려고 억지로 자신을 맞춰가던 오현진 앞에, 견고한 산후조리원의 질서를 뒤흔드는 문제적 엄마 이루다(최리)가 등장한다. 이루다는 처음부터 분유 수유를 선택하며, 산모들이 당연히 여기고 따르던 여러 방침에 합리적 질문을 던진다.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보편적인 조리원에서 꾸준히 자신의 이름을 어필하는 이루다는 비혼모다. 정상적인 가정이나 기준이라는 게 있냐며 되묻고, 엄마와 아기가 행복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루다는 ‘엄마는 원래 다 그렇다’며 희생을 당연시하는 조은정에게, ‘엄마가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그쪽이 그런 거’, ‘그쪽은 얼마나 완벽한 엄마냐’고 응수한다. 그런 이루다 역시 아기가 생겼으니 남자친구와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오현진과 이루다는 세대를 초월하는 우정을 나누고, 긍정과 공감 아래서 오현진은 비로소 아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강요와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느낄 때 자신에게 적절한 온도의 모성이 싹트는 것이다.

오현진은 ‘조동(산후조리원 동기)’들과 갈등하고 화해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며 성장한다. 그렇다. 성장. 낳는다고 자동으로 엄마가 되는 게 아니다. 이루다의 말처럼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나’니까. 게임 속의 레벨 업도 경험치가 쌓여야 하는 법, 엄마도 인간의 다양한 역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배우고 헤매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따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처럼, 신입 시절처럼,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 앞에서 인간은 위축되고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엄마에게는 그러한 시행착오와 서투름, 개인차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천편일률적인 ‘엄마’의 틀을 만들고, 출산한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가임 여성을 부어 주조하려고 한다. 온 국민이 좋은·나쁜 엄마 스티커를 들고 쫓아다니는 꼴이다. 정작 길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는 친절과 관용을 베풀지 않고, 노키즈존 따위나 만들면서 말이다.

오현진은 말한다. “엄마가 되면 행복해야 정상이겠죠? 난 엄마가 된 후로 진짜 엉망진창이 됐거든요.(…) 난 아기를 안 낳았으면 어땠을까 후회도 하는데. 나 너무 나쁜 엄마죠.” 이루다는 말한다. “엄마라고 무조건 행복할 수 있나요.” 산후조리원 멤버들은 아기를 낳은 후 축하하고, 멋대로 행복을 단정하는 목소리 속에서 소외되었던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털어놓는다. “우리가 불안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행복해졌다.” 좋은 엄마라는 기준은 얼마나 획일적이고, 정상 가정이라는 조건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어떻게 은폐하는가. 아동 학대 10건 중 8건은 친부모가 가해자다. 이제 이러한 기준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재정립이 필요하다.

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결혼 없이 아기를 출산했다. 아기를 원하지만, 이 때문에 원치 않는 파트너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기증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법적으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시술이 어려웠던 듯하다), 여전히 정상 가족 내의 출생만 허용하겠다는 가부장제의 아집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낙태죄 유지로는 여성이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차단하고, 결혼 없이는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할 권리를 주지 않으면서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고 호들갑이니 어찌 아니 웃기겠습니까. 억지로 정상 가정을 만들기보다 원하는 형태로 출산한 사유리의 선택을 응원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한편 아이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정상 가족’ 외의 출생을 차별하겠다는 자기 고백이 풍년이다. 사유리의 선택을 둘러싼 다양한 발언은 결국 드라마 <산후조리원> 멤버들이 맞닥뜨린 세계와 비슷한 결이다. 어떤 ‘정상적이고’ ‘왕도의’ ‘올바른’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형태가 있다고 굳게 믿고, 그러한 믿음을 신봉하느라 실존하는 개인을 괴롭히고 일그러뜨리는 폭력.

주제 파악부터 하자. 우리에게는 엄마와 모성의 순수성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언젠가 아이였던 개인으로서 아기와 양육자를 환대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산후조리원> 보고 반성하세요~. 8부작이라 다음주면 벌써 종영인데, 맡겨놓은 것처럼 시즌 2를 달라고 떼쓰고 싶다. 더 많은, 더 다양한, 더 풍부하고 섬세한 여성의 임신·출산·육아 서사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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