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의 베테랑’ 황다슬 감독이 말하는 ‘블루밍’과 BL의 세계

2022.03.31 17:02 입력 2022.03.31 22:54 수정

31일 공개된 웹드라마 <블루밍>의 한 장면. 이 드라마는 대학 영화과 1학년 남자 신입생인 다운(조혁준, 왼쪽)과 시원(강은빈)이 조금씩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NEW 제공

31일 공개된 웹드라마 <블루밍>의 한 장면. 이 드라마는 대학 영화과 1학년 남자 신입생인 다운(조혁준, 왼쪽)과 시원(강은빈)이 조금씩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NEW 제공

30대 여성 A씨는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팬픽을 보다가 BL(Boy’s Love·남성 동성애를 다룬 장르)의 세계로 빠졌다. A씨는 “BL은 계시처럼 다가왔다.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채 읽었다”며 “여성 주인공이 나오면 너무 이입돼 민망한데, 남성 주인공끼리의 연애는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구 중에는 이상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BL로 태교를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소수 여성팬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BL이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는 지난 2월 공개 직후부터 줄곧 ‘왓챠 톱10’ 최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박서함·박재찬 두 주연이 출연한 유튜브 콘텐츠의 조회수가 폭발하고, 두 배우가 표지모델로 나온 주간지 씨네21은 품절 사태를 빚었다. 메이저 영화투자배급사인 NEW는 31일 공개한 <블루밍>을 시작으로 모두 4편의 BL 드라마를 선보인다. NEW가 제작하는 첫 웹드라마다. 명필름 같은 전통의 영화제작사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황다슬 감독(28)은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2020), <나의 별에게>(2021)에 이어 <블루밍>이 세번째 BL 연출작이다. 이미 <나의 별에게> 시즌2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니 BL 시리즈를 네 편 연속 제작한 셈이다. ‘BL의 베테랑’ 황다슬을 이날 서울 강남 NEW 사옥에서 만나 <블루밍>과 BL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BL과 퀴어물은 다른가

퀴어물은 성소수자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를 일컫는다. BL 역시 남성 동성애를 다룬다. 황다슬은 “퀴어는 현실에 발딛고 있는 반면, BL은 조금 더 순수한 판타지에 가깝다. BL에는 정체성 갈등이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송희일, 김조광수 등이 연출한 퀴어영화에서 주인공의 성정체성은 그들이 겪는 역경의 원인이 된다. 주인공은 퀴어 정체성을 숨기려다가 드러나 곤란에 빠지고,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그를 멀리하곤 한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영화의 주요 소재다.

드라마 <블루밍>의 한 장면.  NEW 제공

드라마 <블루밍>의 한 장면. NEW 제공

반면 BL에서 주인공의 성정체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블루밍>은 대학 영화과 1학년 신입생들 이야기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솔선수범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시원(강은빈)과 타고난 인기남 다운(조혁준)이 조금씩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시원을 남몰래 좋아하던 여자 동기는 그가 다운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단념한다. 단편 공모전에서 수상한 시원을 질투해 그의 과거 사진을 조롱하는 선배가 <블루밍>에서 악역에 가까운데, 그조차 시원과 다운의 관계를 두고 험담을 하거나 아우팅을 하지는 않는다. BL에서 동성애는 이성애와 동등하게 다뤄진다. 황다슬은 “남자가 남자를 혹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BL은 모두 청춘멜로인가

BL에서도 성정체성 외의 요소는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다. <블루밍>은 BL인 동시에 성장물이기도 하다. 초반부 화기애애하고 달콤하던 <블루밍>은 중반부 이후 가족관계의 갈등, 확신할 수 없는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 드러나면서 조금씩 어두워진다.

<블루밍>과 <시맨틱 에러>는 모두 12세 관람가다. <블루밍>의 경우 대사에 심각한 욕설이나 성적인 암시가 거의 없다. 남성 키스신이 등장하지만 베드신은 실루엣으로만 처리됐다. 두 작품 모두 BL로서는 ‘입문용’으로 분류된다. 이제 막 BL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한국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황다슬은 “다운이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시원이 그를 밀어내는 과정은 BL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멜로물의 요소”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BL이 인기를 얻은 일본에는 다양한 세대의 관계를 그린 작품들이 많다. <옷상즈 러브>는 남성 주인공이 상사인 남성 부장과 남성 후배로부터 동시에 고백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Life 선상의 우리들>은 10대부터 30대까지 변하지 않는 마음과 변하는 현실 사이에 놓인 두 남자의 삶을 다뤘다. <진정령> <산하령> 등 중국 드라마는 무협물의 외피를 두른 BL이다. 한국에서도 BL 제작이 활성화되면서 살인, 감금 등이 등장하는 BL 웹툰 <킬링 스토킹>의 드라마화가 예고됐다.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재영(박서함, 왼쪽)과 상우(박재찬)는 조별 과제를 통해 만난다. 왓챠 제공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재영(박서함, 왼쪽)과 상우(박재찬)는 조별 과제를 통해 만난다. 왓챠 제공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왓챠 제공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왓챠 제공

■요즘 BL이 왜 인기인가

성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여전히 난항인 한국 사회에서 BL 드라마의 인기는 예기치 못한 현상이다. 황다슬은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하나의 이유로 들었다. 여느 장르에 비해 BL은 작지만 강력한 팬덤을 가졌다. 인기작에 대한 팬들의 ‘화력’은 상상 이상이다. 많은 BL 팬덤이 아이돌 팬덤에서 유래한다는 사실로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블루밍>은 31일 0시 네이버시리즈온을 통해 공개됐는데, 트위터에는 밤새 모든 회차를 보고 출근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블루밍>은 중국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아이치이를 통해서도 이날 오후 1시부터 공개됐는데, 한국과 동시 공개인 줄 알았던 해외팬들이 밤새 공개를 독촉하는 일도 있었다. 황다슬의 전작 BL을 모두 보고 감정의 흐름, 음악의 적합성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팬도 많다고 한다. 주요 장면을 갈무리해 연출의 의도를 상세하게 해석한 리뷰북을 만들어준 팬도 있다. 황다슬은 “팬들의 반응을 통해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내 연출 특성을 파악하게 됐다”며 “팬의 반응이 웬만한 개봉영화들보다 강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BL 주인공들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도 좋다. 황다슬은 “BL이 정체성 갈등을 다루지는 않지만, 관객은 사회에서 학습된 갈등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관람한다”며 “당연해 보여서 응원할 필요도 없는 이성애보다는,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고 싶은 BL 속 인물과 배우에 관객이 힘을 싣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블루밍>을 연출한 황다슬 감독 | NEW 제공

<블루밍>을 연출한 황다슬 감독 |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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