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털기는커녕 감춰…“잘못 규명·역할 재정립 필요”
정부가 나서려면 국민 지지받는 의사결정기구에 맡겨야
정부가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을 감추고 키워왔던 국책은행이 실질적인 구조조정의 주체가 되는 데 의문의 목소리도 커진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경영진의 책임을 확실히 묻고 세금 투입이 꼭 필요하다면 투명하게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책은행에 맡겨도 좋은가
채권단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에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채권자가 주로 국책은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은행이 2000년 자회사로 편입했으나 최근 2년간 6조원 넘는 적자를 내면서 부실이 커졌는데도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국책은행이 아닌 제3의 전문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같은 채권자 입장인 산업은행은 이해관계 조정이 어렵다”면서 “사모펀드(PEF) 등 시장을 통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아직 환경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만큼 구조조정 전문가나 전문기관에 구조조정 실행을 맡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주체는 누가 돼야 하나
외국의 경우 구조조정은 시장기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정부가 개입하면 모럴해저드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주진형 전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27일 페이스북에 한국의 구조조정이 부진한 이유로 “정부가 도와주는 것을 주주, 채권자, 직원, 정부, 심지어 국회마저 모두 당연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은 자기들이 잘못해놓고 직원들은 적자가 나도 높은 월급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이 무너지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다고 협박한다”며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한 구제금융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니 산업은행을 통한 간접적 구제금융을 선호한다. 미봉책만 남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은 이미 수직계열을 구축하고 있어 쪼개 팔 경우 가치가 더 하락할 수 있고, 규모가 크다 보니 금융시장이 덜 발달한 한국에선 인수할 주체가 많지 않다”면서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이 된 현실 때문에 결국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면 국민 고통과 부담을 최소화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의사결정기구가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여·야·정 협의체에서 전반적인 방향 등 중요한 결단을 내려주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 줘야 관료들이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금 투입 불가피한가
구조조정 재원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기업에 지원한다. 재정(예산)을 통하든 한국은행의 출자를 받든 결과적으로 재원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러나 부실경영 책임을 철저히 물어 재발방지를 꾀하는 절차가 없을 경우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진해운 등은 정부가 도와주지 말고 시장원리대로 법정관리를 밟게 해야 한다”면서 “경영을 잘못한 총수가 망하도록 놔둬야지 정부 자금을 부어 도와서는 안된다. 세금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노동자 지원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진의 사재 출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 기간산업의 파산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것을 전제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