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러시아 에너지 제재 카드는 현실화될까

2022.03.06 16:02 입력 2022.03.06 17:24 수정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연방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연방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독일 정부는 5일(현지시간) 에너지 기업 알베에그룹, 네덜란드 가스니와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지난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LNG 터미널 두 곳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그동안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PNG)을 통해 천연가스 수입을 의존한 결과, 단 한 곳의 LNG 터미널도 없는 상태였다. 독일은 대안으로 벨기에, 프랑스 등 이웃 국가의 LNG 터미널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2020년 기준 러시아의 전체 수출에서 원유·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49.7%에 달한다. 그럼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금지 제재를 주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이번 LNG 터미널 건설 추진이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LNG 터미널 한 곳도 없는 독일

미국과 EU 등 서방의 러시아 에너지 제재 현황을 보면 지난 4일 기준, 국가 차원에서 원유 수입을 금지한 국가는 캐나다가 유일하다. 미국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자금 조달 금지를, 영국은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의 지분을 매각하는 등 우회적인 제재 조치만 취했다. 독일도 지난해 완공해 개통을 앞두고 있는 1230㎞ 길이의 노드스트림2의 사업 승인만 중단했다.

오히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쪽은 서방 측이다. 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러시아 정부가 경제 보복을 목적으로 러시아 내 에너지 기업들에 압력을 행사해 유럽에 대한 에너지 수출 및 생산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라고 진단했다. 이는 EU의 에너지 수급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34.2%에 달한다. 특히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는 천연가스에서 러시아산의 비중은 79.4%로 높다.

이미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줄이는 등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4개 노선 중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노선과 터키 스트림 노선의 천연가스 공급량은 지난 1월에 10억㎥에 그쳤다. 당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통과 노선에서만 연간 4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계약한 상태였다. 최근 EU는 아시아로부터 LNG 잔여물량을 도입해 러시아의 제한된 공급 물량을 보충하고 있지만 영국을 포함해 대부분 지역에서 LNG 처리시설 용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는 “러시아는 최근 수년간 외환보유액와 국부펀드를 크게 늘려왔다”며 “러시아가 수출 감소를 우려해 원자재 무기화를 주저할 것이란 예상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연구팀장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량을 줄이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비중이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U도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과 우크라이나 위기로 수혜를 입은 기업에 대한 과세 수익 등을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수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최준영 율촌 전문위원은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환경적 가치가 고려됐다면 이제는 안보 측면에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환에 상당 기간 소요되는 만큼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EU에 바이오 및 원자력 에너지 발전 확대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2월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자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2월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자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중단된 노드스트림 2, 시베리아의 힘은 확장

중국이 러시아의 제재 탈출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에너지 제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2019년 12월부터 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시베리아의 힘’이라는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공급 중이다. 중국은 이 가스관을 통해 미국이 지배하는 해상 루트를 통하지 않고서도 에너지 수급 물량을 늘려갈 수 있는 토대를, 러시아는 아시아 시장에도 자국의 에너지원을 공급할 수 있는 수송 인프라를 구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1990년대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협력방안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를 진행했으나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며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전후해 서방의 압력과 경제제재 조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양국 간에 에너지 협력은 점차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에 ‘시베리아의 힘’을 통해 공급된 46억㎥의 천연가스는 2024년에는 380억㎥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9년 당시,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라는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달걀을 담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 “우리에게 달걀은 충분하다. 오히려 그 달걀 모두를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모자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과 새로운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양국은 몽골을 경유해 중국 동부로 공급하기 위한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사업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또 하나의 가스관인 ‘시베리아의 힘 3’이 현실화되면 서방의 제재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최 전문위원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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