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866억원, 연 매출액 1800억원의 기업이 하루아침에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전 직원에게 해고 통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 이야기이다.
회사의 최근 5년치 손익계산서를 분석해보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연 매출 2736억원, 영업이익 50억원 하던 기업이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었고 매년 매출액도 수백억원씩 감소 중이다. 최근 4년 합산 영업 적자는 341억원에 달한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2019년부터 유입이 아닌 유출로 전환됐다. 이렇게 운영자금이 부족한데 매년 유형자산 투자도 수십억원씩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현금흐름이 좋지 않다. 2021년 말 재무상태표를 보면 보유한 현금이 46억원이지만 갚아야 할 차입금이 498억원에 달한다. 사업을 하면서 까먹고 있으니 차입금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항상 잘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사업이다. 위기가 찾아오면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각오를 다져도 정작 대표이사가 사업을 접겠다고 하니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맥이 탁 풀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수백명의 임직원뿐만 아니라 회사의 거래처 및 낙농가 등 주변 수많은 사람의 생계까지 위협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이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을 다 고려해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꼭 그렇게 사업 철수라는 강수를 두어야만 했을까?
식음료, 특히 유제품은 내수 중심이고 경쟁도 치열한데 출생률마저 떨어지고 있어서 힘든 사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이런 환경에서 이익 실현을 하고 있고 푸르밀도 4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적자가 지속된 것은 불과 4년째이다.
사업하다 적자가 나기 시작하면 반등을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치열한 연구·개발을 통해 신제품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푸르밀 재무제표에 따르면 연간 연구·개발비가 4000만원대에 불과하다. 경쟁사들이 수십, 수백억원씩 쓰는 것에 비하면 너무 적다. 식음료는 유행이 짧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들을 계속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내수 성격이지만 K푸드 열풍을 타고 수출로 성장을 이어 나가는 기업들도 많다. 경쟁 유제품 기업들도 연간 수백억원씩 수출을 하고 식음료 기업 중에 수출 비중만 50%가 넘는 경우도 여럿 있다.
기업은 성숙기에서 쇠퇴기로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다. 번 돈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벌어 놓은 것이 많지 않을 때는 외부 조달을 통해야 한다. 대출받기에 담보가 넉넉지 않다면 유상증자를 해야 한다. 최대 주주 일가가 지분을 거의 다 갖고 있어서 결국 사재를 털어야 하는데 사업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다면 차라리 적절한 가격에 기업을 매각해서 사업을 이어 나가면 된다. 롯데 계열에서 분리됐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할 전의 롯데우유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임직원들을 다 내쫓고 사업을 정리해 버리면 엉뚱하게 친척 기업들로 불매운동 같은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그것도 염려되지만 무엇보다 푸르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생계와 가족이 가장 걱정된다. 최대 주주 일가가 지분 90%를 갖고 있어서 내 회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동안 사업을 위해 헌신한 구성원들과 수많은 거래처를 고려해야 한다. 부디 함께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