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넘어서도 구직···“일 할 수 있어 좋아”

2024.08.14 10:54 입력 2024.08.14 15:49 수정

지난달 18일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이케다씨와 동료들이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달 18일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이케다씨와 동료들이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이케다 다카시(77)는 일본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문화센터 경비원이다. 재작년 ‘신입’으로 입사했고, 매년 3월 1년씩 계약을 연장한다. 임금은 도쿄도 기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근무시간만큼 받는다. 2인 교대근무로 오전조는 오전 8시~오후 3시30분, 오후조는 오후 3시30~오후 10시30분 일한다. 평균 주 4일 출근하는데, 연차가 쌓여도 별도 임금 인상은 없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인상분 만큼 더 받는다. 소속은 고토구 문화센터와 계약을 맺은 경비인력 관리업체다. 경비 인력 관리업체 입찰 결과에 따라 소속사는 바뀌지만 고용은 연장된다.

80세 넘어서도 구직…일손 부족에 수요 확대

문화센터는 이케다의 세 번째 직장이다. 홋카이도 출신인 그는 1975년 도쿄로 넘어와 1977년 건축자재 제조업체에 입사한 뒤 2022년 75살까지 재직했다. 정년(60세) 이후에는 직책수당, 상여금, 보너스 등은 받지 않고 기본급만 받았다. 지난달 18일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만난 그는 “일반적으로 고용 연장을 하면 기본급의 65%만 받지만 회사 창업 멤버여서 기본급은 그대로 받았다”며 “수입은 줄었지만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서 더 오래, 더 많이 일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로 기업은 노동자가 원하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정년을 폐지하거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거나 정년 후 재고용(계속고용제)을 하는 방식이다. 2021년부터는 기업의 고용 확보 의무를 70세까지로 늘리도록 노력할 것을 의무화했다.

노동자가 원할 경우 70세까지 위탁업무 계약을 하거나 사회공헌사업 참여,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미 노력 의무 대상 기업(상시근로자 21인 이상)의 29.7%가 70세까지 취업확보 조치를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기업의 고용 확보 의무 ‘70세’까지

일본의 고령자 노동은 이미 보편화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고령자 고용상황 보고(2023년)에 따르면, 65세까지의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실시한 기업 비율이 99.9%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정년폐지 3.9%, 정년연장 26.9%, 계속고용제도 69.2%로 대부분 기업이 정년 후 재고용을 선호한다.

지난달 18일 이케다씨가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경비 업무를 보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달 18일 이케다씨가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경비 업무를 보고 있다. 반기웅 기자

정년 폐지나 정년 연장은 주로 중소기업에서 택한다. 모리시타 문화센터에서 8년째 경비 일을 하는 쿠라바야시 타가시(84)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부터 온도 제어기 제조업체와 전기공사 업체 등 여러 중소기업을 옮겨 다니며 일했다.

마지막 직장인 염화비닐 제조업체는 정년을 폐지한 ‘느슨한’ 고용 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77세까지 재직했다. 이후 현장 근무가 어려워지자 퇴직하고 모리시타 문화센터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그는 “일본은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같은 노인도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며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좋지 않은 현상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일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일본 노인의 구직 통로는 다양하다. 후생노동성은 전국 300개 지점이 있는 공공직업안정소(헬로워크)에 ‘생애현역지원창구’를 설치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구직을 지원한다. 지난해 기준 헬로워크 전체 구직자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13%로 10년 전(5%)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전국 1307개 실버인재센터는 고령자에게 고용과 자원봉사를 접목한 단기·저소득 일자리를 연결한다. 전국 77만5000여명 규모의 전국 은퇴자협회는 은퇴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여타 기관과 단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고령자는 채용 공고나 지인 소개로 일자리를 얻는다.

정부, 지원금으로 고령자 채용 유도

정부는 고령자를 채용하는 사업자와 구직자를 지원한다. 65세 이상의 정년 연장·정년 폐지, 계속고용제를 도입한 사업주에게는 최대 160만엔의 고용촉진조성금을 지원한다. 고령자 고용 관리 제도나 환경을 개선한 경우에도 중소기업은 연간 30만엔, 대기업의 경우 22만5000엔까지 지원한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특정 고령 구직자를 헬로워크를 통해 무기고용 노동자로 고용하는 사업주에게는 최대 60만엔을 지급한다.

고연령 구직자에게는 고연령 고용 계속 급부금을 제공한다. 정년 이후 취업 시 삭감된 급여를 보조하기 위한 지원금이다. 60세 이후 실업보험의 기본 수당이나 재취업 수당을 받지 않은 노동자 등에게 지급한다.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정년 이후 일하는 고령자의 임금 수준은 현역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다. 특히 재취업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비·청소 등 단순 노무직 대부분은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낮은 임금·단순 노무 일자리 편중 문제 심화

최근에는 고물가·장기 침체 영향으로 더 높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찾는 고령자 구직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저소득 일자리 수요가 줄면서 단기·임시직을 연결하는 전국 실버인재센터 회원수는 2009년 79만1859명에서 2022년 68만1739명으로 줄었다. 마찬가지로 주로 단순 노무직을 알선하는 헬로워크의 경우 65세 이상 고연령 구직자의 21%(2023년 11월 기준)만이 일자리를 얻었다. 단순 노무직을 기피하고 사무직을 원하는 구직자가 많아서다.

지난달 10일 도쿄도 고마에시 실버인재센터 소속 노인들이 고분 청소일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달 10일 도쿄도 고마에시 실버인재센터 소속 노인들이 고분 청소일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전직 소방관 출신인 시바타 코우이치(76·도쿄)는 “60세 정년 퇴직하고 실버인재센터에서 활동을 했지만 단순한 청소일을 연결해줘서 흥미를 잃었다”며 “정년 퇴직하고 나서 기력이 남은 10년이 중요하다. 이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에서도 정년 연장을 중심으로 고령자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평균 고용률은 34.9%(2023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지만, 대부분이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있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일본의 고령자 고용확보 정책을 참고할 필요는 있지만 두 나라의 노동 환경과 제도적 차이를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취업과 결혼, 집(자산)취득, 퇴직금·연금 수령과 같은 라이프 사이클이 비슷한 균일한 사회여서 60세 이후 임금 삭감이 있더라도 대부분 생활은 되기 때문에 적게 받고 더 오래 일하는 고용 연장 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러나 라이프 사이클이 균일하지 않은 한국은 노동자들이 동일 노동을 하면서 임금이 깎이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정년 퇴직하는 노동자 규모 자체가 적다”며 “정년 연장 논의도 중요하지만, 일단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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