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 비과세·세액 공제 같은 조세감면 혜택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됐다. 역대 정부에서 주로 중소기업과 중·저소득층에 조세감면 혜택이 돌아간 것과 대조적이다.
기획재정부가 5일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를 보면, 정부는 2025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이 4조936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 정부에서 세 번째 내놓은 2024년 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확정될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 첫 개정 세법이 적용된 2023년(4조3804억원)과 비교해 12.7%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이 4.7%인 것과 비교하면 약 3배 큰 규모다. 조세지출은 세금을 면제하거나(비과세) 깎아주는(감면) 방식 등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흔히 ‘숨은 보조금’으로 불린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3년차 개정 세법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이 6.2% 늘어날 때, 대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은 되레 38.1% 줄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중소기업 조세지출 증가율(9.4%)이 대기업(1.3%)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이는 현 정부에서 조세지출 규모가 큰 사업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국가전략기술이나 신성장기술을 사업화하는 시설 등에 투자하는 경우 일정 부분을 법인세 등에서 공제하는 통합투자세액공제가 대표적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통합투자세액공제 혜택의 56.8%가 대기업에 돌아갔다. 중소기업(26.8%)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기재부는 올해 통합투자세액공제 조세지출이 1조7402억원에서 내년에는 4조2883억원으로 146.4%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기업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통합투자세액공제의 증가분(직전 3개년 평균 투자액을 초과하는 부분) 공제율을 10%로 일괄 상향하기로 했다. 현재는 국가전략기술은 4%, 일반 및 신성장·원천기술은 3%를 적용하고 있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그동안 중소·중견기업만 누렸던 혜택이 대기업까지 확대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세 감면 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도 역전됐다. 정부는 2025년 고소득자에 대한 조세지출은 16조672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2년 전 고소득자에 대한 조세지출(13조9076억원)과 비교하면 19.9%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중·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은 29조1472억원에서 33조2469억원으로 14.1% 늘어날 전망이다. 여전히 중·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 규모가 크지만, 고소득층을 위한 조세지출 증가율이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는 역대 정부와 대조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3년차 개정 세법에서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은 17.4%였지만 중·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은 45.0%에 달했다. 중·저소득층에 대한 세제 혜택이 고소득층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중·저소득층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13.4%)이 고소득층(9.1%)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실제 ‘감면액 기준 연도별 상위 20개 항목’을 보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조세지출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기재부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보장성 보험 등에 대해 12~15% 세액공제를 해주는 ‘보험료 특별소득공제 및 특별세액공제’ 조세지출이 가장 클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보험료 공제 혜택은 중·저소득층은 50.4%, 고소득층에는 49.6% 각각 돌아갔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하는 상속·증여세 감면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세 부담은 더 가벼워질 전망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가 시행하는 조세정책 가운데 하나는 기업이 투자하거나 고용을 많이 하거나 R&D를 할 때 인센티브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