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플레 시대

얇아지는 지갑, ‘물가 관리’ 최우선 과제 등장

2022.02.28 15:34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김창길기자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김창길기자

가파른 물가 상승이 서민 가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차기 정부의 최우선 경제정책 과제는 ‘물가 관리’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떠올랐던 가계부채 및 집값 급등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각종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급등세가 일단 꺾인 상태다. 그 사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4개월 연속 3%대 높은 수준을 나타내면서 좀체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산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비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가계의 살림살이를 쥐어짜는 물가상승)’ 등 다양한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현재의 물가 상승을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물가 상승은 실질소득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삶의 질과 밀접한 문제다. 특히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공급 요인은 대응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데다, 물가를 잡으려다 자칫 경기 둔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쉽지 않다. 차기 정부와 함께 임기를 시작할 재정·통화정책 수장의 책임도 어느 때보다 막중하게 됐다.

■원자재값·외식비 전방위 상승

28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의 자료를 보면 최근 주요 기관들은 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일제히 끌어올리고 있다. 한은은 지난 24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1%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전망치(2.0%)보다 1.1%포인트나 높였고, 기재부 전망치(2.2%)보다도 0.9%포인트 높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최근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2.8%로 상향 조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확산과 원자재 가격 상승, 국내·외 수요 증가 등은 향후 물가 상승압력을 키우는 주요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수입 원유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이 95.0달러(2월 넷째주 평균)까지 오르는 등 국제유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약 두 달 만에 29.8% 뛰어올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국제유가가 100달러로 오르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반영한 국내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달에 비해 4.1%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해 30.1% 증가한 것으로, 11개월 연속 상승세다. 수입물가는 생산자물가에 영향을 주고, 생산자물가는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가공식품 가격 등이 전방위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고물가가 지속되면 실물경제와 증시 등 경제 전반에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가계의 구매력 저하와 비용 부담도 끌어올린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물가로 서민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월 외식 물가지수 상승률은 5.5%로 2009년 2월(5.6%) 이후 12년1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2000원선을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유류 가격 상승을 필두로 한 물가 상승의 충격은 저소득층에게 더 크게 가해지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지난해 4분기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가 지출한 연료비(광열 연료비·운송기구 연료비 합계)는 월평균 8만770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49원(10.1%) 증가했다. 1분위의 가계 소득 대비 연료비 지출 비중은 8.3%로 전체 가구 평균(3.9%)의 두 배를 웃돌았다.

[신 인플레 시대]얇아지는 지갑, ‘물가 관리’ 최우선 과제 등장

■정권 초 물가 잡기, 가능할까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물가가 더 뛸 가능성도 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공약 실행이나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 대선후보 모두 선거 이후 추경 편성 등 대규모 재정지출을 약속하고 있다.

현 상황이 과거 ‘물가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명박(MB) 정부와 유사한 점도 참고할 만하다. MB정부는 출범 첫 해인 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에 이르자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주요 생필품을 MB물가지수로 선정하고 집중적인 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기 부양과 저금리 유지,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 목적의 고환율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입물가는 치솟았고 물가관리는 더 힘들어졌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이를 두고 “고환율정책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중산층과 서민들의 부담 증가, 그리고 수출기업(주로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였다”고 평했다.

차기 한은 총재가 ‘비둘기파(완화 선호)’일지 ‘매파(긴축 선호)’일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주열 총재의 임기는 3월말 종료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여전히 추가 금리 인상 방침을 확실히 하고 있지만, 의장인 총재의 성향에 따라 시장에 주는 시그널도 달라질 수 있어서다. 차기 총재 후보로는 이승헌 한은 부총재와 윤면식 전 한은 부총재, 조윤제 금통위원과 임지원 금통위원,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과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 등 한은 내·외부 인사 10명 정도가 거론된다.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 전문가들도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 등이 대표적이다.

일단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관리하고, 재정지출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물가상승률 3%, 경제성장률 3%를 전제로 추산한 적정 기준금리는 연말 기준 연 2.5~2.6% 수준”이라며 “금리인상, 만간부채의 적정수준 관리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 확산을 방지하고, 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대응 기조를 일관성있게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차기 정부의 물가 관리는 우선 순위에 따라 불가피한 지출에만 재정을 쓰되, 추가 세수를 확보해 추가 지출 총량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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