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지정 회계법인 이용했던 업계
비싸진 감사 비용 불만 많자 당국 ‘당근책’ 제시
전문가들 “회계법인·기업간 유착 재연될 것” 비판
금융위원회가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뽑아 ‘감사인 주기적 지정’을 일정기간 면제해주겠다고 밝혔다. 감사 독립성을 위해 당국이 지정하는 회계법인을 써야 했던 기업들은 그간 비용 문제로 불만이 많았는데 정부가 기업 요구를 일정 수준 받아들인 셈이다. 기업들의 주주환원을 촉진하는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의 당근책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선 감사인 독립성이 강화돼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역행하는 정책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2일 기업 밸류업 관련 회계·배당 부문 간담회를 열고 “감사 관련 지배구조가 이미 우수한 기업을 우대하고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유도하고자 감사인 주기적 지정 면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도입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하면 그 다음 3년은 금융당국(증권선물위원회)이 정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게 만든 제도다. 2017년 대우조선해양 회계분식 사태 이후 감사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그간 기업은 당국이 회계법인을 정하면서 입찰경쟁이 사라져 감사 단가가 비싸졌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에 금융위는 ‘지배구조 평가위원회’를 꾸려 감사인 선임·감독 시스템을 잘 갖춘 지배구조 우수 기업을 선정, 이들 기업에 대해선 주기적 지정을 일정 기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기업 밸류업 표창’을 받는 회사에는 지정 면제를 위한 지배구조 평가시 가점도 주기로 했다. 2025년 5월 신설되는 밸류업 표창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공시한 기업 중 가장 우수한 10여개사에 정부가 수여하는 상이다.
구체적인 면제 방안은 이날 나오지 않았다. 다만 우수기업이 자체적으로 선임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6년에서 더 늘려주거나, 회계법인 의무지정 기간을 3년보다 축소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지정면제를 위한 구체적 평가 기준과 면제 방식을 2분기 중 확정, 법 개정을 거쳐 내년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위의 이같은 방침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감사인 제도를 피하고 싶을텐데 정부가 그런 요구에 반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금융사고는 기업들이 초반에는 공시의무 등을 잘 지키다 갑자기 일탈하면서 벌어지는데 감사 제도 역시 한 번 풀어주면 회계법인과 기업 간 유착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날 간담회에서 배당 절차를 개선한 상장사 현황도 공개했다. 지난해 1월 정부는 이른바 ‘깜깜이 배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당액을 알고 투자’할 수 있도록 배당 절차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2381개사 가운데 배당 절차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을 진행한 기업은 1011개, ‘깜깜이 배당’ 문제를 해결한 기업은 109개로 집계됐다고 금융위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