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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아메리칸 드림···나스닥 상장의 덫에 빠진 카카오·티메프

2024.08.04 07:00 입력 2024.08.04 07:01 수정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07.30 박민규 선임기자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07.30 박민규 선임기자

‘꿈의 무대’ 나스닥에 상장하려는 욕망은 그대로 독이 됐습니다. 이미 나스닥 상장 성공 경험이 있던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쿠팡을 롤모델로 삼은 카카오는 모두 공격적으로 규모를 넓혀가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현실은 악몽이 됐습니다.

적자회사였던 티몬·위메프의 경영 악화로 수천억원대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고,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에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되며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투자금을 받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는 반드시 기업공개(IPO)를 해야하고, 구영배 대표도 여전히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꿈이 실현될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들은 나스닥 상장을 노릴까

기업들은 왜 미국으로 향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국내보다는 글로벌 자금이 쏠리는 미국 증시에서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장을 하려는 이유가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함인 만큼, 조금이라도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2021년 3월 4조원이 넘는 누적적자에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해 한 때 시총이 800억달러(약 110조원)을 넘겼던 쿠팡의 성공사례가 국내 기업들에게 자극제가 됐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졌죠. 카카오엔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쿠팡 제공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쿠팡 제공

쿠팡이 상장한 다음달, 이진수 당시 카카오엔터 대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쿠팡의 성공은 카카오엔터와 같이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며 카카오엔터가 2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죠.

큐텐그룹의 경우 쿠팡과 유사한 사업모델을 구축한데다 구 대표는 이미 사내벤처에서부터 시작한 G마켓을 나스닥 상장으로도 이끌어본 만큼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통해 다시금 같은 성공을 거두려는 열의가 컸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나스닥 시장의 상장기준은 비교적 엄격하진 않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심사 통과와 더 많은 유동성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합니다.

이들이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인수·합병(M&A)이었습니다. 카카오엔터는 지적재산(IP)를 최대한 확보해 성장성을 높이려 했고, 큐텐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를 공격적으로 사들여 물류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상장하려는 큐익스프레스의 가치를 높이려 했습니다.

[경제뭔데]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나스닥 상장의 덫에 빠진 카카오·티메프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넘기며 겸업금지 조항에 따라 국내 활동이 제약됐던 구 대표는 이 조항이 풀린 후 2022년부터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해 9월부터 2년도 안돼 티몬,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미국 이커머스 업체 위시, AK몰 등 5개 이커머스 업체를 연달아 인수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인수 당시에도 적자회사였지만 오히려 이 덕에 몸값이 낮아져 인수에 용이한 환경이 됐습니다.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큐텐도 현금을 거의 쓰지 않고 지분교환 방식 등을 통해 손쉽게 규모를 키워 나갔죠.

카카오엔터도 몸집이 커졌습니다. 2019년 6개에 불과했던 카카오엔터의 종속기업은 지난해 47개까지 늘어났습니다. 2021년엔 1조1000억원을 들여 북미 웹툰 플랫폼인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인수하기도 했죠. 그 중 계획의 핵심은 SM엔터 인수였습니다. K팝의 인기가 큰 만큼 20조원의 가치를 갖추기 위해서는 SM엔터가 가진 IP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카카오엔터 대신 카카오까지 직접 나서 하이브와의 SM엔터 인수 경쟁에서 승리하며 추후 카카오엔터의 몸값을 키울 여지가 생겼죠.

어긋난 상장 전략···모래성처럼 무너진 티메프

[경제뭔데]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나스닥 상장의 덫에 빠진 카카오·티메프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해 얻은 과실을 나눈다면 적자도 만회하고 자금도 회수하는 ‘탄탄대로’를 상정했지만, 무리하게 쌓은 모래성은 점차 무너져내렸습니다. 인수 당시에도 자본잠식 상태였던 티메프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됐는데,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의 공세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하반기 1조원의 가치로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을 추진했으나 그전에 결국 버티다 못한 큐텐 계열사가 무너지며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죠. 전체 미정산 금액만 현재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카카오엔터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주식시장 침체로 상장을 미룬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1조223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는데, 거금을 주고 인수한 타파스엔터테인먼트(타파스+래디쉬 합병기업)에서만 4252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카카오가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에 대한 시세조종을 벌였다는 의혹으로 김 의장이 구속되면서 카카오엔터를 포함한 그룹사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죠. 그룹 전체가 상장의 덫에 걸려든 셈입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나스닥의 꿈’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31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가 적은 규탄 문구가 붙어 있다. 2024.07.31 한수빈 기자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31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가 적은 규탄 문구가 붙어 있다. 2024.07.31 한수빈 기자

큐익스프레스를 상장하려는 구 대표의 꿈은 미정산사태에도 멈추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그 부분이 불가피하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구 대표가 보유한 큐텐 지분(38%)을 매각한다고 밝혔지만 큐익스프레스의 지분(29.36%)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비상장사 큐텐의 지분 가치도 인정받기 어려울 전망이지만, 미국 SEC의 심사가 엄격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실제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이 가능할지 여부도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회생불가능한 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선 상장만이 마지막 ‘동앗줄’인 만큼 포기하긴 어려운 것이죠.

IPO를 조건으로 사우디 펀드 등으로부터 1조원 넘는 투자금을 받은 카카오엔터도 반드시 상장을 해야하는 입장이지만, 사법리스크에 엮인 현 상황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가치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상장 ‘올인’에 나선 만큼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든 것이죠. 출구전략이 없는 욕망에 피해는 주주와 국민의 몫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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