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복구 일본, 후쿠시마를 기억에서 지우려 해”

2024.08.04 20:23 입력 2024.08.04 20:27 수정

탈핵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마쓰쿠보 하지메 사무국장

일본 탈핵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마쓰쿠보 하지메 사무국장이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일본 탈핵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마쓰쿠보 하지메 사무국장이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탄소 절감 당장 해결해야 하는데
20년 뒤 효과 내세우며 원전 신설
핵 폐기물 문제 등 외면 억지 행보
국민 여론 무시, 주변국에도 피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福島)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실제로는 후쿠시마를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나카노(中野)구에 위치한 일본의 대표적인 탈핵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사무실에서 만난 마쓰쿠보 하지메 사무국장은 단호했다. 그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자문기구인 원자력위원회의 위원으로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에너지 전략에 반대한 인물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는 화석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녹색전환(GX)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그중 핵심은 원자력 복구다. 일본 의회는 현재 최장 60년까지 허용된 원자력발전소 수명을 늘리는 GX 전력공급법을 통과시켰다. GX 전략에 따라 폐로를 결정한 원전은 보수해 재가동하고, 원전 신설과 증설도 가능해졌다. 이 같은 일본 원전 부활은 정부 주도하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마쓰쿠보 CNIC 사무국장은 GX 정책 결정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당시 원자력위 위원 23명 중 반대한 이는 마쓰쿠보 사무국장을 포함해 단 2명이었다.

그는 “일본의 정책은 관료 손에 결정된다.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구성원은 관료가 정한다.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명분을 위해 만든 조직이어서 결론은 정해져 있다. 국민 여론은 반대였지만 원전이 선거에 영향을 줄 만큼의 이슈는 아니었기에 정부가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는 원전 신설 계획을 2030년대 초반으로 잡았는데, 원전 건설 기간을 감안하면 2040년대에나 가동된다”며 “탄소 절감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20년 후 효과를 기대하며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원전 수명 연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초 40년 수명에 맞춰 설계된 원전을 ‘더 쓸 수 있을 거 같으니 더 쓰자’는 발상인데, 원전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가전제품 취급하듯 연장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원전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에도 회의적이다. 간사이·규슈 전력 등 일부 전력회사는 원전 재가동으로 각 가정의 전기 요금이 한 달 기준 1000엔가량 내려갔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2011~2022년 일본 전력회사에서 가동 중단 원전을 유지·관리하는 데 투입된 비용만 13조엔이 넘는다. 원전 유지 비용은 전기요금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그는 “시코쿠전력은 원전 재가동을 했는데 인하 효과가 거의 없었고, 도쿄전력의 경우에는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요금을 산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재가동이 되더라도 인하 효과는 월 100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 폐기물 저장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그간 풀지 못한 과제들은 그대로 남았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그간 13조엔 넘게 투자한 전력회사들은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전력계획을 세웠는데, 가동을 하지 않으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정부도 여기에 편승해 원전의 근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억지 행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뜨겁게 달궜던 후쿠시마 오염수는 무관심 속에 조용히 방류되고 있다. 2016년부터 논의됐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당시 국민 공청회에서 거의 전원이 반대해 중단됐다가 시간이 흐른 뒤 폐기된 안건이 되살아나 결국 방류가 이뤄졌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일본 국민 여론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태평양 연안 나라들에 피해를 끼친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낸 의견만 되풀이 인용하며 안심하라지만 10년 뒤 오염수로 인한 위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7등급 대참사였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당장 폐로 절차를 밟기도 막막하다. 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가 구조물과 엉키면서 생긴 핵찌꺼기인 ‘데브리’부터 제거해야 하는데 데브리는 여전히 원전 1~3호기 원자로 주변에 880t이나 남아있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데브리를 1~2g 단위로 빼내는 방안을 고민 중인데, 그렇게 해서 880t을 언제 어떻게 빼낼 것인지 문제이고, 어디에 보관해 처리할지도 문제”라며 “여기에 드는 비용만 최소 20조엔인데 부담 방안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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