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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있다? 없다?···지역화폐,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2.09.17 12:36 입력 2022.09.17 12:43 수정

정부, 내년 국비 지원 예산 전액 삭감

여야, 국회 심의 과정서 증액 가능성

[주간경향]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국비 지원액을 전액 삭감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없는 지방자치단체 고유 사무에 국가 재정을 쓰지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예산안에 담긴 의도는 명확하다. 각자도생이다. 정부는 더 이상 지원할 생각이 없으니 지역화폐를 계속 발행하고 싶은 지자체는 기존 교부금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지역화폐 정책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이번 예산 삭감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온다. 지역화폐 발행량을 늘려온 지자체들의 불만도 크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은 규모를 줄이거나 발행을 중단해야 한다. 다만 정부 원안대로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낮다. 지역 민심을 의식한 의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예산 증액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힌 8월 30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에 지역화폐 사용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힌 8월 30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에 지역화폐 사용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중앙-지방 간 갈등으로 번진 예산 삭감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30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을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본예산 기준 지난해 1조522억원에서 올해 6053억원으로 감액된 데 이어 내년엔 ‘0원’이 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31일 “지역화폐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내년 예산 중 지자체로 가는 예산이 전체 교육청까지 포함해 약 22조원이고, 여기에 일반 행정 관련으로도 11조원 이상의 교부금이 내려가기 때문에 지역화폐를 계속 발행하려는 지자체들은 이 자금을 활용하면 된다는 의미다. 조삼모사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부금 활용처가 다 정해져 있는데 그 예산을 빼서 쓰라는 건 사실상 지역화폐 발행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지역화폐는 이재명 대표를 상징하는 대표 정책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추진한 핵심 사업으로, 현재는 전국 232개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 중이다. 이재명 대표는 당대표 취임(8월 29일)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역화폐 예산을 삭감한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8월 31일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소상공인 골목상권에 큰 도움이 되는 지역화폐 예산도 전액 삭감했더라”며 유감을 표명했고, 9월 2일에는 광주 양동시장에선 상인들을 만나 “(윤석열 정부가) 유통 대기업들의 매출을 늘려주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경악스럽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8월 31일 “지역화폐를 우리(경기도)가 가장 많이 발행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에서 국비 전액을 삭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혹시라도 정치적인 이유나 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경기도 지역화폐의 총 발행 규모는 올해 4조9992억원으로, 비중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28.5%를 차지한다. 다른 지자체들은 할인율을 낮추거나 구매 한도를 줄이는 식으로 사업을 축소할 계획이다.

지역화폐 효과, 어떻게 봐야 하나

효과 있다? 없다?···지역화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역화폐는 지역 내 가맹점 결제액의 일정 비율을 할인하거나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는 화폐이자 상품권이다. 종류는 카드·모바일·지류형 등으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통상 할인율은 5~10% 수준이다. 할인율이 10%일 경우 10만원권 지역화폐를 소비자가 9만원에 사는 식이다. 지자체 주도하에 발행하는데, 할인발행과 정책발행 등 2가지 방식이 있다. 정책발행은 현금성 복지혜택(재난지원금·출산지원금·청년배당 등)을 지역화폐로 대체해 지급하는 것이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할인발행은 할인폭만큼 중앙정부와 광역·기초단체가 나눠 부담한다. 예컨대 경기도의 경우 10% 할인(인센티브) 중 4%를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6%는 경기도와 도내 시·군이 분담(국비 지원 안 되는 지역화폐는 총 6% 할인)하는 식이다.

지역화폐 도입은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코로나19 이후 거리 두기 확대 등으로 골목상권이 위협받으면서 중앙정부의 재정 투입이 크게 늘었다. 높은 할인율 때문에 소비자 호응도도 높다.

그럼에도 정부 판단은 ‘지역화폐 무용론’에 방점이 찍혔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화폐가 더 이상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재정 낭비 등 부작용만 키운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추 부총리의 과거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2020년 10월 “국책연구기관(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고 했고, 그해 11월엔 “국가가 전 국민에게 10% 할인권을 주는 돈 살포 의미밖에 없다”고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9월 보고서(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와 이듬해 1월 추가 보완 보고서에서 “모든 지자체가 액면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에 지역화폐를 판매하면서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됐다.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처럼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또 2020년 예를 들며 중앙정부의 발행 보조금 9000억원 지급에 따른 손실과 운영 비용(인쇄비와 금융 수수료 등)으로 인한 경제적 순손실이 22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지역화폐와 유사하고 전국적으로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 이용 확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역화폐를 싸게 매입한 뒤 관할 지자체를 통해 환전하는 일명 ‘현금깡’에 대한 단속 비용 등 손실도 크다고 했다.

조세연 보고서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많다. 경기연구원은 2021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경기도를 중심으로, 김건호 외)에서 “지역화폐 도입 이전의 지역 간 소비 유·출입 구조가 ‘균형’이었다면 이 (조세연의) 주장은 타당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 도입 이전에 소비유출이 심각했던 지역과 소비유입이 컸던 지역이 나눠져 있었다면 지역화폐 도입은 소비유출이 심각한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서울로의 소비유출이 심각한 경기도의 경우 지역화폐를 도입했을 때 경기도의 소비 순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원은 또 요식·유흥업종의 재난지원금 사용 시점의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지역화폐 사용 가능 점포 결제액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4~3.2%포인트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행정안전부가 의뢰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간한 연구용역보고서(지역사랑상품권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지역화폐의 효과성을 강조한다. 보고서는 그해 10월과 11월 지역화폐 이용자 1021명과 소상공인·자영업자 522명을 대상으로 경제적 효과 분석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지역화폐 가맹점은 도입 후 월평균 매출액이 87만5000원(3.4%) 늘어난 반면 비가맹점의 월평균 매출액은 8만6000원(0.4%) 감소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연 매출 10억원 이하인 소상공인 점포에서만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한돼 있고, 이중에서도 매출 3억원 이하가 약 75%를 차지할 정도로 대부분이 전통시장이거나 골목상권이다.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삭감할 게 아니라 국비를 지원하면서 보완을 요구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지자체 고유 사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양준호 교수는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 격차 해소와 지방소멸 대응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행정안전부가 주무부처로서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한 (지역화폐 무용론) 주장은 피폐해져가는 지역 문제를 제대로 볼 의지나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8월 31일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정부의 예산안 편성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8월 31일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정부의 예산안 편성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연합뉴스

“기재부·행안부, ‘국회서 증액’ 예상할 것”

지역화폐 예산은 지난해처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정부가 편성한 올해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은 2403억원에 그쳤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152%(3650억원) 늘어 6053억원으로 증액됐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여야 의원들도 증액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 9월 1일 ‘2021 회계연도 결산’ 등을 논의한 회의록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지역화폐는 지역 내에서 돈이 순환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엄청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데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하면 될 일을 예산 자체를 없앤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역화폐 보완 방안 등을 다룬) 용역보고서 결과가 연말에 나오면 검토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도 “각 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비율을 예를 들어 경기도처럼 (재정이) 넉넉한 곳은 중앙정부가 3%를 부담하면 경기도가 7%를 부담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중앙과 지방의 부담 비율을) 5 대 5로 하는 식으로 유연성 있게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상당히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행안부가 지역화폐 정책을 확대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성만 의원은 “행안부가 내년 예산을 신청하면서 (기재부가 내년 행안부 예산으로 정한) 한도(캡) 내에서는 172억원만 신청하고 캡 외로 4700억원을 신청한 것으로 봤을 때 이것 자체가 기재부가 받아들이기 좀 어려운 신청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행안부의 의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행안부가 의지가 있었다면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172억원만 신청할 게 아니라 애초에 4700억원 이상을 신청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행안부가 지역화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날 행안위 예비심사검토보고서는 “행안부가 2020년 이후 지역화폐 발행액·환전액에 대해 매월 단위로 지자체로부터 발행 현황을 제출받아 관리하고 있으나, 지역화폐의 실제 사용 목적을 비롯한 사용 현황에 관해서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적었다.

국회 행안위의 한 관계자는 “예산을 전액 삭감한 기재부와 주무부처인 행안부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증액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0원’이라는 예산안을 짠 건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지역화폐에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속내를 명확하게 드러내보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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