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새 1억 올라 계약 포기…배반당한 ‘내집 꿈’

2006.11.06 21:55

‘억, 억’ 하며 오르는 집 값. 나올 때마다 줄줄이 실패하는 부동산 정책. 대한민국의 무주택 서민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정부의 말을 따르면 바보가 되고, 손가락질을 받는 세상이다. 아무리 개미처럼 일해도 내집 마련 꿈은 멀어지기만 한다. 약삭빠르게 정부의 정책을 거스르는 사람들만이 한 몫을 챙긴다.

며칠새 1억 올라 계약 포기…배반당한 ‘내집 꿈’

주택보급률 105%.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허망한 숫자놀음이다. 도대체 그 많은 집들이 누구 손에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바보같이 대통령과 정부 말을 그대로 믿은 내 탓이지. 이제는 한숨도 안나옵니다.”

인천 검단에 사는 최모씨(42)는 지난 한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거의 손에 들어왔던 ‘내집 마련 꿈’. 정부 발표로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희망. 능력 없는 아빠 만나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노동일을 하는 최씨와 아내의 수입을 합치면 한달에 2백50만원. 중학교 2학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딸의 교육비로도 빠듯한 돈이지만 집 장만을 위해 아끼고 또 아꼈다.

지금 살고 있는 25평 아파트 전셋값 6천만원에 적금 1천만원, 주택담보대출 5천만원을 합치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평수를 더 늘리지는 못해도 ‘남의 집 살이 설움’을 끝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정부의 ‘인천검단신도시’ 계획이 터져나오면서 부부는 주저앉았다. 전날까지 평당 5백50만원 하던 아파트가 순식간에 1천만원으로 올랐다. 최씨가 살고 있는 1억2천만원짜리 아파트는 며칠새 2억2천만원으로 뛰었다. 최씨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최씨는 “이번 달 안에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집을 살 계획을 세웠는데 말짱 헛것이 됐다”고 말했다. 꿈이 무너지면서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아내는 “내 말대로 꾸물거리지 말고 진작에 집을 사버렸으면 앉아서 돈을 벌지 않았겠느냐”며 “정부가 ‘내린다, 내린다’ 한다고 그걸 믿었느냐”고 타박한다. 최씨는 대꾸할 말이 없다.

며칠새 1억 올라 계약 포기…배반당한 ‘내집 꿈’

공무원 김모씨(42)는 이제 ‘내집 마련’을 체념했다. “어차피 전세인생, 전셋값만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뿐이다. 김씨는 지난 2004년 12월 지금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주공아파트(33평)를 전세 1억5천만원에 얻었다. 그나마 싼 편이었다.

당시 강남구에 집 한채를 더 갖고 있던 주인이 ‘다가구 중과세 정책’을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집 주인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김씨에게 3억8천만원에 사라고 권했다. 당시 시가는 4억원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전세를 택했다. 대출금 2억원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지만 집값이 하향 안정화할 것이란 정부 발표를 굳게 믿었다. 결국 이 집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김씨는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하다. 김씨가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3억8천만원이던 집값은 2년이 지난 지금 6억2천만원이 됐다.

그 때 ‘모험’을 택했다면 앉아서 2억4천만원을 벌 수 있었다. 지금은 전세금을 걱정하는 신세다. 재계약하려면 최소한 3천만원은 더 줘야 한다.

판교신도시 분양도 ‘그림의 떡’이었다. 한달 3백만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살인적인 집값 인플레를 따라잡지 못한다. 김씨는 집 구입을 포기했다.

“앞으로 전세로만 살겠다고 마음 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며칠새 1억 올라 계약 포기…배반당한 ‘내집 꿈’

은평구에서만 19년을 산 최모씨(39)는 내년에는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한다. 은평뉴타운이 개발되면서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게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26평)의 전세금은 8천만원, 그러나 내년에는 얼마를 줘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미 주인은 전세금을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최씨는 10년 전부터 꼬박꼬박 매달 80만원씩을 모았다. 2000년 3월에는 청약통장도 가입했다. 처음 은평뉴타운이 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희망이 생겼다. 내집 마련 기대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러나 분양가를 듣고는 한숨만 나왔다.

최씨의 연봉은 3천만원, 재산은 전세금 8천만원이 전부다. 뉴타운에 당첨되더라도 3억원이 넘는 분양가를 감당할 수가 없다. 최소한 2억원은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원금과 이자는 능력 밖이다. 가계부도가 불 보듯 뻔하다.

최씨는 서울 밖으로 나갈 결심을 굳혔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 평수를 줄 일 수가 없다. 전세금 8천만원으로 지금과 비슷한 집을 얻으려면 멀리 가는 수밖에 없다. 못난 부모 만나 아이들이 전학을 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최씨는 “정부는 그동안 가진 자들에게는 내성만 키우고, 없는 자들에게는 허탈감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라며 “이제는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가장 큰 소원은 적정한 분양가로 주택이 공급돼 내가 가진 청약통장으로 분양신청이라도 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진수·이고은·임지선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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