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시세보다 20억원이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불렸던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지난달 진행된 이 단지 청약에선 84점짜리 ‘만점 통장’이 3개나 등장했다. 84점은 부양 가족이 6명 이상이면서 청약 통장 가입기간과 무주택 기간을 무려 15년 이상 유지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이 단지 당첨자 평균 가점은 76.6점에 달했다. 4인 가족 만점(69점)으로도 당첨을 노려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위장전입’으로 가점을 높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졌다. “부양가족까지 7식구가 15년 동안 무주택으로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20억원짜리 아파트에 청약을 넣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당첨자 전원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국토교통부는 올해 하반기 주택청약 및 공급실태 점검에 이 단지를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청약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부정청약’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4년간 적발된 부정청약 1000건을 넘어섰는데, 이중 70%는 위장 전입 의심 사례로 확인됐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불법전매 및 공급질서 교란행위 적발 현황’ 자료를 보면, 2020~2023년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의 합동점검 결과로 적발된 부정청약 건수는 총 1116건에 달했다.
부정청약 사례 10 건 중 7건(778건·69.7%)은 위장전입으로 드러났다. 당첨 가능성이 높은 청약통장이나 자격을 매매한 사례가 294건(26.3%), 위장 결혼·이혼·미혼도 44건(3.9%)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매년 두차례에 걸쳐 ‘주택청약 및 공급실태 점검’을 진행해 부정청약 의심 사례를 잡아내고 있다. 해당 지역 거주자나 무주택세대구성원 자격을 얻기 위해 상가·창고·비닐하우스에 전입을 하거나 위장 이혼을 하는 사례가 자주 적발된다.
최근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수억대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강남3구 아파트에서 부정 청약 의혹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강남권 청약 당첨자 중 83%는 가점이 70점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15년 이상 무주택 자격을 유지한 3~4인 가구가 강남권 청약에 당첨된 비율은 17.4%에 그쳤다
실제로 래미안 원펜타스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진 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양가 부모님을 주민등록등본상으로만 전입시키고 실제는 부모님 명의의 카드를 발급받아 쓰면서 실제 살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등 부양가족 수를 늘리려는 불법적인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부정청약으로 주택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계약 취소 및 주택 환수, 향후 10년간 주택청약 자격이 제한된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도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청약이 확인된다 해도 형사처벌과 주택환수까지 이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이 불법전매와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적발해 국토부로 통보한 건수는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최근 5년간 총 1850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중 계약취소 또는 주택환수가 완료된 경우는 627건으로 33.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재판 중이거나 선의의 매수인이 있음에 따라 취소가 불가능한 상태다.
복 의원은 “위장 전입의 경우 부양 가족 인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공정한 청약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국토부는 청약 위장 전입 문제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