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으로 줄어든 북극 빙하, 왜?

2019.09.29 21:29 입력 2019.09.30 10:56 수정

사진은 1988년 8월과 2019년 8월 북극 빙하 크기 비교. 최근 빙하가 현격히 줄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사진은 1988년 8월과 2019년 8월 북극 빙하 크기 비교. 최근 빙하가 현격히 줄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한 호숫가에서 상의를 벗은 채 반바지를 입은 아빠와 민소매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엄마, 수영복을 입은 초등학생 또래의 자녀가 한여름 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다. 더위 속에서 방금 물놀이를 한 듯 어린이의 머리는 젖어 있고, 아빠의 손에는 기다란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사진이 찍힌 곳은 다름 아닌 추위의 도시 알래스카 앵커리지였다. 지난 7월4일 앵커리지의 낮 최고기온은 32.2도를 기록했다. 1952년 이 지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였다. 이 시기 앵커리지의 평균 최고기온은 18도 내외에 불과하다. 앵커리지 여름 더위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게 바로 올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린란드 주변 바다를 덮었던 거대한 빙하가 녹아 작은 얼음으로 쪼개진 모습. 과학계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그린란드 주변 바다를 덮었던 거대한 빙하가 녹아 작은 얼음으로 쪼개진 모습. 과학계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관측 이후 두 번째로 기록적 감소
겨울 다가와도 늘어날 기미 안 보여
올여름 폭염이 직접적인 영향

그런데 이런 북극 주변의 더위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바다를 덮어야 할 해빙이 기록적으로 사라졌다. 지난주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콜로라도 보더대 연구진은 지난 18일 북극 해빙의 넓이가 415만㎢로 측정됐다고 밝혔다. 이 면적은 남한의 40배가량이어서 언뜻 넓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1970년대 시작된 북극 해빙 관측 역사상 두 번째로 좁은 면적이며, 2007년과 2016년 측정된 수치와 비슷하다. 역대 해빙이 가장 좁았던 때는 2012년이었다.

NASA에 따르면 해빙 면적이 가장 좁았던 2012년에는 북극 대기와 습한 공기가 합쳐지면서 저기압성 폭풍이 생기는 바람에 해빙들에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졌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보냉 용기에 얼음을 넣고 마구 흔들면 얼음이 조각나 빨리 녹는 일이 당시 북극 바다에서 벌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일도 없었는데 북극 해빙이 크게 줄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겨울이 점차 다가오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실제로 북극 해빙은 9월 이후, 즉 겨울이 다가오면서 확대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클레어 파킨슨 NASA 고다드우주센터 수석 과학자는 “해빙으로 덮인 지역이 늘어날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올해 북극 해빙의 극단적인 감소는 유난스러웠던 여름 더위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게 NASA의 분석이다. 올해 6월부터 프랑스 파리 등 유럽 곳곳에서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 폭염이 밀어닥쳤고, 이런 극단적인 더위를 만든 지구의 열기는 앵커리지에서 벌어진 때아닌 물놀이에서 보듯 북극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다. 실제로 폭염 탓에 나무가 바짝 마르며 북극 주변 시베리아 등에 분포한 한대림에선 대규모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더위가 단지 올해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온난화가 구조적인 문제에 빠져 가속화되고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주 ‘2015∼2019년 지구 기후보고서’를 발표해 2015년부터 최근 5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였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율은 이전 5년(2011∼2015년)보다 20% 높아졌다.

온난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그 원인인 ‘이산화탄소 증가’ 추세도 특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인간 활동 때문에 북극 해빙이 줄어들고 있다는 다양한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며 “온난화 대응 노력에도 각국의 경제문제가 결부되면서 사실상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이 운영하는 북극해빙감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북극 해빙은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뚜렷한 감소 추세를 유지한다. 마치 비탈길을 내려가듯 해빙의 양이 줄고 있다는 얘기다. NASA 역시 1978년 이후 북극 해빙 면적이 10년마다 13%씩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북극해 빙하 감소 땐 해수면 상승
해안도시 침수로 ‘기후 난민’ 확산
한국엔 한파 몰아닥칠 가능성도

어떤 시각으로 봐도 북극 해빙이 위기에 빠진 게 분명하다는 얘기다. 북극 해빙 감소는 해수면 상승과 직결된다. 세계 각지의 해안 도시들은 상습적인 침수에 시달리거나 아예 물에 잠길 수도 있다. 국토에 고지대가 부족하거나 해수를 막을 제방을 쌓을 경제력이 부족한 국가는 존립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현재 태평양 몇몇 섬나라의 문제로 생각하는 ‘기후 난민’이 급속도로 지구촌에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극 해빙 감소는 우리나라를 강추위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북극 주변의 바다인 바렌츠해와 카라해에서 해빙 감소와 수면 온도 상승이 나타나면 바다 열기가 대기로 전해지면서 온난화가 일어나고, 이 때문에 대기의 순환이 교란되며 동아시아와 북미에 한파가 초래된다.

온난화가 중위도에 추위를 부른다는 분석은 아직 확실한 정설로 인정되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상당히 가능성 높은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입장이다.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처럼 그동안 살기 좋은 기후를 누렸던 중위도에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극단적인 추위가 찾아온다는 설정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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