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태울 때 나오는 블랙카본 온난화 영향, 이산화탄소의 1500배

2021.08.22 21:28 입력 2021.08.22 21:36 수정

만년설·빙하에 내려앉으면 햇빛 반사율 떨어뜨려 녹는 속도 높여

경작지 태우면 해충보다 익충 더 많이 죽이고, 토지 생산력도 저하

미국 워싱턴주의 한 농경지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다. 전 세계 농촌에선 농사로 발생한 쓰레기와 땅속 해충을 없애려고 농지에 불을 지르는 일이 흔하다.  미국 워싱턴주정부 제공

미국 워싱턴주의 한 농경지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다. 전 세계 농촌에선 농사로 발생한 쓰레기와 땅속 해충을 없애려고 농지에 불을 지르는 일이 흔하다. 미국 워싱턴주정부 제공

매년 봄 농촌에선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대개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 때문에 예정보다 더 넓은 농경지가 타고, 그것도 모자라 산으로 번지는 경우이다. 논이나 밭은 봄뿐만 아니라 곧 다가올 가을에도 많이 태운다. 농사로 생긴 잡다한 부산물을 빠르게 없앨 수 있고, 특히 해충이 사라진다는 믿음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크다. 2016~2018년 집계된 소방청 통계를 보면 논과 밭에서 시작된 화재 사고가 전국적으로 1338건에 달했고, 재산 피해는 약 11억원, 사상자는 64명에 이르렀다.

■ “블랙카본 방출 막아라”

그런데 최근 국제사회는 논두렁과 밭두렁 태우는 일을 다른 측면에서 걱정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주 홈페이지를 통해 논과 밭을 태울 때 나오는 연기에 섞인 검은 그을음인 ‘블랙카본(Black carbon)’이 지구온난화를 촉진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카본이 온난화를 부추기는 원리는 간단하다. 블랙카본은 탄소를 품은 유기물질인데, 색이 검다는 게 문제다. 검은색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열을 더 많이 흡수한다. 여름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으면 흰색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더운 것과 같은 이치다. 블랙카본이 대기로 방출됐다가 바람을 타고 움직여 하얀 만년설이나 빙하에 내려앉으면 얼음이나 눈이 녹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원래 하얀 눈은 지상에 도달하는 햇빛을 최대 90% 반사하지만, 검은색을 띤 블랙카본이 내려앉으면 반사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나 식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생기는 검은색 그을음인 ‘블랙카본(Black carbon)’을 모아 놓은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화석연료나 식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생기는 검은색 그을음인 ‘블랙카본(Black carbon)’을 모아 놓은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 온난화 능력 최대 1500배

블랙카본이 열을 흡수하는 힘은 어느 정도일까. 이산화탄소보다 무려 460~1500배나 강하다. 블랙카본이 대기에 방출되면 최대 수주일 뒤에는 사라지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존재하는 동안에는 가공할 만한 힘으로 열기를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지구촌 곳곳의 논과 밭에서 수시로 불을 놓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수명이 짧아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것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농사 중 나오는 쓰레기를 없애고 해충을 잡겠다며 농경지를 태우는 일이 흔하다. 일부 주정부들도 이런 관행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주정부 대응의 초점은 온난화 방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개는 연기 확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숨쉬는 데 불편을 겪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농민들에게 기상 조건을 봐가며 불을 놓으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불을 놓아도 괜찮은 때가 정말 있기는 한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2000년 독일과 호주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글로벌 바이오지오케미컬 사이클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1980년대 기준으로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블랙카본이 연간 700만~2400만t, 불타는 식물에선 이보다 최대 수십배 많은 4000만~6억t이 방출됐다. 불타는 식물에는 농경지에서 소각되는 작물의 부산물이 포함된다. 특히 농경지를 태우는 불은 산불의 시작점이 되는 일도 많다. UNEP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농경지 화재와 이로 인한 산불은 세계 최대의 블랙카본 공급원”이라고 지적했다.

■ 토지 생산력 30% 떨어져

그런데 알고 보면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태우는 일은 농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해 농촌진흥청이 국내 경작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땅속에 있는 전체 곤충의 80~97%가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익충(益蟲)’이었다. 농민들의 의도와 달리 불을 지르면 주로 죽는 건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는 뜻이다. UNEP는 농사를 짓는 땅에 불을 지르면 수분과 생산력이 25~30% 떨어진다고도 지적했다. 이렇게 망가진 토지에서 작물을 기르려면 비료를 전보다 더 많이 뿌리고 관개 시설도 더 넓게 건설해야 한다. 수확을 늘리려고 지른 불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셈이다.

비정부기구인 ‘국제 지구빙하권 기후 이니셔티브(ICCI)’의 팸 피어슨 대표는 UNEP 홈페이지를 통해 “오래전부터 지속된 농민들의 습관을 바꾸려면 꾸준한 교육과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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