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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보통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다뤄진다. 이들의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대로라면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평균기온은 1.5도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대응책도 이미 나와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짜야 한다.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야 한다. 생활 전반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위기를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는 차고 넘치며, 대응책 역시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까.


기후위기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개개인이 일상의 불편과 변화를 감수해야만 달성 가능하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하거나 하지 못하는지, 어떨 때 죄책감이나 희망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과학자들의 경고만큼이나 중요하다. ‘모든 기후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반복적인 경고 속에서 사람들이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을 만났다. 어떤 직장인은 바다를 찾을 때마다 쌓여있는 쓰레기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바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본인이 일주일간 쓴 플라스틱 갯수를 세어본 뒤 충격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에 대한 조사를 한 10대 청소년도 있다. 어떤 잡지사 에디터들은 기후위기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독자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때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7)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기후위기 아카이브' 운영하는 서지연씨


트위터 스크롤을 내린다.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는 공룡 캐릭터가 보인다. 계정을 클릭하면 배경 사진으로 줄무늬가 알록달록 나온다. 왼쪽에는 푸른색 줄무늬가 많다가, 점차 푸른빛이 연해지더니 오른쪽으로 갈수록 붉은빛 줄무늬가 두드러진다. 영국 레딩대학교의 기후과학자인 에드 호킨스 교수가 개발한 ‘온난화 줄무늬’다. 이 줄무늬들 각각은 한 해의 평균 온도를 나타낸다. 190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기온을 1971년에서 2000년까지의 평년값과 비교해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띤다.

트위터에서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envsha)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 한수빈 기자

트위터에서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envsha)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 한수빈 기자

약 1만5000팔로어를 가진 트위터 계정 ‘기후위기 아카이브’(@envsha)의 모습이다. 에드 호킨스 교수는 지난해 9월 레딩대학교의 유튜브에서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는 단순하고, 화려한, 즉각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당신 지역의 줄무늬를 보여주고, 사람들과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기후위기 아카이브’는 국내외 기후위기와 관련한 재난, 행동, 연구 결과, 기사 등을 기록한다. 기록은 트윗을 타고 사람들에게 퍼진다. 업로드 기준은 “심장이 철렁하는” 소식이다. 팔로어의 연령대를 묻는 단순한 설문에서도 ‘1980년대-340PPM’ ‘1990년대-360PPM’ 등으로 당시 온실가스 농도를 함께 전달한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전하면서도 “무기력해지지 말고 계속 떠들자”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운영자 서지연씨(30·가명)를 지난달 1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릴 때부터 서씨는 동물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환경스페셜’을 챙겨봤다. 대학 때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2017년쯤부터 매년 불이 심하게 났다. 학생들 중에서도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서씨가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하게 된 건 호주에서 일어났던 산불 때문이었다. 코알라의 3분의 1이 죽고, 척추동물 30억마리가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 아프리카는 너무 습해져서 메뚜기 떼가 나타나고 기아가 심해졌다는 뉴스도 접했다. 서씨는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후위기를 모두가 봤으면 좋겠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게시물의 소재는 뉴욕타임스, 카본 브리프, 인디펜던트 등 외신 기사와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에서 주로 찾는다. 심각성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소식도 올린다. 서씨는 지난해부터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도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다고 느꼈다. 서씨는 “IPCC 6차 보고서가 뒤로 갈수록 주목을 못 받는 것 같아 착잡했다”며 “심각성만 보면 언론에 톱기사로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구석에 기사가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는 공룡 캐릭터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의 프로필 이미지다. 한수빈 기자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는 공룡 캐릭터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의 프로필 이미지다. 한수빈 기자

1~2주에 하나씩은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지만, 서씨가 바쁘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뜸하게 올리기도 한다. 서씨는 “최근에는 <대혼란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착잡해졌다. 사용하는 화석 연료, 온실가스 배출량과 소득 수준이 거의 정비례한다는데, 사람들의 욕심을 멈추게 하는 게 가능할지 우려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다가도 인도 폭염 뉴스 등을 보면 ‘이건 올리러 가야겠다’ 하며 다시 트위터를 켠다.

서씨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 운영을 그의 친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 있다. 그래서 친구와 밥을 먹다가 ‘기후위기 아카이브’에 올린 내용을 주변 친구가 이야기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서씨는 “최근에는 친구가 통가 화산 때문에 기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며 “일상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 하고, 평소에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주변에 많이 알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0.1t의 온실가스라도 줄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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