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유권자 등장, 이번 총선 기후정치의 성과”

2024.04.01 15:42 입력 2024.04.01 21:01 수정

유권자의 33%가 “기후 의제 중심 투표”

원내 정당 모두 주요 공약에 기후 반영

작년 가뭄 등 재난에 대응 체감 늘어

‘그린 워싱’ 소비 가능성에 경계심도

신진욱 중앙대 교수(왼쪽 첫번째),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가운데), 정진영 경남기후행동 사무국장이 3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기후정치와 기후유권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신진욱 중앙대 교수(왼쪽 첫번째),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가운데), 정진영 경남기후행동 사무국장이 3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기후정치와 기후유권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기후정치시민물결 공동 기획

올해 4·10 총선은 어느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든 한국 정치사에 기후정치가 발아한 선거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선거에서 보이지 않았던 기후유권자, 기후의제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세부 정책에 대한 정당들의 논쟁까지 이르지 못하고 기후 정책이 표피적으로 소비되거나,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인식하지만 실제 투표 양상은 기성 정치논리에 따라 나타나는 점 등은 아직 기후정치의 갈길이 멀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열린 좌담에 참석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진영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 등은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기후정치의 성과로 기후정치가 제도권 정치에 등장했다는 점과 기후유권자의 부상을 꼽았다. 다만 기후정치가 그린워싱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경계심을 표시했다.

이 소장은 민간의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그가 소장을 맡고 있는 녹색전환연구소 등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1만7000명 규모의 설문을 통해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기후유권자’의 비율이 33.5%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 교수는 기후의제와 환경운동, 녹색정치 등 사회운동에 대해 주로 연구해온 정치사회학자다. 정 사무국장은 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환경단체 활동가로, 이번 총선에서 활발한 유권자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권도현 기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권도현 기자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기후정치의 성과에 대해 말해달라.

이유진 소장(이하 이유진) : 2020년 선거와 달리 원내 정당 모두가 주요 공약에 기후를 반영한 것이 큰 변화라고 본다. 또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바람을 포함해 다양한 단체들이 기후정치 활동을 벌인 것도 주요한 성과이자 특징으로 여겨진다.

신진욱 교수(이하 신진욱) : 좌담 참석 전 국내 일간지의 기후·환경정책 보도 건수를 분석해 보니 2017~2018년을 분기점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그만큼 우리가 기후·환경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모든 정당이 기후정책을 포함시켰다는 것에서도 기후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 위상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진영 사무국장(이하 정진영) : 경남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매년 기후재난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기후 대응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이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남 함양의 경우 최근 태양광발전 관련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찾아가서 살펴보니 기후위기로 과일 농사가 잘 안 되니까 농민들이 농지를 태양광으로 바꿔보려고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민원을 넣은 것이었다.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낀 이들의 요구가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유진 : 농민들이 기후위기 피해를 가장 빠르게 겪고,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지난 1월 실시한 기후유권자 관련 설문에서도 전남 지역의 기후유권자 비율이 높았는데, 지난해 전남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전남 지역 60대 농민이 기후유권자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진영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 권도현 기자

정진영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 권도현 기자

-이번 총선은 기후유권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선거이기도 하다.

이유진 : 이전 선거 때는 기후유권자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용어가 등장해 정치 영역에서 발언권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보인다.

정진영 : 기후유권자가 국내 유권자 중에 33.5%나 된다는 설문 결과를 보고 무척 반가웠고, 유권자 운동을 해볼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투표가 다가오자 주변의 기후유권자라 할만한 분들도 기성 정치의 논리로 후보를 선택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고민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신진욱 : 기후유권자 설문 자료를 꼼꼼히 봤는데 기후문제 심각성 인식은 40~50대 여성이 제일 높고, 탄소중립정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집단은 30~50대 남성이었고, 탄소세 신설에 찬성하는 응답은 50~60대 남성이 높았다. 문항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인데, 설문이라는 소극적 입장 표명과 정치적 선택이라는 가장 능동적인 행위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와 제도적 영역에서 기후 의제를 중요시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 인식에 아직 스며들지 못했고, 비일관적 인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기후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이들조차도 투표에서는 기후를 (중요 의제의) 5순위로 꼽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 권도현 기자

신진욱 중앙대 교수. 권도현 기자

-각 정당들의 기후 공약은 깊이와 진정성 측면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신진욱 : 기후 문제에 대해 진정성이 없는 정당들까지 너도나도 기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기후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정당의 차별성이 유권자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기후가 정치적으로 소비만 되면서 이른바 그린워싱이 되는 것이다.

정진영 : 경남 지역의 한 후보는 21대 국회에서 기후특위 활동을 했던 인물인데도 공약에는 대규모 개발 사업을 넣은 사례도 있다. 경남지역 기후환경단체들이 이 후보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일단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응만 돌아왔고, 여전히 기후 대응에 역행하는 사업을 공약에 포함시켜놓고 있다.

신진욱 : 정당들마다 기후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법에 본질적 차이가 있음에도 아무런 논쟁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한계다. 기후 대응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는지, 녹색시장 활성화를 추구하는지와 탈원전을 추구하는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보는지 등에 대해 정당마다 의견이 다른데도 말이다. 유권자들이 기존에 기후위기에 대해 표피적으로만 인식해 왔다면 이번 총선에서 정치적 논쟁을 통해 인식이 심화되는 측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유진 : 여러 정당들이 모두 동의한 상설 기후특위 설치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후특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입법권, 예산 심의권 등 갖춘 강력한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실질적 권한이 없는 기후특위 만드는 데도 2년이 걸렸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왼쪽 첫번째),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가운데), 정진영 경남기후행동 사무국장이 3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기후정치와 기후유권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신진욱 중앙대 교수(왼쪽 첫번째),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가운데), 정진영 경남기후행동 사무국장이 3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기후정치와 기후유권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변화가 시작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정진영 : 지역에서도 기후보다는 개발공약을 내거는 후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진지하게 기후 공약을 내걸고 있는 후보들도 있다. 경남 지역에도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이나 탄소세 도입을 내걸고 있는 후보들이 있는데 이 중에는 당선권에 가까운 후보들도 있다. 하지만 기후유권자들이 33.5%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대변할 기후정치인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신진욱 : 한국 정치에서 기후 정치 흐름은 유럽 등에 비해 늦게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개도 느리게 갈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기후위기에 대해 한국인들의 문제의식이 큰 상황에서 이게 정치와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다보니 불안과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그게 계속 유예되면서 점점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밥솥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정치가 어떤 계기를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각 정당이 공약한 기후 관련 내용들이 공허한 약속이 될 수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약속한 내용들을 어떤 정당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국내 기후정치 확대의 의미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이유진 : 동의한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처럼 전환의 충격을 받는 당사자들을 대변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기후정치 확산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유권자들이 끊임없이 정치인들에게 기후에 대해 물음으로써 정치인들이 기후를 얘기하지 않으면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정진영 : 기후위기비상행동 등이 이번 총선 이후에도 이어가려고 하는 ‘기후씨앗 1.5%’가 바로 그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운동이다. 지구 기온 상승폭 제한 목표 1.5도라는 상징적 숫자만큼의 국내 유권자 66만명을 모아 정치인들에게 기후 대응 정책에 대해 묻고, 정책과제를 제안하고, 궁극적으로 기후정치를 실현할 정치세력화를 하려는 내용이다.

신진욱 : 정치의 변화는 다수의 행동과 여론 변화에 달려있다. 다수가 목소리를 내고, 여론조사 결과가 따라오면 표심을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은 생존을 위해 변하게 돼있다. 구체적 요구사항을 가지고 기후유권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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