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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2024.09.07 07:00 입력 2024.09.23 2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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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변희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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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2024년 여름 더위, 무척 길고 힘들었습니다. 많이 더우셨죠?

몸도 지쳤지만 이 더위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 더위로 훨씬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그런데 이런 것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도 힘에 부치는 여름이었습니다.

흔한 비유이지만 끓는 물 속 개구리가 딱 이런 신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번 점선면Deep 주제로 더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덥다고 늘어져만 있어선 안 될 테니까요!


[뉴스레터 점선면] 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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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폭염이 쓴 기록들

· 2024년 한국의 여름은 1994년, 2018년에 이어 ‘역대급 폭염’이 있던 여름입니다.

· 열대야 기록이 곳곳에서 새로 쓰였습니다. 제주에서는 무려 47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고, 서울도 34일 동안 열대야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픽=변희슬 기자

그래픽=변희슬 기자

· 8월 전국 평균기온은 28.0도로 전국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8월 전국 평균 최고·최저기온도 역대 1위입니다.

· 올해 무더위는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이중으로 뒤덮으면서 유독 강했습니다. 고온 건조한 티베트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하면 한반도에 더위가 심해집니다. 2018년에도 두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면서 폭염이 발생했습니다.

· 이번 무더위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스런 예측이 나옵니다. 폭염의 뒤에는 기후변화가 있습니다. 여름 생활이 지속 불가능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여름은 역대급으로 무더웠습니다. 기후변화로 폭염이 더 심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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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죽는다

‘얼어죽는다’는 건 익숙합니다. ‘더워서 죽는다’는 건 아직 그만큼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로 더워서 죽을 수 있고, 앞으로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은 점점 자주 벌어질 겁니다.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어느 순간 몸에서 혈관 확장이나 땀흘리기 등으로 배출할 수 있는 열보다 발생하는 열이 더 많아집니다. 몸을 식히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거죠. 체온이 오르면서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거나 두통·무력감 등을 느끼게 됩니다. 체온이 더 오르면 세포가 파괴되고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에 변형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근육·장기 등 신체 곳곳이 손상되고, 돌이킬 수 없어지면 사망에 이릅니다.

지난 6월 20일 열화상 카메라로 바라본 서울 도심. 조태형 기자

지난 6월 20일 열화상 카메라로 바라본 서울 도심. 조태형 기자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이 정말 무서운 건 더위로 사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더워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따가 물 좀 마시면 되겠지” “여기까지만 하고 그늘로 갈까?” 생각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일기예보가 열사병 위험을 경고해도 어르신들이 밭일에 나가고, 전기를 아낀다고 에어컨을 틀지 않다가 돌아가시는 일이 벌어집니다.

더위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지난 8월 15일에는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에어컨 설치 일을 하던 20대 남성이 열사병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습니다. 같은 달 2일에는 경북 포항시의 한 골프장에서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동물도 무수히 죽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여름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이 100만마리가 넘어요. 8월 31일 기준 117만8000마리 가축이 죽었습니다. 특히 이중 가금류 피해는 110만4000마리에 달합니다. 그야말로 ‘닭장’ 같은 환경에서 살다 익어 죽은 겁니다. 더위는 수온도 끌어올리죠. 더워진 물은 산소를 품지 못해 내뱉어 버리고, 수생식물은 죽음에 이릅니다. 충남 태안에서 우럭 양식장을 운영하는 어민은 3년간 애지중지 키운 우럭이 모두 죽었다며 폐업을 고민합니다. 양식장 피해는 2949만9000마리에 이릅니다. 3000만마리라니요.

더워서, 죽지만

더워서 사람이 죽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 통계는 어떻게 집계되고 있는 걸까요? 숫자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여름철 온열질환 관련 통계를 날마다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통계는 전국의 응급실에서 열사병 사망이 발생한 경우 이를 신고한 숫자를 토대로 집계됩니다. 응급실에서 ‘직접 사인’이 온열질환으로 밝혀지고 이게 신고까지 이뤄지면 포함되는 숫자라는 거죠.

서울 성동구 서울숲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는 노인들. 이준헌 기자

서울 성동구 서울숲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는 노인들. 이준헌 기자

2024년 전까지 최악의 여름이던 2018년 질병관리청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집계한 온열질환자 수는 4526명, 사망자는 48명입니다. 올해 숫자를 볼까요? 8월 31일 기준 온열질환자는 3281명, 이중 사망자는 30명이네요.

조금 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2018년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사망원인코드 T670(열사병 및 일사병)부터 T671(열실신), T672(열경련) 등 온열질환 관련 코드로 집계한 총 사망자가 170명으로 나옵니다. 48명과는 큰 차이가 있죠. 2022년에도 이 차이는 9명(질병청), 42명(통계청)으로 큽니다. 이마저도 폭염이 기저질환을 악화시킨 경우 등 간접적 영향을 준 경우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날 겁니다. 폭염 사망자가 정부 통계보다 20배 더 많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어요.

모든 정부가 온열질환 통계를 우리처럼 내지는 않습니다. 폭염 기간에 평소 대비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면 그 값을 모두 ‘무더위로 인한 사망’으로 집계하는 곳도 있습니다. 유럽이 이 방식을 따릅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2023년 유럽에서 더위로 사망한 사람은 4만7000명입니다. 2003년 무지막지한 폭염 피해를 본 프랑스는 무더위로 1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숫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폭염의 상상력

폭염이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비행기 난기류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5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향하던 항공기가 난기류에 휘말리면서 승객 1명이 숨진 사고, 난기류로 아수라장이 된 대한항공 항공기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항공에서 ‘기내 컵라면’ 서비스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난기류로 비상 착륙한 싱가포르항공 항공기 내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난기류로 비상 착륙한 싱가포르항공 항공기 내부. 로이터연합뉴스

난기류도 더워진 기후와 관련이 있습니다.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면서 난기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난기류는 2019년 같은 시기에 비해 80% 가까이 증가했고, 난기류 사고도 61%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낙뢰와 용오름(토네이도) 같은 기상현상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대기가 불안정해지면 더 자주 일어납니다. 지난 8월 5일, 저녁 퇴근 후 집에서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현란한 번개를 보고 신기해 했는데요. 같은 날 경기 양평에는 2500번이 넘는 낙뢰가 내리쳤고, 광주에서는 같은 날 30대 남성이 낙뢰를 맞고 의식 불명에 빠졌습니다. 7월 16일에는 전남에서 하루에만 4500차례 벼락이 쳤고요. 어쩌면 토네이도도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2014년에는 경기 고양시에서, 2019년에는 충남 당진에서 용오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혔어요.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잠재적 재난 위험요소로 용오름을 꼽기도 했습니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창궐할 위험도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올해 출간된 <폭염 살인>은 향후 수십년 안에 서로 다른 종 사이 바이러스 전파가 1만5000회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1만5000회 중 코로나19보다 전염력도 치사율도 높은 바이러스가 한 건도 없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폭염으로 사람이 죽고, 가축이 폐사합니다. 현재의 온열질환 통계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한편 무더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위험까지 불러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뉴스레터 점선면] 우리가 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도시가 위험하다

현대의 도시는 무더위에 여러 가지로 취약합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소재들이 모조리 그렇습니다.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 도로, 보도블록까지 모두 열을 머금었다가 복사하는 것들입니다. 콘크리트 소재 건물은 한낮의 열에 달궈지면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도저히 생활이 어렵죠. 도시 건물 대부분은 통풍이나 환기와는 거리가 먼 구조이고, 햇볕을 그대로 흡수하는 어두운 색의 외관을 한 건물도 많습니다. 여기에 차량 엔진에서 나오는 열, 에어컨 실외기가 뿜어내는 열기가 더해져 한여름 도시는 거대한 ‘열섬’이 됩니다. 특히 서울은 전 세계 20개 주요 도시 중 폭염일수 증가율이 7360%로 가장 급격하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습니다.

지난 8월 19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서울 시내 건물의 한 외벽.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8월 19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서울 시내 건물의 한 외벽. 연합뉴스

이런 도시에서는 한데 모여 에어컨을 틀어대는 것이 더위에 대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전력 사용량이 점점 아슬아슬해집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에어컨 사용량도 급증했기 때문이죠. 7~8월 월평균 최대전력은 확실히 증가 추세입니다. 올해는 2018년보다도 사용량이 늘어서 전력 수요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정전이 걱정입니다. 실제로 변압기 설비가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해마다 여름철 정전 소식이 들려와요. 전력 수요가 아파트를 지었을 때 예상한 정도를 훌쩍 뛰어넘거든요. 송·배전망이 늘어나는 전기 사용량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요? 폭염의 한가운데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래픽=변희슬 기자

그래픽=변희슬 기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경우 노인 요양시설 같은 곳에서는 정전이 한나절만 이어저도 인명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틀지 못하는 에너지 취약 가구, 독거 가구도 위험군이고요. 에어컨 외에 별다른 더위 대응 시스템이 없는 도시는 펄펄 끓어오를 거예요.

201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전기요금 51달러를 체납한 한 70대 독거 여성이 열사병으로 숨진 채 발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기회사가 40도 넘는 폭염의 한가운데 전기를 끊은 거죠. ‘세 모녀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건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폭염이 지나가고 전기요금을 올릴 거라고 합니다. 에너지 취약 가구들은 더욱 혹독해질 여름을 어떻게 나야 하는 걸까요?

40도 넘는 폭염이 발생하곤 하는 미국에서는 철도·교량·파이프 같은 도시 인프라가 당장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먼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열을 더 잘 견디는 소재를 개발해서 건물 외장재와 도로·선로를 바꾸고, 폭우에 대비해 건물과 도로를 높여 지어서 기후변화에 더 잘 대응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논의도 꾸준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도시가 적응하는 것보다 기후변화가 더 빠르게 덮쳐올 수도 있습니다.

폭염도, 불평등

폭염은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불평등합니다.

책 <폭염 사회>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1995년 시카고 폭염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고 밝힙니다.

지난 8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주민이 집밖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8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주민이 집밖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열사병이 특정 직업, 특정 연령대, 특정 장소에 몰려 있다는 것이 눈여겨야 할 지점입니다

서울의 지역별 폭염 취약도를 나타내는 ‘폭염 불평등 점수’는 강남에서 낮았고 강북·도봉·중랑 지역에서 높았습니다. 정부는 폭염 시 외출을 자제하라고 알리지만 집안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는 ‘폭염 취약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노인·저소득층·장애인일수록 많습니다. 열사병은 분명 ‘불평등’합니다.

경향신문이 2020년 보도한 ‘기후변화의 증인들’ 시리즈는 건설노동자·배달노동자·쪽방 주민·가스검침원 등 폭염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한여름에 숨이 차거나 현기증·메스꺼움 증상을 느낀다고 입을 모읍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연보에 따르면 2023년 온열질환 발생의 특징은 ‘50대·남성·단순노무종사자’입니다. 이효상 기자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맡겨지는 ‘위험의 외주화’가 폭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일용직일 경우 폭염 시 행동요령에 익숙지 않은 ‘신입’이 위험해요.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숨진 20대 양준혁씨도 일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SHA)은 온열질환 대책으로 ‘신입 노동자 보호’를 제시합니다.

물을 길어 집으로 향하는 파키스탄 여성. EPA연합뉴스

물을 길어 집으로 향하는 파키스탄 여성. EPA연합뉴스

국제적으로도 폭염은 불평등합니다. 파키스탄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0.5%를 내뿜을 뿐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최고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폭염이 기승을 부립니다.

한국은 기후위기를 수출하는 명백한 가해국입니다. 세계 10위권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에요. 지난해 세계 기후행동네트워크는 기후변화 대처에 소극적인 국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오늘의 화석상’을 한국에 안겼습니다. 기후 악당국임을 자각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계획보다 낮췄고,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는 데도 소극적입니다. 2023년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으로, 67개국 중 64위로 나타났습니다.

막막해도, 기본

솔직히 막막합니다. 점선면 독자님 중에도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무더위의 위력을 체감하고 나면 다소 무력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럴수록 ‘기본’인가 봅니다. 언급했다시피 우리의 도시는 폭염에 속수무책입니다. 도시를 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나무심기에 나선 도시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프랑스 파리는 2026년까지 17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도심 녹지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같은 유수의 도시들도 나무 심기에 열심이고요. 싱가포르는 가로수뿐 아니라 건물 옥상·벽면에도 식물을 심습니다.

2021년 8월 3일 오후 서울숲에서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서울숲과 가까이 붙어있는 고층 건물의 온도가 37.4도를 기록하는 동안 서울숲 내부의 온도는 28.8도를 나타냈다. 산림청 제공.

2021년 8월 3일 오후 서울숲에서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서울숲과 가까이 붙어있는 고층 건물의 온도가 37.4도를 기록하는 동안 서울숲 내부의 온도는 28.8도를 나타냈다. 산림청 제공.

한여름 서울 성동구 서웊숲에서 잰 온도는 인접 도심지 온도와 최대 14도까지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산림청은 도시숲이 도심 열섬 완화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밝혔고, 서울시도 녹지와 벽면·옥상정원이 열 저감에 그늘막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낸 적이 있습니다. 너무 기초적이고 단순한가요?

그런데 기본적인 얘기가 아직도 필요한 듯합니다. 폭염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지난 8월 8일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걸 보면 말이죠. 이명박 정부 이후 12년 만의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입니다. 정부 발표 후 오세훈 서울시장도 그린벨트 해제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피치 못할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907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8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기후정의행진 선포식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907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8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기후정의행진 선포식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무엇보다 ‘탈탄소’가 기본입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열을 붙잡아둔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856년입니다. 그로부터 1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인류는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3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어요.

간혹가다 기후변화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보입니다. 도시를 열에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소재를 개발하고, 대기의 탄소를 포집해서 깊은 땅속에 묻어두고, 공기중에 특정 입자를 살포해서 햇빛을 난반사시키고 결과적으로 온도 상승을 막겠다는 기술 구상 같은 것들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참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기술이 아직 불확실한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가 지구의 온도를 되돌리기 위해 찾아야 하는 기본을 잊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는 9월 7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릴 기후정의행진은 이런 면에서 의미심장합니다. 김은정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대량생산과 소비는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라며 “강남은 이런 것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기본’을 지향합니다. 기술로 기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유혹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 기후를 치유하자는 다짐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탈탄소는 지구를 걱정하는 개인들의 실천만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정책이, 기업이 바뀌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29일 내린 결정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헌재는 현재의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습니다. 법이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을 정해놨는데, 이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미흡하게 세운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의 부담을 가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하고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

“(현재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결정은 국민 주요 기본권이 환경권임을 확인한 것”

(헌법재판소,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 중)


결국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책임을 다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예요.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로 이 같은 법원 결정이 나왔습니다. 첫 소송 제기 후 4년 5개월 만에 나온 의미 있는 결정입니다.

전향적인 결정문을 받아들게 된 만큼 정부·기업이 기후변화 대응에 확실한 책임을 지게 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이 결정을 반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1년 6개월 남았습니다. 함께 지켜봐 주실 거죠?

폭염에서 현대의 도시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 폭염은 불평등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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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역대급으로 무더웠습니다. 기후변화로 폭염이 더 심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폭염으로 사람이 죽고, 가축이 폐사합니다. 현재의 온열질환 통계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한편 무더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위험까지 불러옵니다.

폭염에서 현대의 도시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 폭염은 불평등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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