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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기우는 일본…‘돈 때문이야’

2020.11.01 21:16 입력 2020.11.01 21:21 수정

자료 출처 :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자료 출처 :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처리비용에 370억원…곧 결정
재정화 한계…효과 신뢰 못해
대기 방출, 10배 넘는 3770억원

방류 땐 반년 만에 제주 바다로
1년 반 뒤에는 동해까지 퍼져
“일본, 돈 들여 다른 안 찾아야”

일본 정부가 조만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오염수 처리 방향을 결정한다. 당초 지난달 27일 결정하려던 일정이 이달 이후로 미뤄졌지만 결국 ‘바다 방류’로 가닥이 잡힐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족한 정화 기술과 오염수를 낮은 비용으로 처리하려는 의도가 겹쳐진 결과다. 일본이 방사능 재앙을 유발한 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염수 27%만 기준치 충족

후쿠시마 원전에선 핵연료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와 주변에서 흘러든 빗물·지하수가 합쳐지면서 하루 160~170t의 방사능 오염수가 생긴다. 일본은 오염수를 정화해 원전 주변의 탱크에 담아 놓는다. 현재 총저장량은 123만t이다. 오염수는 62종의 방사성물질을 정화하도록 설계된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치며 독성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ALPS의 부족한 능력이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ALPS를 거친 오염수의 27%만 방사능 기준을 충족했다. 전체 오염수의 34%가 기준치의 1~5배이고, 5~10배(19%), 10~100배(15%) 수준도 많았다. 기준치의 100~1만9900배에 달하는 초고농도 오염수 비율도 6%에 달했다.

오염수에 섞인 물질 가운데 특히 위험한 것이 있다. ‘스트론튬’이 대표적이다. 뼈에 축적되며 백혈병을 유발하는 독성 방사성물질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후쿠시만 원전 오염수에 든 스트론튬의 평균 농도는 기준치의 111배, 최댓값은 1만4433배였다.

재정화한다지만 ‘허점’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ALPS에 두 번 이상 통과시키는 ‘재정화’를 해 오염 농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시범적으로 진행한 재정화에서 도쿄전력이 방사능 기준치의 2200배에 달하는 오염수 1000t을 기준치 이하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이 발표를 신뢰한다 해도 재정화에는 본질적인 구멍이 있다. 지난 8월 방사성물질인 ‘탄소14’가 오염수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ALPS는 애초 탄소14를 거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재정화를 아무리 해도 탄소14는 전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지난달 발간된 그린피스 보고서에서 프랑스 원자력안전방사선방호연구소(IRSN)는 탄소14에 대해 “DNA에 유입돼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는 아예 정화 대상도 아니다. 물과 결합돼 기술적으로 제거가 어렵다는 게 이유다. 일본의 삼중수소 배출 기준치는 ℓ당 6만㏃(베크렐)인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10배에 가까운 평균 58만㏃이다. 일본은 삼중수소를 물에 희석해 버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희석해도 배출 총량은 변함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바다 방류가 현실화하면 한국은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가 방사성물질인 ‘세슘137’을 기준으로 오염수 방류 시 확산 상황을 예상해 만든 시뮬레이션을 보면 방류가 시작되고 7개월 뒤엔 오염수가 제주도 근해, 1년 반 뒤엔 동해 대부분에 파고든다. 해류 영향으로 태평양 다른 구역보다 비교적 낮았던 오염 농도도 시간이 갈수록 높아진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지난달 국감에서 김상희 국회부의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방류 조건에 따라 한 달 안에도 방사성물질이 제주도와 서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유는 ‘비용 절감’

일본이 바다 방류로 기우는 건 처리 비용이 낮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계와 환경단체의 시각이다. 일본 ALPS소위원회에 따르면 바다 방류에는 34억엔(370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대기 방출’에는 10배가 넘는 349억엔(3770억원)이 필요하다. ‘지층 주입’ 등 다른 모든 방식과 비교해도 바다 방류가 싸다.

일본 정부가 정화 기술이 없다며 희석해 버리겠다고 한 삼중수소도 돈 쓰려는 의지가 있다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쿠시마 사고 뒤 미국 기업 큐리온은 삼중수소를 대부분 제거하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장비 설치에 10억달러(1조1300억원), 연간 운영비로 1억달러(1130억원)가 예상됐다. 이에 대해 2016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 적용할 만한 삼중수소 제거 기술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환경단체에선 이 결정이 기술적인 관점보다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내려진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린피스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것이 원전 운영으로 인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믿을 만한 삼중수소 정화 기술이 정말 없더라도 길은 있었다. 삼중수소는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12.5년으로 비교적 짧다. 별 처리 없이 탱크에 오래 보관만 해도 독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량을 137만t 이상 늘리지 않을 방침이기 때문에 2022년 여름이면 모든 탱크가 꽉 찬다. 탱크를 더 지을 공간이 없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일본경제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오염수 저장에는 연간 1000억엔(1조8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한병섭 한국원자력안전방재연구소 이사는 “돈을 들이면 대응을 모색할 수 있는데, 방류로 해결하려는 건 문제가 크다”며 “일본은 도덕적 책무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탱크를 더 설치하지 않는 이유가 ‘원전 관리 실패’라는 후쿠시마의 상징성이 강화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원전 주변에 탱크를 지을 땅이 있는 데다 공학적으로 오염수 저장에 문제가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한국, 일본에 협조 구할 게 아니라 국제법으로 대응해야”

수산물 수입 금지 WTO서 승소
국제해양재판소 가면 힘 실릴 것
한·일 시민사회 연대 필요성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이면서 한국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단체는 한국이 일본에 ‘협조’를 구할 게 아니라 국제해양재판소를 통해 강력한 국제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업단체 등을 중심으로 양국 시민사회가 연대해 방사성 물질 방류로 인한 수산물 오염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바다 방류를 향한 일본의 완강한 태도를 감안하면 이번 문제를 국제해양재판소로 가져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제해양재판소에 ‘잠정조치’, 즉 가처분을 신청하자는 것이다. 국제해양재판소는 선박 압류나 배타적경제수역(EEZ) 분규 등 해양 문제와 관련한 법적 사건에서 판결을 내린다.

그린피스는 오염수 방류를 막아달라는 잠정조치가 받아들여질 유리한 정황이 한국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2013년부터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조치가 정당하다며 지난해 4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승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승소 결정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비롯된 오염 사태에 뿌리를 두는 만큼 국제해양재판소에서 한국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거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교부는 오염수 방류 계획은 일본의 주권적 결정사항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투명한 정보 공개 요구에 집중하겠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오염수 방류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해양재판소를 활용하면 적극적으로 쓸 만한 카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국제해양재판소에 제기할 잠정조치 안에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질 때까지 한국이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원전 오염수 안의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연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예를 들어 양국 어업단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압박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지렛대 삼아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일본 정부는 자국산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해 매우 예민한 태도를 보인다”며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버린다면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와 같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수산물 수입금지 범위를 확대하면 오염수 방류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도 높일 수 있다.

일본의 태도는 아직도 ‘무엇이 문제냐’는 식이다. 지난달 21일 노가미 고타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 농업장관 회의에서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 철회를 주장했다.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한국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다. 바다 방류 결정을 전후한 한·일 간의 대립 수위는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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