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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1t당 세금 4만원 매겨야 2030년 감축 목표 달성”

2022.09.04 21:18

정부 ‘탄소세·배출권거래제’ 연구 첫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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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세 없을 때보다 약 1억t 감소
산업 부문은 6만원 이상 부과해야
산업용 전력·재생에너지 가격 역전

7억2760만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 이하 t으로 표기) 중 5억3000만t. 한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기준이 되는 2018년 온실가스 총 배출량 중 전환(발전)·산업 부문이 차지하는 양이다. 한국이 지난해 유엔에 제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서 전환 부문 감축량은 약 1억2000만t, 산업 부문은 약 3800만t으로 합치면 1억6000만t가량이 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을 발표하면서 전환 부문에는 “탄소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산업 부문에는 “배출권거래제 등 시장 주도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유도”를 제안했다. 탄소에 가격을 매겨 전환,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 ‘탄소가격 부과체계 개편방안 연구’를 보면 탄소가격이 t당 4만원이 되면 전환 부문에서만 2020년 대비 1억t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산업 부문에선 탄소가격이 t당 6만원 이상이어야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었다.

■ 3만원 이상 탄소가격 부과하면

연구진은 탄소가격을 t당 5000원부터 8만원까지 다양하게 설정한 뒤 각각의 온실가스 절감 효과를 추산했다. 5000~2만원까지는 5000원 간격으로 4구간(시나리오 1~4)을 설정했고, 4만~8만원까지는 2만원 간격으로 3구간(시나리오 5~7)을 설정했다.

탄소에 t당 5000~2만원 수준의 가격을 부과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 제9차 전력기본수급계획의 기준 시나리오(BAU)를 보면 2030년 전환 부문에서 배출될 것으로 추정된 온실가스는 약 2억200만t이다. 여기서 시나리오1, 즉 탄소가격이 t당 5000원이 되면 온실가스 100만t이 줄어든다. 탄소가격이 2만원 수준에 들어서도 감축되는 온실가스는 1000만t으로 그리 많지 않다.

탄소가격을 t당 4만원으로 적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대폭 감소했다. 탄소가격을 부과하지 않을 때에 비해 약 1억t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만원을 부과하면 1억2400만t을 감축할 수 있었다. 탄소가격이 t당 2만원에서 4만원으로 늘어날 때의 온실가스 감축폭이 가장 크고, 6만원을 넘어가게 되면 추가 감축폭은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2030년 NDC에 따른 전환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치 1억4990만t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가격이 t당 3만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탄소가격이 t당 2만원일 때는 전환 부문에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1억9200만t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가격이 4만원일 때는 1억3700만t으로 목표치를 달성했다.

다만, 탄소가격 부과는 전기요금 인상을 부를 수밖에 없다. 2030년 기준 시나리오1~4의 전기요금 인상률은 1.4~8.6% 수준인데, 시나리오5~7에서는 전기요금 인상률이 가파르게 증가해 15.1~217.4% 수준이었다. 2030년 NDC를 달성할 수 있도록 탄소가격을 매기면 전기요금이 최소 10%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 산업 부문 탄소가격 6만원 이상 매겨야

산업 부문 온실가스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전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두 집계한다. 이를테면 철강을 생산할 때는 석탄을 연료로 써 열을 얻고, 석유화학·정유 등에서는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전력은 조금 다르다.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력을 써서 배출한 온실가스는 전환 부문으로 집계된다.

산업 부문에서는 t당 6만원 이상의 탄소가격이 부과돼야 2030년 NDC를 달성할 수 있었다. 탄소에 t당 4만원까지만 가격을 부과하면 화석연료의 수요가 줄었다. 그러나 비화석연료와 화석연료의 가격이 역전될 수준은 되지 않았다. 탄소가격이 t당 6만원이 되면 산업용 전력 가격이 재생에너지의 가격을 넘어서게 되고 t당 8만원이 되면 무연탄과 재생에너지의 가격도 역전된다.

산업 부문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비중이 고정됐다고 가정하고 탄소가격이 부과되는 상황을 따져봤을 때, 산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은 2018년과 비교해 최대 24.2%까지 줄었다. 2030년까지 탄소에 t당 5000원을 부과했을 때 2018년 대비 2.4% 감축이 가능했고 2만원까지 올리면 7.3%로 감축량이 늘어났다. t당 6만원이면 산업 부문 2030 NDC가 달성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1206만t으로 2018년 대비 18.6% 감소했다.

발전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면 산업 부문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탄소가격을 t당 4만원으로만 책정해도 산업 부문 2030 NDC 달성이 가능해진다. 연구진은 “산업 부문의 저탄소화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에너지원 구성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다만 탄소가격 부과와 함께 산업계의 공정 혁신, 생산성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생산량 감소가 따라올 수도 있다. 연구진은 독점력 없는 기업이 탄소가격의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수준 정도를 가정했을 때 탄소가격 6만원이 부과될 때 기업의 생산량은 약 17.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경우에도 생산량은 14.3% 감소한다.

산업계 공정·생산성 개선 않으면
전환 따른 생산량 감소 발생할 수도
수송 부문선 탄소세 효과 제한적
수소·전기차로 바꾸는 게 더 빨라

■ 내연기관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글쎄’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수송 부문의 2050년 배출량은 A안 280만t, B안 920만t으로 2018년(9810만t) 대비 90.6~97.1% 감축 목표를 정했다. 이를 위해 2050년에 친환경차를 최대 2706만대까지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연구진은 각각의 시나리오에 2022~2029년까지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인 5만5401원의 10%, 2030~2039년에는 3분의 1, 2040~2049년에는 3분의 2, 2050년 이후는 100%로 세율을 높여갈 때의 영향을 분석했다.

내연기관 차량이 계속 운용되는 것을 가정한다면 수송 부문에서 탄소세 도입에 따른 온실가스 추가 감축은 크지 않았다. 수송 부문의 경우 기름값보다는 차량이라는 큰 설비의 가격에 더 영향을 많이 받아, 장기 가격 탄력성이 낮다. 2050년까지 2018년 대비 달라지는 탄소세 부과율에 따른 누적 변화율은 휘발유가 2.1% 감소하고, 경유는 7.7%, 액화석유가스(LPG)는 4.4%에 불과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내연기관 차량을 전기·수소차로 전환하는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A안은 2050년까지 무공해차를 97%, B안은 85% 이상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2050년에는 2018년 대비 A안에서 96.5%, B안에서는 82.4%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탄소세 부과로 인한 수송용 연료가격 상승, 그로 인한 유류소비량 감소로 나온 온실가스 추가 저감량을 반영할 경우, 그 효과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배출권거래제, 유상 할당 10%
기업 할당 비중 높여야 탄소세 효과

■ 탄소세 힘들면 배출권거래제 강화해야

연구진은 전환·산업 부문에서는 2015년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정부는 해당 기업들에 전체 배출권 중 10%만을 유상 할당하고 있다. 지난 30일 기준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은 t당 약 2만7000원 수준이지만, 실질적으로 배출권을 할당받을 때 기업이 지불하는 비용은 이 10%인 2700원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 때문에 보고서는 현재 수준의 유상 할당 비율을 유지한다면 배출권 가격이 t당 17만8000원 수준은 돼야 석탄발전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배출권거래제로는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유상 할당 비중을 강화하면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는 사실상 거의 동등한 정책효과를 낸다”며 “탄소 비용을 제대로 반영해 연료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의 유상 할당 비중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내 기업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줄 필요는 있다. 보고서는 일정 기간 이후에는 세율 비용이 크게 상향 조정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세율예고제’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연구는 “과세 대상 범위 확대와 세율 상향 조정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세율예고제 등을 통해 탄소가격을 강력히 보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기후단체 플랜1.5의 윤세종 변호사는 “탄소국경조정제가 도입된다면 기존처럼 산업계의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배출권거래제에서 무상 할당을 높게 유지할 의미가 없다”며 “배출권거래제의 유상 할당 비중을 강화하는 게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도 오히려 도움이 된다. 기업도 배출권 유상 할당이 단기적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정부가 2030년 NDC 목표를 지키려면 탄소가격을 반영하지 않으면 어려울 수 있다”며 “배출권거래제 총량을 엄격히 관리하고 유상 할당을 늘리며, 부문별로 탄소세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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