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단독 

작은 실천이 모이고 모여···축구장 5개 넓이 숲이 됐다

2023.02.13 15:23 입력 2023.02.13 17:06 수정

서울 중구 알맹상점을 지난해 4월 찾은 김영주씨(37)가 가정에서 사용한 잼통을 씻은 후 가져와 바디워시를 리필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중구 알맹상점을 지난해 4월 찾은 김영주씨(37)가 가정에서 사용한 잼통을 씻은 후 가져와 바디워시를 리필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유나씨(22)는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6호선 망원역까지 한 시간쯤 지하철을 탔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을 가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알맹상점에 도착하자 챙겨 온 용기에 샴푸를 담았다. 이씨는 “간혹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했었는데, 자취를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연구소에서 일하는 차주현씨(34)도 알맹상점을 찾았다. 차씨는 연구소에서 일회용품을 많이 쓰니, 뭐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기 위해 상점을 찾는다고 했다.

박지현씨(23)는 “왜 쓸데없는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가족들의 투정에도, 병뚜껑까지 따로 모아 알맹상점으로 왔다. 박씨는 “주변에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집에서 택배를 시키며 쓰레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지지 않고 실천하다 보니 구매도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제가끔 서 있는 나무’였다. 그리고 이 나무들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숲이 되었다. 제로웨이스트숍에서는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포장재가 없는 제품을 ‘리필’하는 것이 원칙이다. 재활용이 잘 안 되는 물품도 모아서 재활용하고, 순환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물품도 판다.

13일 전국 제로웨이스트숍 연합모임 ‘도모도모’가 지난해 제로웨이스트숍 43곳의 ‘리필’ 판매, ‘재활용품 수거’ 실적을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 활동만으로도 축구장 5개 넓이를 넘는 소나무 숲을 조성한 효과가 일어났다.

박지현씨(23)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박지현씨(23)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매장 43곳, 한 땀 한 땀 모아보니

‘도모도모’는 지난해 각 매장에서 세제, 화장품, 먹거리 등을 ‘리필(용기 재사용)’하면서 줄인 쓰레기양을 온실가스 감축량으로 환산했다.

제로웨이스트숍 43곳에서 리필 판매로 플라스틱병 23만3605병(100㎖ 기준)이 줄었다. 100㎖ 용기의 무게가 18g이고, 페트병 1㎏당 생산부터 폐기까지 방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6.865㎏CO2eq(탄소환산킬로그램)이라는 연구를 근거로 계산하면, 줄어든 온실가스는 총 28.8tCO2eq(탄소환산톤)이었다.

주로 ‘페트병 뚜껑’이 대상인 ‘자원 순환 품목 수거’로는 총 17.7t의 ‘소각 될’ 쓰레기가 줄었다. 도시 고형 폐기물 1t을 소각할 때 0.7~1.2t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로 인해 줄어드는 온실가스는 12.39t~21.24t 정도다.

전국 43곳의 제로웨이스트숍에서 리필, 자원 순환을 통해 줄인 온실가스의 양은 총 41.2~50.04t이었다. 2019년 국립산림과학원의 ‘주요 산림수종 표준 탄소흡수량’을 기준으로 하면 30년생 소나무 숲은 1ha 당 매년 11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한 시민들이 함께 줄인 온실가스양이 ‘축구장’(0.71ha) 규모 숲 5.25개~6.40개를 조성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제로웨이스트숍 한 곳에서 1년 동안 줄인 쓰레기양은 10ℓ 들이 쓰레기봉투 기준 평균 212봉지, 줄인 온실가스는 약 1.1t이었다. 제로웨이스트숍이 생활용품 판매점인 다이소처럼 전국에 약 1400여개가 생긴다면 현재 수준의 리필 판매, 자원 순환 활동만으로도 연간 약 1540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축구장 규모 숲 196개와 맞먹는 효과다.

알맹상점이 설치했던 다회용기 사용 커피차. 이소영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알맹상점이 설치했던 다회용기 사용 커피차. 이소영 기자

“한 명의 ‘제로웨이스터’보다 100명의 ‘레스 웨이스터’가 낫다”

지난 7일 알맹상점을 찾았던 시민들에게 이런 계산 결과를 알려주니 ‘뿌듯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차주현씨는 “막연히 실천하는 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알지 못했다”며 “정확한 수치를 들으니 숲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체감이 된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하은 알맹상점 캠페이너는 “전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하면 미미한 양으로 보일 수 있지만, 리필과 자원순환 외에도 제로웨이스트숍에서는 포장재 자체를 줄이고, 안 쓰는 물건을 나눔하기도 한다”며 “개인들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한 명의 완벽한 ‘제로웨이스터’보다 100명의 ‘레스 웨이스터(쓰레기 덜 버리는 사람)’가 낫다”고 말했다.

‘제가끔 서 있는 나무’란 표현은 정희성 시인의 ‘숲’에서 빌려 왔습니다.
숲-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