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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열린 식당·거실…아이부터 청년·노인들까지 ‘식구’가 되는 집

2016.12.09 20:47 입력 2016.12.09 20:53 수정

일본 컬렉티브하우스

일본의 컬렉티브하우스 현황 자료 : NPO 컬렉티브하우징사

<b>(왼쪽 위)</b>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모토소자 코몬스’의 전경. 군마현 주택공급공사 제공 <b>(왼쪽 아래)</b>일본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스가모 플랫’의 공용공간에서 거주자들이 정례 회의를 열고 있다. <b>(가운데)</b> 일본 도쿄 다마시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세이세키’에서 거주자들이 공동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b>(오른쪽)</b> 일본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스가모 플랫’에서 거주자들이 조경 작업을 하고 있다. NPO 컬렉티브하우징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왼쪽 위)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모토소자 코몬스’의 전경. 군마현 주택공급공사 제공 (왼쪽 아래)일본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스가모 플랫’의 공용공간에서 거주자들이 정례 회의를 열고 있다. (가운데) 일본 도쿄 다마시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세이세키’에서 거주자들이 공동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 일본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스가모 플랫’에서 거주자들이 조경 작업을 하고 있다. NPO 컬렉티브하우징 제공

‘따로’ 또 ‘같이’ 사는 주택이 있다. 여느 다세대주택들처럼 건물 하나에 10~20가구가 각자의 집을 갖지만 거주자들이 공동사용하는 공간이 있고, 공동체 생활도 하는 집이다.

혼자 사는 경우도 있고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도 있다. 자식들은 독립하고 노부부만 살기도 한다. 가족의 구성, 삶의 방식은 각각이지만 이 주택 거주자들은 누구나 공용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된다. 식당이 아니더라도 건물 내 곳곳에 마련된 공용공간들은 이웃과 어울려 생활하는 장소가 된다. 공동응접실에 나와 개인적인 업무를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놀이터처럼 동네 친구들과 놀이를 한다.

하나의 주택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며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는 이런 ‘컬렉티브하우스’는 한집에서 방을 나눠 사용하는 ‘셰어하우스’보다 개인의 독립성이 좀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차이가 있다. 거실과 부엌, 방과 화장실이 개별적으로 갖춰진 집에서 각자 살되, 공동거실과 공동식당 등만 따로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셰어하우스는 보통 비슷한 또래가 모여 살게 되는 반면 컬렉티브하우스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진다. 한국보다 저출산과 고령화, 1인가구화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그래서 이 같은 집의 구성이 붕괴된 공동체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70주년 창간기획-집의 재구성 살고 싶은 家] (8) 열린 식당·거실…아이부터 청년·노인들까지 ‘식구’가 되는 집

컬렉티브하우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스웨덴에서다. 도심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이웃과 육아·가사 부담을 나눠 주거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다. 일본에선 1995년 한신 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급증하자 컬렉티브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홀로 혹은 우리 가족만으로 도시에서 살기 힘들어진 때 ‘같이 살기’가 대안이 된 셈이다.

일본 비영리단체(NPO) ‘컬렉티브하우징’의 미야 마리코 부대표(65)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 도시에서는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며 여러 사람들이 신뢰를 쌓으며 살 수 있는 주거 형태”라고 설명했다.

컬렉티브하우징이 2003년 6월 도쿄 아라카와구에 만든 ‘간칸모리’는 거주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첫 컬렉티브하우스다. 12층짜리 건물에서 2개층을 임차해 같이 사는 집으로 개조했다. 방 하나짜리, 2개짜리 집 등 총 28가구에 어린이부터 70대 노인까지 50명이 산다. 주방과 식당, 거실, 세탁실 등을 공용공간으로 꾸미고 양로원, 어린이집도 갖췄다.

컬렉티브하우징의 야다 히로아키 이사(45)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껴 컬렉티브하우스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생활은 일주일에 2~3번 이뤄지는 식사다. 간칸모리의 널찍한 주방엔 업소용 조리기구와 오븐, 식기세척기 등 대식구의 식사 준비기구들도 마련돼 있다. 거주자 모두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저녁식사는 2~3명이 한 팀을 이뤄 순번대로 준비한다. 당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돌아오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식사에 꼭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퇴근이 늦거나 일이 있어 같이 밥을 먹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남겨놓기도 한다. 저녁에 모이기 힘든 때는 점심에 시간 되는 이들만 간단히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는 휴일에 날을 잡기도 한다.

일반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라면 그저 각자의 집에서 살면 그만이겠지만 컬렉티브하우스에서는 생활 규칙이나 이웃 간 크고 작은 의견 충돌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정례 회의가 매달 한 번씩 열린다. 같이 쓰는 설비와 비품의 관리 방식부터 공용공간의 전기·수도 요금이나 관리비를 어떻게 나눌지도 거주자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식사를 맡는 팀, 텃밭을 돌보는 팀, 건물 안팎의 청소를 하는 팀, 대형 세탁물을 맡아 빨래를 하는 팀 등으로 나눠 활동할 분야를 정하기도 한다. 공용식당에서 각자의 친구들을 불러 술자리를 가질 경우 몇 시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소소하지만 함께 사는 이웃들을 배려하기 위한 내용도 ‘안건’에 오른다.

보통은 입주자들이 거주자 조합을 만들고 직접 관리와 운영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집’의 힘이 나온다.

일본에서 컬렉티브하우스를 최초로 제안한 고야베 이쿠코 공학박사는 저서 <컬렉티브하우스>에서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갖고 있는 생활의 지혜를 이어받고,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로부터는 육아의 즐거움과 고생스러움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은 어린이와 젊은이에게서 자극을 받고 그들의 성장에 관여함으로써 자신을 갖게 된다”며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회성을 몸에 익히고, 어른들은 고립된 육아로부터 해방된다. 모든 세대가 혜택을 입는다”고도 전했다.

공동체 복원의 핵심은 공용공간이다. 독립된 공간에 따로 살기는 하나 주방과 식당, 거실, 세탁실 등을 함께 쓰면서 다른 거주자들을 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의 거실에서는 거주자들이 오가며 대화를 나누거나 노트북으로 개인 업무를 보고, 독서 등 취미를 즐길 수도 있다. 아이들도 공부를 하거나 논다. 어른들은 다른 집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한다. 테라스에 있는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거주자들이 나눠 먹는다. 컬렉티브하우징은 이 주택에 대해 “기존의 가족·복지·주택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자유롭고 안심하며 살기 위한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또 거주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거주자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꼭 필요하진 않지만 생활의 필수 시설인 세탁기, 창고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직장인과 프리랜서, 공무원, 대학강사, 독신자, 부부 등 다양한 직업군과 가족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것은 거주 희망자들이 집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기 때문이다. 간칸모리는 입주 2년 전부터 컬렉티브하우징이 주최가 돼 32회의 워크숍을 열었다. 이때마다 예비 거주자들은 자신이 꿈꾸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어떤 집을 만들지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실제 이를 설계에 반영했다.

간칸모리 이후 도쿄에는 ‘스가모’(11가구), ‘세이세키’(20가구), ‘오이즈미가쿠엔’(13가구) 등 여러 컬렉티브하우스들이 생겼다. 군마현의 한 컬렉티브하우스는 공공(주택공급공사)이 사업자로 참여해 12가구가 함께 사는 집을 짓기도 했다. 보통 컬렉티브하우스는 건물을 신축하거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용공간을 마련한다.

이들 컬렉티브하우스에 거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입주 전부터 NPO의 안내로 ‘거주 희망자 모임’을 꾸렸다. 수시로 회의를 하면서 원하는 집을 기획한 뒤 부동산 사업자를 선정해 거주자 조합을 만들고 공동생활의 방식과 공동체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래된 사원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오이즈미가쿠엔의 경우 거주 희망자 모임에서 낮은 임대료로 다양한 거주자가 살 수 있도록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이 중 5가구는 욕실을 없애는 대신 공용욕실을 만들어 생활비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가스와 전기 계량기도 가구별로 설치하지 않고 공동계량기만 설치해 관리비 부담도 낮췄다. 일반 부동산 사업자가 짓는 주택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공동주거 부담 방식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온다 모리오는 <컬렉티브하우스>에서 “도시적 관점에서 (컬렉티브하우스는) 공유지 부활”이라며 “근대화 과정 속에 분리됐던 공동의 영역을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컬렉티브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단독주택이나 임대, 분양맨션 사람들에 비해 공동의식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본의 컬렉티브하우스는 모두 임대 방식으로 거주가 이뤄진다. 1~2개월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내며, 거주자 조합에 가입해야 입주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비도 내야 한다. 보증금과 조합비는 이사를 갈 때 반환된다. NPO가 부동산을 소유한 사업자로부터 임대관리를 위탁받는 식으로 집을 확보한다. 보통 사업자, 거주자는 개별 임대차계약을 맺는다. 다만 간칸모리는 NPO의 도움 없이 거주자 조합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거주자들이 2006년 12월 주식회사를 만들어 사업자로부터 건물을 일괄 임차한 뒤 거주자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컬렉티브하우스가 ‘자가’ 대신 ‘임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가족 구성이나 생활 형태가 변하는 데 맞춰 거주자가 자유롭게 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소유한 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공동체를 찾아 소속됐다가도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담보하자는 취지다.

야다 이사는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고립화는 혈연·지연 등 무너져가는 기존 관계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생활이 가능한 컬렉티브하우스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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