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기름집…42년 고소한 한국의 맛을 지켜온 기름집

2017.10.18 22:02
엄민용 기자·민경아 온라인기자

서울 종로구 계동길 67에 위치한 ‘대구참기름집’.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계동길 67에 위치한 ‘대구참기름집’.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선정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선정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여덟 번째 가게는 ‘대구참기름집’이다.

‘대구참기름집’ 사장 서정식씨가 아침 일찍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대구참기름집’ 사장 서정식씨가 아침 일찍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나는 나 스스로가 바보라고 생각해요.”

아침 일찍부터 고춧가루를 빻고 계시던 ‘대구참기름집’ 사장 서정식씨(71)가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며 내뱉은 말이다.

42년 동안 참기름집을 해온 서씨는 종로3가 동익동 동익참기름집에서 신접살림과 함께 참기름집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다른 사업을 하고 있던 서씨는 결혼 후 신혼집을 고민하던 차에 당시 60세 고령이시던 장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신접살림과 함께 시작한 참기름집은 15년 만에 자리를 옮겨야 했다. 건물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건물주의 말에 고민을 하다 당시 대구참기름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에게서 가게를 인수받아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이후 30여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기자기한 북촌 골목 사이에 있는 ‘대구참기름집’은 노란 간판에 파란 글씨가 확 눈길을 끈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말에 한껏 들뜬 서씨는 가게 밖으로 안내했다.

그는 “옛날에 간판이 있던 자리는 녹이 슬어서 보기 싫을 정도였어. 그래서 그 위에 새로 칠을 하고 직접 재료를 사다가 간판을 만들어 걸었지. 당시에는 참 예뻤는데…”라며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노란 간판을 어루만졌다.

“참 어려웠지. 종로3가 지하철이 들어선다고 공사를 하는 바람에 가게를 찾는 손님이 없을 때는 특히 심했어. 그렇게 힘든 시기가 지나고 보니 돈 욕심 부릴 틈도 없이 나이만 먹었지 뭐야.”

일본 언론에 소개됐던 대구참기름집.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일본 언론에 소개됐던 대구참기름집.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한국어와 일본어로 설명된 국산 참기름과 국산 들기름이 진열돼 있다.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한국어와 일본어로 설명된 국산 참기름과 국산 들기름이 진열돼 있다.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씨는 과거 종로3가 지하철이 들어서던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려운 시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기성품들이 쏟아지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즉석 판매업에 속한 참기름집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서씨는 어느 기름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버리는 기계들의 부품을 얻어 모아뒀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기름을 내리는 기계도 단종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품을 조금씩 모아둔 덕에 앞으로 자신이 참기름집을 하는 동안에는 기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서씨는 전한다.

국내 소비자들의 발길이 많이 뜸해졌지만, 다행히 서씨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손님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인 관광객들이다.

일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서울 중앙고등학교가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였고, 자연스럽게 ‘대구참기름집’도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 일본 참기름과 달리 진한 향과 구수한 맛에 일본 관광객들은 <겨울연가> 열풍이 사그라든 지금도 일부러 ‘대구참기름집’에 들러 선물용 기름을 사 간다.

서씨는 “일본 사람들에게 중국산을 팔 수는 없잖아. 그래서 아무리 비싸도 항상 국산 참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두고 있어”라고 들려줬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깨 볶는 기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깨 볶는 기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아침 일찍부터 돌아가는 고추 빻는 기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아침 일찍부터 돌아가는 고추 빻는 기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작은 가게에 들어서면 한쪽에 마련된 판매대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설명된 참기름과 들기름이 놓여 있다. 그중 기름병 입구를 초록색 띠로 두른 국산 참기름(2만2000원)과 노란 마개의 국산 들기름(1만5000원)이 가장 윗줄에 놓여 있다.

서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산 참기름이 판매량의 70%를 차지했는데, 올 추석연휴에는 국산 참기름과 중국산 참기름이 비등하게 팔렸다며 기뻐했다. 참기름 맛을 아는 국내 소비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참기름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서씨의 설명이다.

기름만은 자신있다는 서씨는 “기름을 보관할 때 냉장고에 보관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 집 기름은 바로 짜서 내린 것을 팔기 때문에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싱크대 밑이나 시원한 곳에 보관하면 6개월은 끄떡없어”라고 자랑했다.

오랜 세월 자신의 체취가 묻어 있는 가게를 둘러보던 서씨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두 아들은 참기름집에 관심이 없지만 사위가 관심을 보여 물려줄까 싶다가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이 힘든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아 고민이라고 한다.

평생을 바보같이 살아 돈 욕심을 낼 줄 모르는 서씨는 “참된 이미지를 지키고자 일을 했기 때문에 70평생 남은 것은 없어. 단지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 부지런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떳떳한 아빠로 정직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장사하고 싶어”라는 말을 남기고 참기름 배달에 나섰다. 그의 뒷모습으로 고소한 삶의 내음이 자르르 흘렀다.

평일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북촌 한옥마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평일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북촌 한옥마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한적한 분위기의 북촌 한옥마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한적한 분위기의 북촌 한옥마을. 민경아 온라인기자 kyu@kyunghyang.com

한편 ‘대구참기름집’이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은 거리를 따라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오래된 사진관 같은 곳에서 추억을 남길 수도 있다. 또 새로 들어서는 가게들 역시 옛 정취를 잃지 않으려고 옛 느낌을 살려 가게를 꾸몄다. 참기름 한 병을 사들고 한옥과 서울의 1960~1970년대 서민문화가 녹아 있는 거리를 거닐며 현실에 찌든 삶을 조금은 덜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구참기름집은?

개업연도 : 1975년 / 주소 : 종로구 계동길 67 / 대표재화 금액 : 국산 참기름 2만2000원, 국산 들기름 1만5000원 / 체험 요소 : 고춧가루 빻는 과정, 참기름을 내리는 옛날 방식을 볼 수 있음. 재화 구매 가능 / 영업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8시30분, 토요일은 오전만, 일요일 휴무 / 주변 관광지 : 북촌 한옥마을, 창덕궁, 중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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