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질이 좋으면 뇌를 오가는 혈류가 원활해 하루 동안 뇌가 주기적인 부피 변화를 보이지만,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이 변화가 미미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수면장애를 진단할 때 뇌의 부피 변화가 주기에 맞게 잘 나타나는지를 새로운 지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 연구팀은 수면의 질이 뇌 부피의 일주기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세계 최초로 분석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뉴로이미지(NeuroImage)’에 게재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국내 60세 이상의 노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면의 질과 평균 기상시간, 의료영상으로 측정한 뇌 부피 데이터를 분석했다.
의료영상장비로 측정한 뇌의 부피는 신경 퇴행성 질환을 평가하는 중요한 데이터로 쓰인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해마를 포함한 내측 측두엽, 의미 치매는 편측 측두엽, 전측두엽 치매는 전두엽의 부피가 집중적으로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 뇌의 부피는 이처럼 노화나 질병, 유전적 요인 등에 따라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루를 주기로 부피의 증감을 반복하는 변동을 보이기도 한다. 누웠다 일어나면 체액이 신체 곳곳으로 이동하면서 대뇌 혈류량이 줄어들어 뇌의 부피가 감소하는 등 혈류량과 수분 섭취, 자세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뇌 부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특히 뇌를 오가는 혈류량은 수면의 질과도 상호작용을 보이므로 양질의 수면을 취했는지가 하루 동안의 뇌 부피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론됐다. 기존에는 이를 명확히 규명한 연구가 없었다. 연구진은 ‘피츠버그 수면의 질 지수(PSQI)’를 통해 수면의 질을 점수로 매겨 ‘양호’, ‘경계’, ‘나쁨’으로 분류하고, 기상 이후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까지의 시간 간격에 따라서도 3개 그룹(INT1·2·3)을 나눴다. 이어 이들 요인에 따라 뇌 전체를 비롯해 뇌의 중추신경계 신경세포가 밀집되어 있는 회색질 각 영역의 부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MRI 뇌영상으로 확인했다.
분석 결과, 수면의 질이 양호한 군에서만 기상 이후 뇌영상 촬영 시점 변화에 따라 뇌 부피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수면의 질이 경계·나쁨인 군에서는 하루 중 시간이 흘러도 뇌 부피가 달라지는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면의 질이 양호한 경우 INT2 그룹이 INT1·3 그룹보다 뇌 부피가 작았는데, 특히 INT1 그룹보다 전체 뇌 부피는 2.1%, 회색질은 1.3%, 대뇌 회질은 1.1% 작은 반면 뇌척수액 부피는 0.5% 컸다. 이 수치는 수면 중에 뇌 속에 증가했던 혈류가 기상 후 신체활동을 하며 몸의 다른 부위로 빠져 나가면서 7시간가량 뇌의 부피가 줄어들다가 이후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동안 체액과 혈류가 뇌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어서 뇌 부피의 일주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향후 뇌영상 연구에서 수면의 질과 뇌 MRI 촬영시점 등을 중요한 교란 변수로 분석에 포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김기웅 교수는 “수면의 질과 검사 시간이 뇌의 일주기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며 “향후 이를 주요 교란 변수로 포함시켜 뇌 영상의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길 기대하며, 나아가 뇌 부피의 일주기 변화를 수면장애 진단의 생체 표지자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