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부터 항문까지, 섭취한 음식물이 지나가는 경로 어디에든 염증이 생길 수 있어 환자들의 고충이 큰 질환이 있다. 유명인들이 속속 투병 사실을 밝히면서 국내에서도 점차 이름이 알려진 이 ‘크론병’은 비슷한 증상의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함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긴 투병기간 동안에도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만성 염증성장질환의 일종인 크론병은 1932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미국의 의사 버나드 크론(Bernard Crohn)의 이름에서 병명을 따왔다. 국내에선 드물어 서양의 질병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1990년대 들면서 국내서도 환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크론병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는 3만3238명으로, 2019년 2만4133명에 비해 27% 넘게 늘었다. 이런 증가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크론병의 특징은 10~20대 젊은 연령층 환자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환자가 늘어난 점 때문에 인스턴트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 등을 보다 일상적으로 섭취하게 된 식습관 변화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크론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적인 소인이 특정한 환경적 인자와 만나 자극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인체의 면역반응이 다소 교란된 탓에 발병하는 것으로만 추정할 뿐이다.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나이대에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의 고충도 크다. 청소년기에 크론병이 생기면 장의 염증 탓에 수시로 나타나는 복통·설사 때문에 성장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생업을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자주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차재명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크론병으로 치료받던 환자들이 대학을 가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와 함께 병원을 오는 것을 보기도 한다”며 “크론병 치료는 환자들의 인생 과정과 함께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증상인 복통이나 설사는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비슷한 질환에도 잘 나타나므로 혼동하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 다른 질환과 구분할 수 있는 크론병의 특징을 꼽자면 소화기관 외에 다른 부위에도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눈의 이상이나 피부 발진, 관절통 등이 동반될 경우 크론병을 의심할 수 있다. 치료를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므로 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들은 뒤 내시경과 조직검사, 영상검사, 혈액검사 등의 결과를 종합해 진단을 내린다.
일단 크론병으로 진단됐다면 비교적 증상이 심하지 않은 시기에는 염증에 효과가 있는 항염증제를 먼저 사용하고, 급성 악화기에는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면역조절제는 스테로이드제 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했을 때 유지 약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생물학적제제도 널리 사용되면서 환자들의 증상이 급성으로 악화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염증이 심해져 소화기관에 구멍이 나거나 통로가 좁아지고 들러붙는 등의 심각한 증상이 생기면 수술로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크론병은 장기간 또는 평생 완치가 어려운 병이지만 생활습관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 인스턴트 음식 섭취를 최소화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차재명 교수는 “어떤 병이든 오래 지속되면 지치기 마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관리하고 치료한다면 여러 가지 합병증은 물론 불필요한 치료도 피할 수 있다”며 “몸의 이상이 느껴질 경우 지체하지 말고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