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청년가구 위한 소셜다이닝 운영하는 이지수씨
‘먹고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말엔 유난히 밥과 관련된 인사말이 많다. “식사하셨어요?”는 정말 밥을 먹었는지를 묻기보다는 “안녕하세요?”에 가깝다. “언제 밥이나 먹자”는 헤어질 때 쓰는 흔한 인사말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먹는 입’이라는 뜻인 식구(食口)는 ‘우리 편’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함께 밥을 먹으면 가족처럼 가까운 ‘편’이 될 수도 있다는 정서가 깔려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인사를 쉽게 나누지만, 잘 먹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밥상? 혼자 먹어도 마음 편하게 먹는 것? ‘혼밥’ ‘혼술’이 낯설지 않은 시대, 2017년부터 2년 동안 서울 광진구의 한 옥탑방에서 1인 청년가구를 위한 소셜다이닝 공간 ‘진구네 식탁’을 운영한 이지수씨(26)를 지난 4일 만났다.
적은 비용으로 나눠 먹을 수 있어 좋고 동네친구도 생겨
처음 만나 서먹한 사이, 음식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친해져
혼밥이 에너지 섭취라면, 모여서 먹는 밥은 마음을 충전하는 것
- ‘진구네 식탁’은 어떤 곳이죠.
“청년, 1인 가구의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유밥상 모임이에요. 혼자 밥 먹기 싫은 사람, 혼자 밥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요리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이죠. 제가 모임을 조직하기도 했고, 공간만 대여해 드리기도 했어요. 제가 사는 곳이 광진구라서 이름을 ‘진구’라고 했어요. 자취생들에게 식탁은 밥상이자 책상이잖아요. 뭔가 더 좋고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식탁’이라고 붙여봤어요.”
- 모임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스무살 때 대학 진학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1년은 기숙사에서 살고 그 후부터는 자취를 했는데 제일 어려움을 많이 느낀 것이 식생활이었어요. 기숙사엔 주방이 없고, 자취방은 주방이 굉장히 좁잖아요. 직접 밥을 해먹기 힘드니까 학식(학교식당)을 이용했는데 시간을 놓칠 때가 많았고, 주로 인스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을 많이 먹었어요. 그렇게 2~3년쯤 지나니까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병원에 갔는데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어요. 보통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뭔가 계속 우울하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했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다가 일상생활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꼭 지켜야 할 것 중에 제일 안 지키고 있는 게 밥을 잘 챙겨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이더라고요.”
- 혼자 살면서 직접 요리하며 챙겨 먹는 게 쉽지 않잖아요.
“네.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도 나머지 재료들은 상해서 버리게 되니까 점점 요리를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1인 가구들을 위해 적은 양으로 파는 곳이 거의 없었잖아요. 그래도 일상을 좀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는 조금씩이라도 직접 해먹으려고 노력했어요.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보기도 하고, ‘먹방’도 보면서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 모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려움이 있을 땐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로 의지도 할 수 있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는 SNS를 통해 사람을 모아서 같이 재래시장에 가서 과일도 사고 반찬도 사고 그랬어요. 혼자 살면 과일을 별로 못 먹잖아요. 시장에 가면 재밌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거리도 생기고요. 적은 비용으로 나눠 먹을 수 있으니까 좋았어요. 혼자 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동네 친구도 생기고요.”
- 그러다 직접 공간까지 마련했군요.
“처음엔 공간을 찾아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공유주방이 많아졌는데, 그때만 해도 ‘파티룸’ 성격의 공간이 많았어요. 저는 부담 없이 친구집에 놀러가듯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제가 자주 갈 수 있어야 하니까 광진구 안에 있는 공간으로 둘러봤고, 옥탑방(23㎡ 규모)을 구했죠. (비용 마련은 어떻게 했나요?) 정부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지원해서 일부 지원도 받고, 소셜펀딩사이트에서 펀딩도 진행했어요.”
- 공간은 어떻게 꾸몄나요.
“유튜브나 책을 보면서 셀프인테리어를 했어요. 주변 친구들 도움을 받기고 했고요. 최대 8명까지 앉을 수 있는 식탁을 놓았고, 작은 선반에 커피메이커와 차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냉장고와 싱크대, 조리대,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여러 주방도구, 그릇, 기본 조미료, 수저세트, 장갑과 앞치마 등을 두었고요. 거의 새 제품으로 구비했는데 일부는 기부를 받기도 했어요.”
- 모임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처음엔 제가 주로 모임을 기획했고, 나중에는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 커뮤니티 모임인 ‘어슬렁 반상회’ 프로그램의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됐어요. 제가 광진구의 ‘청년반장’을 하게 됐는데 주로 소셜다이닝으로 진행을 했죠. 같이 먹고 싶은 요리를 정하면 제가 미리 레시피를 공부해서 가기도 하고, 밖에서 사먹기 힘든 멸치볶음이나 장조림 같은 밑반찬을 만들기도 했어요. 어떤 분은 군대에서 먹었던 ‘맛다시(양념장)’를 이용한 비빔밥을 만들어보자고 하기도 했고, 어머니가 어렸을 때 해주신 음식을 제안하고 그 음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분도 있었어요. 요리·먹방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 <줄리 앤 줄리아(2009년작)>에서 나온 프랑스 요리 ‘비프 부르기뇽’을 만들어보면서 영화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진구네 식탁’ 참가·대여 비용은 1만~2만원이다. 1회성 모임도 있고, 어슬렁 반상회처럼 5~6회 정도 지속되는 모임도 있다. 모임이 정해지면 운영자인 이지수씨가 식재료를 준비하고, 함께 모여 요리를 한 뒤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같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고추장찌개, 월남쌈, 밀푀유나베, 베이컨말이, 파스타 등 국적을 초월한 다양한 요리들이 진구네 식탁에 올랐다. 기숙사, 고시원 생활을 하는 청년들부터 친구,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청년들이 진구네 식탁을 찾았다. 이씨는 “어떤 요리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함께’ 요리를 만들고 나누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요리까지 같이하는 것이 좀 어색할 수도 있는데 어땠나요.
“어떤 분들은 처음부터 활발하게 마음을 열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막상 나오긴 했지만 소극적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주제를 준비했어요. 예를 들면,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하면 막막하고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지난주 나의 컨디션을 5점 만점 중에 점수로 표현한다면?’ ‘한 주 동안 가장 마음에 든 식사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죠. 6번 정도 만난다고 하면, 3회차 정도부터 다같이 조금 친해졌던 것 같아요. 친해진 뒤부터는 서로 음식 외에 대한 이야기도 공유하게 됐어요. ‘이별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로 팁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타인의 얘기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지양하기로 했어요.”
- 요리를 한다는 게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는 만남이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나요.
“네. 혼자 먹는 것이 그냥 몸이 돌아가도록 하는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이라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는 건 마음을 충전하는 일인 것 같아요. 요즘은 음식을 소량으로 많이 팔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는 게 더 싸고 편리할 수도 있는데, 함께 만든 반찬은 그걸 만들 때의 경험이 생각나서 쉽게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만큼 더 잘 챙겨 먹게 되고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살아도 요즘은 다들 바쁘니까, 함께 밥 먹는 시간들이 별로 없잖아요. 혼자 있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뭔가 연결돼있고 돌봄받고 돌본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떤 친구가 ‘밥정’이라는 표현을 해줬는데 그게 참 기억에 남아요. 한번은 도시락을 만들고 익명의 편지를 써서 무작위로 나눠 갖는 모임을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경계하지 않고 친근하게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이 모임을 통해 처음 받았다’고 썼더라고요. 한국에선 유난히 밥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밥에 관련된 표현들도 일상에서 굉장히 많고요. 그다음부턴 저희 모임을 ‘밥정을 만드는 모임’이라고 소개해요.”
- 모임을 함께한 대상이 주로 청년들인데요. 청년들을 위해서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청년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취업’과 ‘창업’에만 집중돼 있는 것 같아요. 청년을 학생, 취준생, 직장인…이런 식으로만 나눠서 생각하는데, 그 사이사이의 지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나눠놓은 카테고리에 들어가있지 않은 청년들은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되고 고립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나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고, 방황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시간들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 옥탑방 공간은 잠시 중단한 상태죠. 다른 계획이 있나요.
“2017년 10월부터 2년 동안 임대해서 지난해 말에 공간을 정리했어요. 제가 혼자 공간을 다 관리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고, 또 공간보다는 ‘커뮤니티’의 성격을 살려서 좀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월부터 청년활동지원공간인 ‘무중력지대 광진구 청년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 공유주방뿐 아니라 청년들의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여러 ‘활력’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려 구상하고 있어요. 5~6년 뒤에는 공유주방이 중심이 된 공유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꼭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유튜브 채널을 통한 콘텐츠도 만들 생각이에요. 혼자 있더라도, 누구나 어디엔가는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