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에서 클린스만까지…‘인간 복사기’ 정성호의 가방

2024.03.30 15:00

가방 속에서 오래 써 손때 묻은 특수분장 팔레트가 먼저 나왔다. 그의 재산 1호다. 정지윤 선임기자

가방 속에서 오래 써 손때 묻은 특수분장 팔레트가 먼저 나왔다. 그의 재산 1호다. 정지윤 선임기자

코미디언 정성호를 두고 기성세대는 ‘인간 복사기’, 젠지세대는 ‘메타몽’이라고 부른다. 메타몽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로 다른 포켓몬이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포켓몬이다. 연예인, 정치인, 화제의 인물, 외국인까지… 그의 인물 모사는 세대 불문 감탄을 자아낸다. 10년 넘게 수십명을 ‘삼켜왔던’ 그는 가방에 무얼 가지고 다닐까?

그의 인물 모사에는 철칙이 있다…

정성호와의 인터뷰는 재밌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적재적소 그 사람을 흉내 내며 답변을 하니 마치 <SNL 코리아>(이하 SNL) 속 ‘정성호 컬렉션’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순재, 조용필, 한석규, 임재범 등 연예인부터 이승만·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조국, 한동훈 등 정치인까지… 그가 모사한 인물들을 모으면 현대사 연도별 정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한국 축구대표팀 전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을 모사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정성호의 인물 모사는 타 코미디언과 다른 몇가지 철칙이 있다. 먼저 특정 인물 모사를 본인의 개인기로 삼아 이곳저곳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이유로 그의 모사는 특정 인물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이슈가 있는 인물 위주로 다채롭게 구사된다.

“저는 특정 인물을 따라 하는 것을 개인기로 흥청망청 장난처럼 이곳저곳에서 하지 않아요. <SNL>에서조차 특정인의 모사 장면이 꼭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했을 때 보여드립니다. 그것이 제가 모사하는 분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인물 모사 코미디는 그 사람과 닮아야 하지만, 정성호 ‘본체’도 같이 보여야 한다. 그는 똑같이 따라 하는 것만이 코미디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성호가 모사하는 인물과 코미디 상황이 섞여야 비로소 쇼는 완성된다.

인물 패러디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인간 복사기’로 불리는 개그맨 정성호가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2024.3.18. 정지윤 선임기자

인물 패러디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인간 복사기’로 불리는 개그맨 정성호가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2024.3.18. 정지윤 선임기자

“저는 일단 목소리를 연습한 다음에 얼굴 모사를 연습해요. 모사에는 제 얼굴도 10% 정도 보여야 해요. 사람들이 웃는 이유는 제가 그 인물과 똑같아서가 아니에요. ‘코미디언 정성호가 ○○○을 기가 막히게 따라 하네’라는 지점에서 웃음이 나오는 거죠.”

그는 자신은 천의 얼굴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대모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수일간의 연습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몇날 며칠 이어지는 새벽녘 연습, 지인을 통한 모니터링 그리고 <SNL> 제작진과 함께한 세 번의 리허설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정성호표 인물 모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 복사기로 불리는 정성호의 마지막 철칙은 자신이 모사하는 인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 풍자 코미디를 상대 진영이 비하 의도로 이용하지 말아달라 당부한다. 코미디는 그저 코미디로 봐달라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연습하려면 그분들의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아야 하니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끼게 돼요. 아! 클린스만은 제외하고요. 게다가 그분들은 실제로 자기 분야에서 굉장한 업적을 이루었고 이루고 있는 분들이잖아요.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가 인물 모사 중 가장 난감했던 대상은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었다. SNL코리아 캡처

그가 인물 모사 중 가장 난감했던 대상은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었다. SNL코리아 캡처

모사할 인물은 <SNL> 작가진과 정성호가 함께 정한다.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었다.

“작가들이 ‘이분 해보세요’ 하고 던졌을 때 한 번도 ‘노(No)’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가장 위기를 느낀 경우가 추사랑양 따라 하기였어요. 일단 하겠다고 하고 연습하는데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라고 막 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SNL>에서 새로운 인물의 모사를 선보일 때마다 큰 화제가 됐지만, 실상 그의 프로그램 출연 분량은 1분30초가 채 되지 않는다. 1분30초를 위해 그는 수일 동안 연습을 거듭한다. 인물에 따라 한 달이 걸릴 때도 있다.

“1분이든 30초든 제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제 임무죠. 특히 <SNL>은 매회 주인공인 호스트가 있잖아요. 우리가 빛나서는 안 돼요. 저희는 호스트를 빛내고 예쁘게 만들어주는 조미료 역할을 해야 해요.”

최근 영화 <범죄도시> ‘장이수’로 더 잘 알려진 배우 박지환이 <SNL>에 호스트로 출연했다. 그는 가상 K팝 그룹 ‘라이스’의 멤버 ‘J환’으로 분했다. 그의 아이돌 연기는 현실과 매우 흡사해 K팝 팬들로부터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평을 들었다.

“호스트는 총 일주일 정도 촬영을 하는데, 끝나고 나면 저희와 진한 전우애를 느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호스트인 자신을 위해 회의하고 준비하고 연기하는 모습에 감동한다고 해요. 혼신의 연기를 해준 박지환씨는 모든 공연이 끝나고 눈물까지 보이셨죠.”

그의 가방 속 특수분장 팔레트. 준비 과정에서 스스로 해보는 분장도 그에겐 중요한 인물 모사 연습 과정이다. 정지윤 선임기자

그의 가방 속 특수분장 팔레트. 준비 과정에서 스스로 해보는 분장도 그에겐 중요한 인물 모사 연습 과정이다. 정지윤 선임기자

정성호의 가방 속에는?

정성호는 가방 속 아이템을 공개하기 전 진홍색 가방을 높이 들어 보였다. 함께 사는 장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단다.

“장모님께서 약 30년 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구매한 가방인데 오래됐다고 버리려고 하시더라고요. 가만히 보니 여전히 튼튼하고 예뻐서 장모님 대신 요즘 제가 메고 다녀요.”

장모님의 손길이 남아 있는 가방 속에서 오래 써 손때 묻은 특수분장 팔레트가 먼저 나왔다. 그의 재산 1호다. 녹화에 앞서 하는 분장은 제작진에게 맡기지만, 준비 과정에서 스스로 해보는 분장도 그에겐 중요한 연습이다.

인간복사기 정성호의 가방 속에는…? 정지윤 선임기자

인간복사기 정성호의 가방 속에는…? 정지윤 선임기자

“10년 넘게 분장하다 보니 수준급이 되었어요. 이 팔레트는 특수분장용이라 메이크업 팔레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가라고 해요. 감사하게도 분장 선생님께서 늘 챙겨주세요.”

중학교 2학년 첫째 딸이 쓸 법한 귀여운 ‘쿠로미’ 캐릭터 필통에서 나온 펜슬도 눈썹과 수염을 그리는 데 꼭 필요한 도구다. 대본 작업을 할 때 쓰는 필기구와 노안 안경도 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다. 분장 팔레트와 함께 모사 연습에 꼭 필요한 것이 휴대폰이다. 그의 휴대폰에는 그가 연습했던, 그리고 연습할 인물들의 다양한 영상이 들어 있다. 영상 목록은 지인들에게 보내 모니터링을 받을 녹음 파일로 빼곡하다. 가장 정확하게 부족한 점을 짚어주는 모니터요원은 방송인 장성규다. 그에게 “대박!!”이라는 반응이 나와야 마음을 놓는다.

정성호는 딸 둘과 아들 셋, 5남매를 둔 연예계 대표 다둥이 아빠다. 막내아들이 15개월로 한창 손이 필요할 때라 다섯 자녀가 모두 잠든 새벽녘 비로소 그의 연습 시간이 시작된다.

“우리 가족이 어디 가서 제 이름이 언급됐을 때 부끄럽지 않고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오늘도 열심히 연습하고 일하는 단 하나의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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