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좋으면 로맨틱 코미디가 뜨고, 불황이면 ‘사극’이 뜬다.”
개그맨 겸 작가 고명환은 방송가 흥행 속설을 곁들이며 고전을 집어 들었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해답을 과거에서 찾아보고 싶은 심리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연예계 다독가로 소문난 그는 지난 7월 신간 <고전이 답했다(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을 냈다. 여러 고전에서 찾은 삶의 해답을 한데 모은 책이다.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출간 한 달 만에 5만 부가 판매됐다. 대만과 베트남 수출도 확정됐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가방에서는 남산도서관 자리 배정표 뭉치가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나를 바꾼 책 한 권
MBC 공채 8기 개그맨 출신 고명환은 이제 개그맨보다 작가이자 자기 계발 강사로 통한다. 인터뷰 중에도 강의 일정을 확인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보다 강의료가 100배 올랐단다. 그 시작은 유튜브 채널에서의 ‘혼잣말’이었다.
“저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긍정 확언>을 10분 정도 촬영해 올렸어요. 영상을 보는 분들이 하나둘 늘더니 구독자 5만명이 따라오시더라고요.”
<아침 긍정 확언>을 운영한 지 이제 1000일이 넘었다. ‘고독이(고명환과 함께하는 독서 클럽 회원)’라는 돈독한 커뮤니티도 생겼다. 그와 함께 독서하고 독서법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저도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해요. 단, 이 책 안에서 한 문장은 꼭 얻어가자는 마음가짐으로 독서를 합니다.”
고명환이 읽은 책 첫 장에는 그가 뽑아낸 책 속 문장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그 문장들 중 한 문장만 남더라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도서관 마니아가 됐다. 여유있는 날이면 늘 집 근처 남산도서관을 향한다. 휴관일에는 용산도서관으로 향하고 혹 출판사 갈 일이 생기면 파주 지혜의 숲도 꼭 들른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빚보증으로 집이 망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를 하셨죠. 월세 단칸방에 살던 누나와 저는 연탄이 없어서 한겨울에도 냉골에서 자야 했어요. 참다 참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당시 부모님이 목욕탕을 해서 잘 살던 친구 집에 가서 연탄 4장을 훔치기도 했어요. 연탄을 가방에 넣고 집에 오는 길에 맞은 새벽녘 칼바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늘 주눅 들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서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스무살 고명환의 눈을 뜨이게 한 책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였다. 1982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소심증, 열등감 등을 벗고 당당히 행복을 찾자는 메시지로 250만명 이상 독자의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다.
“그 제목이 제게 구원과도 같았어요.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 저는 믿지 않아요. 한 방에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더라고요.”
책 한 권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힘을 발휘했다. 1994년 24살 고명환은 <KBS 대학개그제>에 출전해 금상을 받은 데 이어 MBC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 심리 개그를 표방한 MBC <코미디하우스>의 ‘와룡봉추’ 코너는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전성기를 열었다. 영화 <두사부일체>, 드라마 <로망스><해신>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인기 강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10억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요식업 CEO이기도 하다.
“현재의 삶에 불만이 있거나, 나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문제점을 가슴에 품고 서점에 가보세요. 그렇게 책을 찾다 보면 인생을 바꿀 페이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누구나 고명환처럼 단박에 인생 책을 찾을 순 없다. 책을 고르는 방법을 두고 그는 <니체의 인생 강의>에서 인간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제시한 3가지 변신을 이야기했다. 즉 낙타-사자-어린아이 순으로 책을 고르면 된단다. 낙타는 무거운 것을 견디는 태도, 사자는 기존 가치를 부정하는 힘,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상징한다.
“낙타처럼 시키는 대로 수백 년간 읽혀온 <죄와 벌> <노인과 바다> 같은 고전을 먼저 읽으세요. 그다음은 사자처럼 베스트셀러 책장을 벗어나 ‘왜 남이 좋다는 것을 읽지? 나만의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으세요. 그러면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의 책’을 비로소 고를 수 있을 거예요.”
그의 가방 속에는…
고명환은 “세 권의 책을 이 가방과 함께 냈다”라며 손때 묻은 낡은 배낭을 가져왔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그가 자주 간다는 도서관 자리 배정표였다.
“매년 도서관 표 100장 수집을 목표로 해요. 6월이 지나서 50장이 되지 않으면 남은 하반기에 좀 더 분발하고 진도를 나가죠. 그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긍정 확언을 했더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이 한 장의 가치를 금액으로 표현할 수 없어요. 제가 도서관을 ‘돈서관’이라고 부르는 이유죠.”
이름이 각인된 볼펜은 ‘고독이’ 회원들의 선물이다. 전국 각지로 강의를 다니다 보니 목 보호를 위해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늘 챙긴다. 추르 스틱도 늘 가지고 다닌다. 고양이 집사인 그는 길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추르로 얼굴을 트고 잠시라도 교감을 나누는 것도 그의 힐링 중 하나다.
현재 읽고 있는 고전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다. 두툼한 두께만 봐도 ‘어렵지 않냐?’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그는 “다 욕심내지 말고 한 문장만 가져가면 된다”라고 거듭 말했다. 분홍 형광의 화려한 낚시찌는 아내인 연기자 임지은씨가 챙겨준 물건이다. 그는 낚시 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한 소문난 낚시광이다.
“‘왓츠인마이백’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당신의 정체성은 바로 이것이라며 낚시찌를 챙겨줬어요. 조만간 책 집필을 위해 떠나요. 새벽까지 갈치를 잡고 숙소로 돌아와 요가와 명상도 하고 남은 시간은 책을 쓰며 재충전할 예정이에요. 즐거운 취미와 일을 함께 해야 일상이 행복으로 충만해지더라고요.”
고명환은 낡은 가방을 메고 곧 경남 통영 욕지도로 향한다. 그는 앞으로 1년에 한 권씩 책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들은 자신의 독서 내용을 엮어 쓴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쓸 작정이다. 자신의 책도 누군가의 ‘인생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