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황제도 반했다

2024.10.26 15:00 입력 2024.10.27 08:43 수정

(10)관능 자극하는 욕망덩이, 치즈

“조세핀의 체취와 비슷한 카망베르 향, 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이 중 음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 비교적 유리하다. 최소 ‘평타’ 이상은 보장한다. 원초적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식재료를 고르는 제각각의 과정은 그 모습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기 쉽다. 음식에 이종 장르를 결합해 다종다양한 서사를 만들어낸 인상적인 콘텐츠도 많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던 <흑백요리사>는 원초적 욕망과 이상적 가치에 소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음담패설 飮啖稗說]"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황제도 반했다

문화 콘텐츠 소재로 음식이 적극 활용되었던 것은 회화가 유일한 시각적 콘텐츠이던 과거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17세기에 발달했던 네덜란드 정물화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계급에 사랑받았다. 당시 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피사체는 꽃 혹은 음식이었다. 음식을 주인공 삼은 그림을 두고 많은 미술학자나 평론가들은 인간 욕망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 음식이고 인간의 근본 욕구가 식욕이기 때문일 터다.

식욕과 동반하는 인간의 근본 욕구는 성욕이다. 이 두 욕구는 긴밀하게 연결되고 서로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에 대해 법의학자 문국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의 시상하부에는 식욕 중추가 있고 바로 옆에 성욕 중추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한쪽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른 쪽 욕구도 잠잠해지며 사랑에 빠지면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풍미갤러리>에서). 법의학자와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함께 쓴 이 책에서 음식을 먹는 행복이 성적인 만족과 일치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하는 작품이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빈첸초 캄피의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이다. 생명력 있게 혹은 게걸스럽게 리코타 치즈를 맛보고 있는 남자 셋, 그저 웃고만 있는 여자 하나가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남자들의 입과 손에 있는 치즈는 상당히 관능적인 느낌을 풍긴다. 르네상스 미술사 권위자인 미국의 예술사가 패트리샤 시몬스는 저서 <전근대 유럽에서 남성의 성>(The Sex of Men in Premodern Europe)에서 리코타 치즈는 15세기부터 성행위에 대한 은유로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자랑인 리코타 치즈
15세기부터 성행위 은어로 사용
카사노바가 좋아하던 카수 마르주
맛보다 ‘최음제’로 즐겼다는 설도
부드럽게 늘어나는 치즈의 자태
‘푸드 포르노’의 필수품 해석까지

[음담패설 飮啖稗說]"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황제도 반했다

이탈리아의 낙농전문 매거진 ‘il Latte’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는 예로부터 훈제한 리코타 치즈를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다. 다산을 바라고 축하하는 연례행사나 축제에 선보이는 이 치즈의 모양은 남성의 성기와도 비슷하다. 시칠리아의 ‘카놀리’는 바삭하게 튀긴 튜브형 페이스트리 안에 신선하고 달콤한 리코타 치즈를 듬뿍 채운 디저트다. 영화 <대부>에도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냈던 이 디저트는 아랍이 시칠리아를 통치하던 시기(9~11세기) 남성성을 상징하고 돋보이게 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치즈는 <오디세이아>에도 언급될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기실 유럽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다. 높은 영양과 뛰어난 맛, 부드러운 질감을 두루 지닌 치즈는 음식을 소재로 한 미술 작품에서 꽤 자주 만날 수 있다. 플로리스 반 다이크, 요리스 반 손, 플로리스 반 스호텐 등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먹음직스러운 치즈를 화폭에 담았다. 르네 마그리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를 풍미했던 작가도 치즈를 소재로 한 대표작을 남겼고, 영국 왕실이 공인한 작가 크리스티안 퍼는 다양한 치즈를 화폭에 담은 시리즈를 내놓았다.

치즈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음식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녹아내리는 치즈, 주욱 늘어나며 무한 탄성을 자랑하는 치즈의 자태는 음식 사진의 클리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뉴스 사이트 매셔블(Mashable)은 “치즈를 묘사하는 단어는 관능적이고 자극적”이라고 설명하며 “치즈는 ‘푸드 포르노’의 필수품”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대놓고 ‘치즈포르노’(Cheeseporn)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십만건에 이른다.

남자들의 입과 손에 있는 치즈가 관능적인 느낌을 풍기는 빈첸초 캄피의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br />리옹미술관 소장

남자들의 입과 손에 있는 치즈가 관능적인 느낌을 풍기는 빈첸초 캄피의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
리옹미술관 소장

역사적 인물 중에도 치즈 사랑으로 유명했던 이가 여럿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서유럽을 통일했던 카를로스 대제는 ‘브리’ 치즈를, 나폴레옹은 ‘카망베르’ 치즈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색한의 대명사인 카사노바는 ‘카수 마르주’라는 치즈를 즐겼다. 브리나 카망베르야 우리에게도 그 맛이 잘 알려진 치즈인 반면, 카사노바가 좋아했다는 치즈는 낯설다. 그는 맛보다는 최음제로 이 치즈를 즐겼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의 특산물이기도 한 이 치즈는 현재 이탈리아에서도 법적으로는 판매가 금지된, 암시장에서만 거래되는 치즈로 알려져 있다. 너무 엽기적이어서다. 카수 마르주는 살아 있는 구더기가 들끓는 치즈다. 양젖으로 만든 치즈에 파리가 알을 낳아 생긴 구더기가 이 치즈를 파먹으면서 지방을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숙성된 치즈라고 한다. 현지에서 이 치즈를 맛본 사람들이 블로그 등에 올린 감상평을 보면 “꿈틀거리고 튀어 오르는 구더기에 주의하며 먹어야 한다” “아릿한 뒷맛이 남지만 매우 부드럽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카망베르 치즈를 처음 맛봤을 때 그 맛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 치즈를 가져다준 여성에게 키스를 해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호사가들은 부인 조세핀의 체취가 카망베르의 향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가 부인에게 더 집착했다고도 한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뜨거운 물에서 목욕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 귀환할 때 조세핀에게 “씻지 말고 기다리라”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외설적이고 저속한 느낌의 체취가 강력한 최음제가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통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

카망베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다. 시계가 흘러내리는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이 탄생하도록 영감을 준 존재는 바로 카망베르 치즈였다. 카망베르 치즈를 좋아했던 달리는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저녁을 먹은 뒤 남은 카망베르 치즈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있는 모습에서 작품의 힌트를 얻게 됐다. 달리는 이 작품을 두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부드럽고 사치스럽고 고독하고 편집증적-비판적인 카망베르 치즈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서) 이 책에선 흐느적거리는 시계가 달리의 발기부전과 성적 만족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썼다. 달리는 자신이 발기부전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던 그의 부인 갈라와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하지만 2017년 한 60대 여성이 자신이 달리의 친딸이라며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스페인 당국이 그의 무덤을 열고 DNA를 채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식품 건강 정보를 다룬 국내외 뉴스를 보면 종종 치즈에 관한 상반된 주장이 맞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력에 좋은 몇 가지 음식’ ‘성욕을 감퇴시키는 음식’ 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들에서 치즈는 △남성건강에 좋은 아르기닌이 많아 성적 능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다량 포함된 지방이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굳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과유불급’이다. 무슨 음식이든 적당히,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하물며 그것이 오랫동안 인류가 섭취해온 음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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