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꿀벌에게도 ‘맛집’이 있다?…‘밀원수’를 가꾸는 마을

2024.10.01 15:08 입력 2024.10.01 15:46 수정

대전충남녹색연합 기후투어 참가자들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미호동 ‘윙윙꿀벌식당’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충남녹색연합 기후투어 참가자들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미호동 ‘윙윙꿀벌식당’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섭 기자

“잠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꿀벌들이 윙윙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지난달 28일 오전 대전 대덕구 미호동 ‘윙윙꿀벌식당’ 앞. 대전충남녹색연합이 마련한 기후투어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안내하던 양흥모 에너지전환 ‘해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재잘대던 어린이 참가자들까지 주변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양 이사장은 귀를 쫑긋 세운 참가자들을 향해 “꿀벌들에게는 9∼10월에 피는 꽃들이 중요하다”며 “지금 모아 둔 꿀로 겨울을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대청댐 인근 마을인 미호동에 조성된 윙윙꿀벌식당은 이름 그대로 꿀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밀원 감소와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꿀벌들을 지키기 위해 밀원 식물을 심고 가꾸는 곳이다. 인근에서 ‘넷제로공판장’을 운영하며 친환경 제품과 농산물을 판매하는 에너지전환 ‘해유’와 대전충남녹색연합이 마을 주민 등과 뜻을 모아 지난 5월 이 공간을 조성했다.

대전 대덕구 미호동 ‘윙윙꿀벌식당’에 밀원수와 들깨 등이 자라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 대덕구 미호동 ‘윙윙꿀벌식당’에 밀원수와 들깨 등이 자라고 있다. 이종섭 기자

1980㎡(약 600평) 남짓한 꿀벌식당에서는 쉬나무와 헛개나무 등 꿀벌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밀원수가 자란다. 그 중에서도 현재 꿀벌식당을 대표하는 ‘메뉴’는 들깨다. 들깨는 뿌리를 쉽게 내리고 자연재해에도 강한 작물이면서 가을이면 많은 꽃을 피워 꿀벌들에게 훌륭한 밀원 식물이 된다. 양 이사장은 “나무는 심고 키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들깨는 봄에 심으면 가을에 꽃을 피워 바로 꿀벌을 불러들일 수 있다”며 “밀원수를 식재할 때는 4월부터 10월까지 계속 꽃이 피도록 수종을 다양화할 필요성도 있어 들깨를 심어 가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꿀벌식당이 들깨를 주 메뉴로 선택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꿀벌식당은 지난 5월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에 맞춰 정식 오픈하며 미호동 마을 주민들에게도 함께 심고 가꿀 밀원수를 나눠줬다. 지난 6월 들깨 파종기에는 마을 농가 6곳과 들깨 수매계약도 맺었다. 주민들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들깨를 시중가보다 높게 사들여 조만간 ‘윙윙꿀벌방앗간’이란 상표로 들기름을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주민 참여로 밀원 식물 재배를 확대하고 수익으로도 연결시키는 ‘1석 2조’ 효과를 내는 셈이다.

꿀벌식당은 기후 위기와 꿀벌의 생태적 중요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체험·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양봉농가와 협력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양봉과 꿀벌숲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꿀벌식당 조성에도 시민들이 참여했다. 조성 비용 마련을 위한 온라인 모금에는 2000명 넘는 시민들이 소액 기부를 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기후투어 참가자들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미호동에서 양봉 과정을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충남녹색연합 기후투어 참가자들이 지난달 28일 대전 대덕구 미호동에서 양봉 과정을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양 이사장은 “2022년에는 국내에서 꿀벌의 약 18%인 78억마리가 실종됐다고 발표될 정도로 최근 몇 년간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엇박자와 밀원수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 살충제와 해충 등이 주 원인이며 이는 벌꿀 생산량 감소를 넘어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화분매개 곤충인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의 먹거리도 줄어들고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면서 “꿀벌식당은 비록 작은 노력이지만 마을 주민과 시민들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중요한 기반을 함께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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