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때 계엄군 유족 찾아 참회...직접 용서 구한 첫 공수대원

2021.03.17 20:43 입력 2021.03.18 08:17 수정

“겁에 질려 도망가는 민간인을 사살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다가 고향으로 가던 박병현씨를 사살한 것으로 확인된 공수부대 출신  A씨가 16일 박씨 묘지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다가 고향으로 가던 박병현씨를 사살한 것으로 확인된 공수부대 출신 A씨가 16일 박씨 묘지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 제공

묘지 앞에 무릎 꿇고 “사죄”
직접 용서 구한 첫 공수대원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이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 사죄했다. 계엄군이 자신이 직접 사살한 사망자의 유족을 만나 용서를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 A씨(66)가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박병현씨 유가족을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5·18묘지에 안장된 박씨의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 이날 A씨의 참배에는 박씨의 형과 동생 등 유가족 3명이 함께했다. A씨는 5·18 당시 25세였던 박씨에게 총격을 가해 사살한 당사자다.

박씨는 1980년 5월23일 농사일을 돕기 위해 광주에서 고향인 보성으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 당시 광주 외곽을 차단한 계엄군들로 인해 차량이 운행되자 않자 박씨는 걸어서 보성으로 가기 위해 친구와 함께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인근을 지나다 A씨 부대와 맞닥뜨렸다.

7공수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던 A씨는 정찰을 하고 있었다. 박씨 일행이 도망치자 A씨는 곧바로 M16 소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A씨 부대원들은 죽은 박씨를 인근 야산에 묻고 철수했다. 박씨의 시신은 5·18 직후 가족들에 의해 6월2일 발견됐다. 고향에 묻혔던 A씨는 6월11일 진행된 부검에서 머리 총상이 확인됐다. A씨는 5월30일 부대로 복귀한 뒤 전역했다.

5·18 당시 숨진 시민들의 개별 사망경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5·18진상규명위는 지난 1월 A씨 부대가 박씨 사망장소에서 작전을 폈던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관들이 찾아가자 A씨는 “내가 비무장한 사람을 사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A씨는 2차례 면담에서 “당시 정찰을 하다 도망가는 민간인이 있었는데 (부대원 중)나만 무의식적으로 총을 쐈고 부대원들이 매장했다”면서 “박씨는 단지 겁에 질려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A씨가 진술한 지역에서 사망한 시민은 박씨가 유일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씨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A씨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뒤 유가족을 만나 용서를 빌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지난 1월에는 혼자 광주를 찾아 박씨의 묘역을 참배하고 사죄하기도 했다.

박씨의 유족들도 고심 끝에 A씨를 만나기로 했다. 2시간여 동안 박씨의 유가족을 만난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렸다.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오열했다. 박씨의 형인 박종수씨(73)는 “늦게라도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며 용서했다.

5·18진상규명위는 “5·18 당시 시민들을 사살했다”는 당시 계엄군 3~4명의 증언을 확보하고 사망한 시민이 누구인지를 추가로 추적하고 있다. 5·18진상규명위 관계자는 “A씨처럼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 5·18의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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