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서 물질 제주해녀 역사적 가치
헌신 재조명하기 위한 물질시연행사
4~7일 해녀 7명 독도 찾아 진행
일제강점기인 1935년 제주해녀들은 일본어민에 고용돼 울릉도와 독도 어장까지 바깥물질을 나갔다. 1950~1970년대에는 독도 의용수비대와 울릉도 어민들의 요청으로 매년 수십 명씩 독도 어장에서 미역과 전복 등을 채취했다. 고된 생활 속에서도 이어갔던 당시 제주해녀들의 물질(바닷속에 잠수해 소라, 전복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였다.
일본 침략에 맞서 독도 수호에 앞장선 제주 해녀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제주 해녀가 직접 독도를 찾아 물질 시연 행사를 했다.
제주도는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경북 울릉도와 독도 연안 어장에서 지역의 어업권과 영유권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제주해녀들의 발자취를 되짚는 물질시연 행사를 진행 중이라고 6일 밝혔다.
제주도는 과거 고향을 떠나 독도에서 출향 물질을 했던 제주 해녀의 역사적 가치와 헌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이번 제주 해녀 독도 물질시연 행사를 계기로 독도 수호 정신을 되새기고,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국제사회에 알려 나갈 계획이다.
독도서 해녀들 고된물질하면서 경비활동 돕고
시설물 건립에도 참여…독도 실효적 지배 증명
당시 독도의 제주 해녀들은 마땅한 거처도 없이 동굴에서 생활하며 고된 물질을 하는 속에서도 독도 의용수비대와 독도 경비대의 경비 활동에 필요한 물품 운반, 식수 보급, 식량 조달 등을 도왔다. 독도 시설물 건립에도 참여했다.
지난 7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패션기업 라카이코리아가 공개한 ‘독도의 이름 없는 영웅 제주 해녀’ 영상을 보면 해녀들은 먹을 곳도, 쉴 곳도 없이 동굴을 거처로 삼으면서 독도 앞바다를 누볐다. 이들이 채취한 미역은 독도에 거주하는 이들의 비상식량이 됐다. 해녀들의 물질로 거둔 판매 수익금은 독도 경비 자금으로 활용됐고, 독도 거주를 위한 시설 공사를 하는데도 쓰였다. 그들은 순직한 독도 경비대원의 시신을 인양하기도 했다. 제주 해녀가 실질적인 경제적 활동을 함으로써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주도가 2014년 펴낸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 보고서에서도 “당시 포항 해병대가 독도에서 미역 물질을 할 해녀를 모집해 제주 해녀 18명이 갔다. 벼랑 아래 집을 짓고 살면서 부대에서 쓸 미역을 땄다”는 구술이 있다. 또 “전복이 너무 많아서 쌀보다 전복을 더 넣어 죽을 쑤었다. 당시 순경 한명과 방위병 세명이 있었는데 갈매기가 많아서 갈매기 알을 주어다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번 행사에는 실제 독도 출향물질 경험이 있는 해녀 2명을 포함해 총 7명의 제주 해녀가 독도를 찾았다. 해녀들은 이번 행사에서 독도 앞바다에 잠수해 과거 물질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독도 어장의 해양생물 다양성 등 해양생태계를 확인하는 시연도 펼쳤다.
이번 방문 기간 해녀 어업 방식과 문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제주해녀와 울릉군 도동 어촌계 해녀간 교류의 시간도 가졌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해녀들은 “70년전 독도 어장을 부지런히 누볐던 선배 해녀들처럼 너무 벅차고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우리땅 독도를 지키는데 제주 해녀들이 큰 보탬이 됐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재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이번 독도 물질시연 행사를 통해 고향을 떠나 낯선 바다에서 물질을 했던 제주해녀들의 노고를 깊이 되새기고 독도를 지켜낸 숨은 주역인 제주해녀들의 강인한 정신과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