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민단체형 다단계’ 주장에···전문가들 “향후 10년을 보라” 비판

2021.10.09 14:19 입력 2021.10.12 21:05 수정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16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기자회견을 하면서 관련 문건을 내보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16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기자회견을 하면서 관련 문건을 내보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13일 서울시 민간위탁 사업의 ‘중간지원조직’을 두고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비판했다. 중간지원조직은 서울시가 일부 사업을 협동조합·비영리단체 등 민간에 맡길 때 서울시와 이들 사이에서 관리 역할을 한다. 오 시장은 “특정 시민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이 돼 다른 시민단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라며 “시 예산으로 보조금을 나눠주고 생색을 내는 기발한 사업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구조에서 지원을 받은 대표 사례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꼽으며 “인건비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이 지목한 마을공동체 사업의 중간지원조직인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지난 7일 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나섰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는 서울성북미디어문화마루에서 연례행사인 ‘마을컨퍼런스’를 열면서 “지난 10년의 서울 마을공동체 정책과 민관협치 거버넌스의 성과와 비판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과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겠다”라고 밝혔다. 올해 컨퍼런스 주제는 ‘중간지원조직’과 ‘시민참여 정책’이었다.

서울시 주최·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주관 ‘2021 마을컨퍼런스’ 가 열린 성북구 서울성북미디어문화마루에서 컨퍼런스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미우라 히로키 서울대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이태동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용석 서울시의원, 김미윤 은평구 은평정책연구단장, 이상현 중랑마을넷 기획팀장.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유튜브 갈무리.

서울시 주최·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주관 ‘2021 마을컨퍼런스’ 가 열린 성북구 서울성북미디어문화마루에서 컨퍼런스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미우라 히로키 서울대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이태동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용석 서울시의원, 김미윤 은평구 은평정책연구단장, 이상현 중랑마을넷 기획팀장.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유튜브 갈무리.

컨퍼런스에 참석한 시민사회·학계 인사들은 중간지원조직에 관한 인식부터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정부 정책을 하향식으로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영선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는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시민을 연결하고 민간과 민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프로그램을 집행하는 것으로 폄하되거나 잘못 인식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역할만으로는 복잡한 현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민사회 참여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경로에서 중간지원조직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시민참여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중간지원조직이 중요한 정부 정책 도구로 부상했고, 사회적 혁신과 공익활동의 거점이자 시민사회 활성화의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라며 “시민사회가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거나, 사회적경제 등 독자적 영역을 개척해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다만 정부 주도로 설립되다보니 중간지원조직 스스로가 정부 정책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치중했다는 점과 취약한 재정 능력, 짧은 시민사회 역사에 따른 전문성 부족 등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상현 중랑마을넷 기획팀장은 “행정에 긍정적이거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일어난다”라며 “예산을 지급한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활동에 행정이 개입하는 구조가 돼 ‘행정에 포섭됐다’라는 평가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오수길 도시지속가능연구소장은 “중간지원조직은 시민과 행정을 연결하는 사람, 즉 ‘연락병’”이라며 “그런 중간지원조직이 행정 주무부서의 하부 조직처럼 일하면 한방향의 연락만 주는 셈”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인적·조직적 자원이 부족해 외부에 의존해 독립성에 도전받거나, 혁신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아마추어리즘으로 비쳐지고 있다”라며 “중간지원조직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탁기관(정부·지자체)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마을 공동체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마을 공동체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시민사회 참여를 중시한 사업의 성과는 보다 장기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단순히 양적 성과를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우라 히로키 서울대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역사를 ‘자생적 시작(2000년대)’과 ‘정책적 육성(2010년대)’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이 기간 동안 ‘1만6000여개 주민 모임 지원’ ‘마을활동가 1086명 육성’ ‘주민자치 관련 교육참여자 24만명’ 등 성과를 언급했다.

미우라 선임연구원은 “향후 10년 동안 정책의 고도화와 사회적·정책적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30년 단위로 정책을 봐야 한다”라며 “단순히 양적 성장이 아니라 사람과 마을의 질적 성장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오수길 연구소장은 “10년 동안 얼마를 썼고 몇 개 단체가 어떻게 했는지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충분한 지원이 됐는지,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게 운동장을 개방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이태동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주민자치회 사업 참여가 ‘정치적 효능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정치적 효능감이란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주민 스스로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말한다. 서울시는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예산과 정책 편성 권한까지 일부 갖게 한다는 취지로 ‘서울형 주민자치회’를 운영 중이다. 이 교수는 “협치를 했을 때 정치적 효능감이 늘어날 수 있고 지역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동력이 계속 생길 수 있다”라며 “정부·지자체 예산이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좋게 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쓰이면서 다양한 성과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미윤 은평구 은평정책연구단 단장은 “마을정책은 ‘탑다운(Top-Down·하향식)’ 행정의 한계를 개선해 예산의 효율적 집행에 초점을 둔 공공정책에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공동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혁신의 새 발전방향을 모색하며 출발한 정책”이라며 “처음엔 시민참여의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필요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한 문화가 됐고 행정의 체질과 지역사회 의사결정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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