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탈북자 간첩 몰이’ 7년 만에 누명 벗었다

2020.12.25 17:01 입력 2020.12.26 11:00 수정

대법, 간첩 혐의 홍강철씨에 1·2심 판결 그대로 “무죄” 확정

홍씨 “다행이지만 씁쓸”…변호인 “상고심 늦은 판결 해명을”

유우성씨 이은 무죄 결론에 “반인도적 국가폭력 중단해야”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던 홍강철씨. 정지윤기자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던 홍강철씨. 정지윤기자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으로 내몰려 7년 동안 재판을 받아 왔던 홍강철씨(47)가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4일 국가보안법상 특수목적·특수잠입·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씨의 상고심에서 검사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6년 2월 항소심 선고 이후 4년10개월 만이다. 앞서 1·2심 모두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홍씨는 함북 무산군 출신으로 북·중 접경지역 국경경비대로 일하다 2013년 8월 탈북했다. 다른 탈북민 모녀와 함께 중국과 태국 등지를 거쳐 한 달 만에 국내 입국했다. 간첩으로 의심받아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감금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를 거쳐 2014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국정원과 검찰은 홍씨가 북한 보위부 소속 간첩으로 중국에서 탈북 브로커를 납치하려다 실패하고, 탈북민으로 위장해 국내 잠입한 뒤 탈북민 단체 동향과 국정원 정보망을 파악하려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홍씨가 합신센터에서 두 차례에 걸쳐 작성한 자필 진술서와 검찰이 홍씨를 피의자로 불러 작성한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2013년 10월~2014년 1월 진행된 합신센터 조사는 실질적으로 수사의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진술거부권 등에 대한 고지 없이 조사가 이루어졌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도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조력권 등 고지사항 중 어느 하나라도 적법하게 사전에 고지되지 않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2심은 “홍씨가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에서) 진술서를 작성했고, 국정원 조사가 끝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다는 언질을 받고 기대를 품은 것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1·2심의 이 같은 판단을 따랐다.

A4용지 4쪽 분량의 대법원 판결문에는 1·2심에서 밝힌 내용이 거의 그대로 담겼다. 홍씨를 대리한 장경욱 변호사는 “판결이 오래 걸린 것에 비해 내용이 실망스럽다”며 “상고심 판결이 늦어지게 된 것에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 변호인단은 논평을 내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에 이어 홍강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우리는 탈북민을 상대로 한 간첩조작 사건의 실체를 목격하게 됐다”며 “국정원이 탈북민들을 잠재적 보안법 위반 피의자로 간주해 일체의 접촉을 차단하고 구금 수사하는 반인도적인 국가폭력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홍씨는 “다행스럽게도 무죄가 나왔지만 7년 동안 고생해 와서 씁쓸했다. 대법원 판결이 늦어져 혹시 파기환송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죽고 싶을 정도였다. 가족의 힘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또 “구치소에서만 하더라도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고, 외부와 전화통화도 할 수 있고, 신문도 볼 수 있지 않으냐”며 “간첩 누명을 벗었으니 국정원 신문센터에서 불이익을 당한 탈북민들을 변호사와 연결해주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홍씨는 탈북민 단체 ‘통일중매꾼’ 대표이며 유튜브 채널 ‘왈가왈부’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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